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기업 도산, 2022년부터 시작될 수 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지난해 2월 이후 지금까지 국내를 대표하는 기업 중 특정 회사가 파산 내지 부도를 선언했다는 소식은 없다. 많은 국가가 코로나19 사태를 천재지변으로 간주하고, 어려움에 직면한 모든 기업을 무차별적으로 지원했다. 한국도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하면서 현재까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기업 도산을 통제하고 있다. 대출 만기 연장과 이자 상환 유예 조치를 적극 추진한 덕분에 많은 기업이 급한 불을 끄고 있는 셈이다.
영업활동으로 이자 못 갚는 기업 3곳 중 1곳
지난해 기업회생 신청 건수는 892건에 머물러 전년 1003건 대비 11.1% 감소했다. 기업파산 신청 건수 역시 2019년 931건에서 지난해 1069건으로 14% 증가한 수준에 불과하다. 이러한 수치는 코로나19 사태라는 상황을 고려할 때 상당히 안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지난해 부도 위험 기준을 넘어선 기업은 150개로 전체 대상 기업(2175개)의 6.9%이며,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인 2019년 7.8%와 비교하면 오히려 줄어든 수치다. 이는 정부가 기업에 공급한 유동성 결과라고 할 수 있다.이처럼 도산 기업이 크게 유발되지 않았다고 해서 한국 기업의 재무 상태가 견실한 것은 결코 아니다. 코로나19 영향에 따른 매출 부진 및 수익성 악화로 영업이익만으로 이자비용을 충당하지 못하는 기업이 크게 증가했다. 기업 재무 상태를 확인하는 지표 가운데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총이자비용)이 있다. 기업의 이자 지급 능력을 평가하는 이자보상배율이 1을 하회하는 기업은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말 사업보고서를 공시한 상장기업과 비상장기업 2520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조사 대상 기업의 39.7%가 이자보상배율이 1을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조사 대상 기업 3곳 중 1곳이 영업활동을 통해 이자도 갚지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비율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이자보상배율 1 미만인 기업이 33.2%였던 것과 비교하면 상황이 심각하다는 의미일 수 있다.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취약 기업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전체 조사 대상 취약 기업의 63.2%가 중소기업이다. 업종별로는 매출이 급감한 항공, 숙박, 음식 업종에서 기업 이자보상배율이 크게 하락했다. 이 밖에도 조선, 자동차, 철강, 기계 장비 업종에서도 취약 기업의 비중이 다수 확인됐다.
부도 신호 기업 신속 지원해야
물론 이러한 현황은 여타 선진국 및 신흥국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양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과 유사한 경제규모를 가진 국가들의 지난해 취약 기업 비중이 주요국 평균보다 낮기 때문이다. 문제는 2022년부터다. 한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가 유동성 공급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는 과정에서 무차별적 자금 지원도 감소할 예정인데, 얼마나 많은 기업이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문제다.현재 다수 기업이 코로나19 사태로 실적 악화가 누적된 데다, 2022년에도 코로나19 사태가 완전히 해결된다는 보장이 없다. 최근 불거진 원자재 수급 불균형도 이들 기업의 발목을 잡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일부 제품과 서비스 분야에서 소비심리가 되살아났음에도 기초 원자재 수급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제품 공급을 못하고 있다. 즉 사겠다는 사람이 있어도 물건을 팔지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렇다고 2022년에도 대규모 유동성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인플레이션이 크게 우려되고 있어서다. 유럽 국가들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십수 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독일의 8월 CPI 상승률은 3.4%로 13년 만에 최고치였고, 유럽연합 전체 수치 역시 3%로 10년 만에 가장 높았다. 한국 역시 물가상승률이 5개월 연속 2%대를 기록한 것은 2017년 1~5월 이후 처음이다(그래프 참조). 미국 물가상승률도 9, 10월 연속 3.6%였는데 이는 1991년 5월 이후 30여 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에 해당한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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