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등장한 '기재부 개혁론'
[경향신문]
“기획재정부로부터 예산기능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
이번 대선에도 어김없이 기재부 조직 개편론이 등장했다. 불을 댕긴 것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다. 기재부에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켜야 한다고 강조하며 예산 편성권부터 떼어내자고 했다. 기재부가 의도적으로 올해 초과 세수를 과소 추계했다는 ‘음모론’도 조직개편 논의를 부추겼다.
이 후보가 전국민재난지원금 지급 입장을 철회하면서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대선 때마다 재정당국의 조직개편은 단골 주제였다. 역대 정부는 국정 철학에 따라 재정당국의 조직을 ‘떼었다 붙였다’ 했다. 대개 보수 정부는 효율성을 내세우며 붙이고, 진보 정부는 균형을 강조하며 떼는 일을 반복했다.
기재부가 현재의 형태를 갖춘 것도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다. 이명박 정부의 재정당국은 재벌의 구조조정본부와 같았다. 탄생부터 경제 컨트롤타워로서 핵심적인 경제정책 권한을 한손에 쥐었다. 재정경제부(경제정책 수립·조세정책·국제금융정책)와 기획예산처(예산 편성·공공기관 성과관리), 국무조정실(경제정책 조정)을 모두 아우르는 매머드급 조직이었다. 금융정책 기능만 제외하면 외환위기 직후 해체된 재정경제원의 권한을 고스란히 회복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관치 금융의 상징인 재정경제원의 부활이라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이명박 정부는 개의치 않았다. 2008년 1월 17일자 경향신문을 보면 인수위 관계자는 “재경부와 총리실의 정책조정 기능이 그동안 예산권이 뒷받침되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견제보다 효율성에 방점을 두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실제 경제정책 조정 및 예산권을 한 부처로 집중시키면서 의사결정은 그만큼 신속해졌다.
■대통령 등에 업고 막강한 권한
오재록 전주대 교수는 2009년 발표한 논문 ‘정부조직 개편에 따른 기획재정부의 권력관계 변화 분석’을 통해 “대통령제 국가에서 부처의 권력은 대통령의 지지에서 나온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기재부는 대통령의 지지를 업고 막강한 권한을 휘둘렀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신년연설을 통해 ‘비상경제정부’를 운영하겠다고 선언했던 때였다.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는 매주 목요일 대통령이 직접 주재했다. 대통령의 해외 출장 등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12월 24일까지 1년간 한주도 빠짐없이 총 40회가 열렸다. 당시 실무조직인 비상경제상황실은 기재부 관료가 주도했다. 일일·주간 단위로 ‘경제 상황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관치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정부가 환율을 끌어내리기 위해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일도 빈번히 일어났다. 강만수 당시 기재부 장관은 “미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도 환율정책은 재무부에서 직접 행사한다”며 환율정책을 한국은행이 아닌 정부가 맡아 해야 한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당시 정부는 환율정책을 물가관리보다는 성장관리 측면에서 행사하려고 했다.
박근혜 정부의 기재부는 ‘국가주도 경제성장의 사령탑’이었다. 2013년 박근혜 정부에서는 국가주도 성장의 유산인 부총리제를 부활시켰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3년 취임 이후, 첫 내각을 꾸릴 때 경제기획원장을 부총리로 격상한 것과 겹치는 대목이다.
‘작은 청와대’를 내건 박근혜 정부는 청와대 정책실장직을 폐지하면서 부총리가 정책조율 전면에 나섰다. 당시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은 정부 조직 개편안을 발표하며 “경제부흥을 이끌고 경제문제를 적극 해결하기 위해 경제부총리를 신설한다”고 말했다. 박정희 정부에서도 경제기획원장은 경제부처를 통솔하며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했다. 첫 부총리인 김유택 초대 경제기획원장을 시작으로 31년 동안 총 22명의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 경제정책을 주도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주재했던 수출확대진흥회의의 부활도 예정된 수순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투자 활성화 기치를 내걸고 2013년 취임과 동시에 야심차게 시작한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성과는 초라했다. 62조원 규모의 사업을 발굴해 냈지만 실제 준공이 완료돼 투자·고용 창출에 기여한 프로젝트는 3조8000억원에 그쳤다.
■조직 단순 쪼개기엔 회의적 목소리
기재부 직원들은 조직개편을 어떻게 볼까.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으로 분리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기는 분위기다. 두 조직은 태생부터 달랐던데다 부처가 두곳이 되면 인사 적체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조직을 더 쪼개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본의 기재부였던 대장성 모델이 대표적이다. 2001년 초 일본은 대대적인 정부 조직개편을 통해 대장성을 해체했다. 예산 편성 권한은 경제재정자문회의로, 금융행정은 금융청의 관할로 넘어갔다. 관치의 상징인 ‘기획’ 기능도 경제산업성으로 넘겼다.
이 같은 해체의 경험은 이미 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세제와 금융, 예산, 정책조정 등 이른바 ‘경제 4권’을 쥐고 있었던 재정경제원은 재정경제부로 축소되고 부총리제는 폐지됐다. 예산기능은 재경부 외청인 예산청과 대통령 직속의 기획예산위원회로 분리했다. 적자예산이냐 긴축예산이냐, 또는 예산증가율을 몇%로 할 것인지에 대한 지침은 기획예산위가 결정하고 이 지침을 토대로 예산청이 사업별로 예산을 배정하는 구조였다.
금융감독 기능은 금융감독위원회로, 통화 신용정책은 한국은행으로 옮겼다. 재정과 금융 등 모든 정책 수단이 한 부처에 집중됨에 따라 견제와 균형 기능이 상실돼 외환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은 데 따른 후속조치였다.
그러나 조직을 단순히 나누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목소리도 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부처를 여러개로 나누기보다는 예산을 편성하는 과정을 손질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며 “청와대 산하 예산 관련 위원회가 예산의 총괄적인 규모를 정하고 각 부처가 사업 우선순위에 맞춰 자율적으로 예산을 편성하는 총액배분 자율편성 예산제도를 대안으로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산을 사업, 분야, 총액의 순서로 결정하는 현행 ‘상향식’보다 총액인 부처별 예산 한도를 먼저 정하고, 각 부처가 그 안에서 자유롭게 편성하자는 것이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적어도 기재부가 예산을 짜고 평가하는 구조는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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