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협주곡 해석을 이렇게도?" 끝없는 변화 호평
2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쇼팽 콩쿠르 스페셜 연주회는 일찍이 클래식 팬들의 관심이 집중됐던 공연 중 하나다. 지난달 제18회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캐나다 출신 피아니스트 브루스 리우(24)를 국내 무대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쇼팽 콩쿠르 폐막 후 약 한 달여 만에 열린 공연이었다.
이날 리우의 연주곡은 콩쿠르 당시 결선에서 연주한 피아노 협주곡 1번이었다. 쇼팽 대회 결선에 진출한 연주자들은 작곡가가 남긴 협주곡 1, 2번 가운데 하나를 골라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해야한다. 다만 피아니스트 사이에서는 1번에 대한 선호가 압도적이다. 올해 대회에서도 12명 가운데 9명이 1번을 선택했는데, 그 이유는 2번에 비해 보다 기교적인 면이 많아 콩쿠르 특성상 연주자의 개성을 드러낼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서울시향의 수석부지휘자 윌슨 응의 비팅과 함께 시작된 협주곡 1번은 주인공인 협연자가 등장하기까지 1악장의 긴 제시부를 거쳐야 한다. 관객들이 리우의 첫 타건을 기다리는 동안 서울시향만의 견조한 연주력이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곧 웅장한 화음을 시작으로 리우의 연주가 시작됐고 1악장의 서정적인 주제가 흘러나왔다. 콩쿠르 때 리우는 1악장에서 다소 긴장된 모습으로 불안정안 흐름을 보여준 면이 있었는데, 이날 연주는 안정적이었다. 리우는 콩쿠르 당시 파트너로 선택한 이탈리아 파지올리 피아노가 아닌, 스타인웨이 피아노로 이날 연주를 치렀다. 민첩하고 날카로운 음색이 특징적이라는 파지올리에 비해 스타인웨이는 모범생처럼 균형감 있는 소리로 리우의 타건을 받아냈다.
리우는 우승 직후 한국 데뷔 무대를 치르기까지 이미 해외에서 7번이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한 것으로 전해졌다. 콩쿠르 때보다 곡에 대한 숙련도가 올라갈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게다가 경연이라는 부담감을 떨친 리우는 여유 있어 보였다. 이날 연주를 참관한 김주영 피아니스트는 "콩쿠르 이후 시간이 그렇게 오래 지나지 않았지만 그새 해석이 또 달라져 있어서 흥미로웠다"며 "그날그날 무대 상황에 따라 즉흥적인 해석을 보여주는 연주자"라고 평가했다. 카트 레이싱이나 수영, 영화 감상 등을 즐긴다는 리우는 평소 피아노를 "열다섯개 취미 중 하나"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만큼 피아노를 즐기면서 친다는 의미였다. 김주영 피아니스트도 "이날 공연 또한 취미의 연장선상으로서 적극 즐기는 모습이 나타났다"고 했다.
무대에서 리우는 협주곡을 해석하며 끊임 없는 변화를 시도했다. 조은아 피아니스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같은 모양의 선율이 반복적으로 등장할 때 무심히 지나가는 법이 없었다"며 "음량, 아티큘레이션, 아고긱 등에서 다양한 변화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조은아 피아니스트는 또 "곡 중간성부의 내성을 양손 엄지와 검지를 활용해 낯설게 끌어 내거나, 악보에 표시되지 않은 약박에 액센트를 입혀 독특한 어조를 구현하거나, 음량을 물리적으로 감소시킴으로써 오케스트라와 대항해야 할 독주자의 존재감을 오히려 축소시킨 반전 등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고 평가했다.
리우는 평소 정제된 페달 사용을 선호하는 연주자로 알려져 있다. 이날도 피아노 소리의 울림을 배가하는 댐퍼 페달의 사용이 적었다. 결과적으로 명징한 소리를 객석에 전달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음량이 풍성하다는 느낌은 제한됐다. 웅장한 공명을 선호하는 관객이라면 다소 실망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는 대목이었다.
서울시향과 협주곡 1번을 무사히 끝마친 리우는 커튼콜을 받으며 두 개의 앙코르 곡을 들려줬다. 첫 곡은 '흑건'이라는 부제로 유명한 에튀드(Op. 10, 5번)였다. 오른손이 피아노의 검은 건반만 치는, 발랄한 작품(G♭ 장조)이다. 리우는 캐나다 출신이지만 중국계다. 때문에 그의 첫 앙코르를 들으며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2007)에서 대만 배우 주걸륜(저우제룬)이 피아노배틀을 하며 치던 쇼팽 흑건을 떠올린 관객이 적지 않았을 듯하다.
두 번째 앙코르는 쇼팽 녹턴 20번이었다. 리우는 팬들 사이에서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였던 조성진과 비교되며 주법이 '무뚝뚝하다'는 평가를 종종 받아왔다. 하지만 이날 그가 들려준 녹턴은 너무나도 아련한 발라드였다. 물 흐르는 듯 자연스러운 트릴과 완급조절은 애절한 감정표현을 잘 담아냈다.
관객들은 리우의 연주가 끝날 때마다 "브라보"라는 함성과 함께 열띤 박수로 연주에 화답했다. 티켓 오픈 이후 빛의 속도로 매진된 공연답게 객석은 만석이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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