李-尹 중도 확장 의지,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유창선의 시시비비]
(시사저널=유창선 시사평론가)
"해명보다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가 먼저여야 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11월20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대장동 의혹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반성하는 말들을 꺼냈다. 그동안 관리상의 책임을 제외하고는 온갖 의혹과 문제들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던 이 후보였기에 기존의 태도에서 180도 선회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틀 후에 열린 민주당 선대위 회의에서는 대장동 의혹에 대한 것을 비롯해 '사과'라는 말을 11차례나 사용하며 한껏 몸을 낮추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에 대한 비판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던 이 후보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재명이 달라졌어요'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변화다.
이러한 급선회가 나타난 것이 지지율 하락이 낳은 심각한 위기상황 때문이었음은 다들 아는 사실이다. 후보 선출 이후 지지율이 박스권에 갇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상황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의 이재명을 보여야 한다는 판단의 결과일 것이다. "후보 빼고 다 바꾼다"는 민주당 선대위가 가려는 곳은 중도층이 있는 중원지대다.
李, '지지율 하락하니 급하게 변신' 시선 받아
이제야 중도 확장의 필요성에 눈을 돌린 이재명 후보의 모습은 사실 늦은 감이 있다. 경선에서 후보로 선출되던 날부터 본선 승부의 열쇠를 쥐고 있는 중도층의 지지를 얻기 위한 행보를 시작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본선에 진출하고서도 여전히 당내 경선을 치르듯이 지지자들을 향한 메시지만 반복했다. 기득권, 부패세력, 뿌리 뽑겠다, 불로소득, 환수 같이 마치 5년 전의 촛불정국 때를 떠올리게 하는 용어들만 차고 넘쳤다. 대장동 의혹에 대해서는 '국민의힘 게이트'라며 내로남불의 태도로 일관했고, 규제와 세금으로 집값을 잡으려다 실패한 부동산 정책을 더욱 격하게 밀어붙일 의지를 보였다. 이 모두가 문재인 정부의 실정에 등 돌린 중도층을 오히려 더욱 멀리 보내는 메시지들이었다.
그랬던 이 후보와 민주당이 그래 가지고는 중도층의 지지를 얻는 확장성을 가질 수 없음을 뒤늦게 깨닫고 선거 캠페인의 대전환에 나선 것이다. 그동안 열성적 지지층들은 '사이다'라며 환호했지만,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중도층에게는 '불안한 후보'라는 시선을 해소하지 못했던 이 후보였다. 지지율이 하락하니까 다급하게 변신한다는 시선을 받을 수 있기에 진정성 면에서 한계가 있지만,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려면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이재명의 변신 시도가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중도 확장성을 확보하는 일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에게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지난 경선 과정에서 윤석열 캠프에는 과거 보수정권 시절의 친이·친박계 정치인이 대거 포진했다. 정치를 새로 시작한 윤석열이 새로운 정치의 흐름을 만들려는 문제의식 없이, 그저 새누리당 시절 사람들에 둘러싸여 대선에 나서는 모습을 보며 실망감을 표출한 중도층이 무척 많았다. 만약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다면 실패했던 과거 보수정권들과 무엇이 다른 것인가라는 질문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후보 선출 이후 컨벤션 효과를 누리며 이재명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를 벌렸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정권교체 여론에 비하면 그의 지지율은 저조한 편이다. 이재명이 중도 확장을 위해 유연한 노선으로 유턴한 상황에서 윤석열의 선두는 아직 불안한 상태다. 그 역시 중도 확장성을 꾀해야 대선 승리를 기약할 수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尹, 중도 확장성 준비돼 있는지 의심
대선 출마 선언을 한 이후로 지나치게 보수적인 행보를 한다는 지적을 받아온 윤 후보는 후보 선출 이후에는 국민통합을 이루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다. 후보 수락연설에서는 "문 정권은 이 나라를 이념으로, 국민 편가르기로 분열시켰다"면서 자신은 "국민통합의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진보의 대한민국, 보수의 대한민국이 따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다짐이었다. 문재인 정부 아래에서의 편가르기 진영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등 돌린 중도층을 향한 메시지였던 셈이다. 윤 후보가 최근 선대위를 구성하면서 김종인 전 위원장 이외에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과 김한길 전 대표, 그리고 '탈진보' 인사들까지 과거 민주당 쪽에 서있었던 인물들을 아우르는 '반문' 빅텐트를 만들려 했던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국민의힘을 지지하지 않지만 정권교체를 원하는 모든 층을 지지 기반으로 넓히겠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내용이 과연 중도층의 마음을 얻어 확장의 길로 가는 것이었는지는 아직 의문이다. 정권교체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모두 빅텐트로 모은다는 얘기지만, 그 면면을 보면 윤 후보가 생각하는 정권교체의 내용이 막상 과거 정치로부터 달라진 새로운 무엇이 없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올드 보이들의 귀환'이라는 얘기를 들을 뿐 새로움을 찾기 어려운 이제까지의 용인술을 보노라면, 윤석열에게는 새로운 정치 시대를 만들겠다는 소명의식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생긴다. 선대위 인선 과정에서 생겨난 김종인 전 위원장과의 갈등도 그러하다. 여든이 넘은 사람이 또다시 킹메이커로 나서는 광경은 우리 정치의 제자리걸음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그래도 김종인은 시대를 읽어가며 중도층의 생각에 공감할 줄 아는, 야권에서는 대체 불가능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역할의 차원이 다른 인물들을 고집하며 결별 직전 상황까지 갔던 일은, 윤 후보가 중도 확장성에 승부를 걸 준비가 되어 있는가에 대한 의심을 낳게 만들었다.
대선 승부의 열쇠는 언제나 중도층이 쥐고 있다. 진보든 보수든 자기 진영만의 지지로는 이길 수 없다. 그래서 평소에는 자기 진영에 갇혀 생각하고 말하던 정치인들이 선거가 가까워오면 중원 지대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진영의 지지자들에게서 사이다 소리를 듣던 이재명도, 국민의힘보다 더 보수적이라는 소리를 듣던 윤석열도 이제야 중도 확장성 경쟁에 나선다.
지켜보는 국민은 그들의 진정성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불안하기만 하다. 그러다가 막상 정권을 잡고 나면 자기 지지자들만의 대통령이 되는 모습을 계속 보아왔기 때문이다. 이명박도 박근혜도 문재인도 모두 그랬다. 왜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한쪽 진영의 편이 아니라, 양쪽을 모두 껴안는 중원에 서야 하는지를 모든 후보가 이 기회에 제대로 생각하기 바란다. 그래야 누가 대통령이 되든 갈래갈래 분열된 이 나라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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