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대통령 돼도 '대권'은 없다

성한용 2021. 11. 28.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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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한겨레S]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407
예고된 '승자의 저주'
지난 24일 ‘2021 중앙포럼’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왼쪽)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손을 잡고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대한민국은 5년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는 참 신기한 나라입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취임한 대통령들은 자신이 이끄는 정부에 별칭을 하나씩 붙였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6공화국이라고 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문민정부’라고 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의 정부’라고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정부’라고 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부터 그런 별칭이 사라졌습니다. 대통령 이름 뒤에 정부를 붙여 ‘○○○ 정부’라고 했습니다. 이런 관행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입니다.

내년 5월10일에는 어떤 정부가 출범할까요? 지금 여론조사 흐름을 보면 이재명 정부나 윤석열 정부가 될 가능성이 큰 것 같습니다. 이재명 후보나 윤석열 후보도 벌써 ‘이재명 정부’ ‘윤석열 정부’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5년마다 새 정부 서는 대한민국
무소불위? 대통령 권력 한계 뚜렷

‘무소불위 대통령 권력’ 진짜일까?

그런데 저는 이재명 정부, 윤석열 정부라는 표현에 거부감이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자꾸 문재인 정부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표현은 대통령 권력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대권 프레임’을 강화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 정부’ 말고 ‘○○○ 행정부’ 어떨까”라는 칼럼을 쓴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와 행정 수반이라는 이중의 지위를 가졌습니다. 과거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은 진짜로 ‘국가의 원수’였습니다. 합법·불법 수단을 총동원해 국회와 사법부까지 장악한 독재자였다는 부정적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그 이후 우리나라 대통령의 역사는 국가의 원수에서 행정 수반으로 권한이 점차 정상화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제는 대통령이 헌법이나 법률 위에 군림할 수 없습니다. 헌법이나 법률을 어기면 탄핵당하거나 퇴임 후 처벌받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헌법을 어겼다가 탄핵당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이 임명한 검찰총장조차 해임하지 못했습니다. 불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가 각종 공약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만 있지, ‘어떻게’가 없습니다. 거의 다 법률 개정과 예산 투입이 필요한 것들인데도 말입니다. 입법권과 예산안 심의 및 의결권은 국회가 가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공약을 어떻게 이행하려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박정희 전두환 시대로 돌아가려는 생각일까요? 그게 가능할까요?

이재명 후보는 민주당 국회의원 출신이 아닙니다. 그런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어떤 장면이 벌어질까요?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정당’이 될까요? 안 될 것 같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시절에는 그래도 친문 권리당원들 때문에 민주당 의원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 시대에도 민주당 의원들이 이재명 대통령의 눈치를 살필까요?

어림없는 일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필요한 법률을 통과시키려면 가장 먼저 민주당 의원들을 설득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국회나 여당이 대통령보다 우위에 서는 사상 초유의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윤석열 후보는 어떨까요?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지금 국회는 민주당이 절대다수 의석을 갖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순조로운 출범을 위해 민주당이 국회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순순히 처리해줄까요? 국무총리 임명동의를 쉽게 해줄까요? 그럴 것 같지 않습니다. 툭하면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을 의결할 수도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칫 식물 대통령이 되기에 십상이라는 얘깁니다. 그게 싫으면 민주당과 정치협상을 통해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아내야 합니다. 그런데 윤석열 후보는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른 차원의 문제도 있습니다. 이재명 후보나 윤석열 후보나 비호감 비율이 너무 높습니다. 둘 중 한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돼도 유권자의 상당수가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런 기류가 형성되면 대통령이 국정을 제대로 이끌어갈 수 없습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이재명 대통령이나 윤석열 대통령이나 취임 초부터 고난의 가시밭길이 예고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정부’라는 표현 자체가 대통령 권력은 무소불위라는 ‘대권 프레임’을 강화할 수 있다. <한겨레> 11월2일치 갈무리

어떤 정부 들어서도 순항 어려워
대통령제·선거제 고쳐 저주 벗어야

“성숙한 민주주의 위해 선거제 고쳐야”

이 난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이재명 후보나 윤석열 후보의 정치적 리더십에만 의존해서는 해결이 불가능합니다.

정치적 혜안을 가진 사람들이 내놓은 해법이 있습니다.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는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입니다. 두 사람의 주장을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요즘 정치뉴스의 중심인물인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입니다. 정치를 그만두겠다고 결심하고 2020년 3월에 출판한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을 ‘사람’의 문제로 삼았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많은 일을 ‘사람의 책임’으로 되돌리는 데 굉장히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계속해서 급발진하고, 미끄러지고, 전복되고, 화재가 발생하는 차량을 두고 언제까지 그것을 운전자의 잘못이라고만 말할 건가. 그것은 분명 차량의 결함이다.”
“현실에서 나의 노력은 실패했고 중단되었지만 현명한 국민의 힘으로 언젠가 ‘근본’이 바뀌는 날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뼈아픈 역사의 기회비용은 이제 그만 치르고 변혁의 그날이 빨리 오게 되길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저는 대통령제 권력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여러 사람의 주장 중에서 이처럼 정확한 묘사를 지금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이 정도로 간절하게 책을 써놓고 다시 현실 정치에 나선 김종인 위원장의 심리 상태를 그래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또 한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입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권력구조와 선거제도에 대해 가장 많은 고민을 한 사람이 아마도 노무현 대통령이었을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의외로 이상주의자입니다.

취임 직후인 2003년 4월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에서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차지할 수 없도록 선거법을 개정한다면 17대 국회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는 정당 또는 정치연합에 내각의 구성 권한을 이양하겠다”고 제안한 일이 있습니다.

당시 정치 지형은 한나라당이 절대적으로 유리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생각한 것은 프랑스식 동거 정부, 또는 책임총리제였습니다. 야당이 독일식 국회의원 선거제도나 중대선거구제로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개정해주면 권력의 절반 또는 그 이상을 야당에 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야당은 노무현 대통령의 제안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게다가 2004년 총선은 탄핵 역풍이 불면서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2005년 4월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열린우리당이 패배하면서 여대야소 국회가 여소야대로 뒤집혔습니다. 이번에는 대연정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지역 구도를 해소하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 문화를 만드는 데 필요하다면 권력을 반이 아니라 통째로 내놓겠다”고 했습니다. 여당이 먼저 반대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말에 마지막으로 대통령 4년 중임제를 도입하고 국회의원과 대통령 선거가 비슷한 시기에 치러지도록 주기를 조정하는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습니다. 이마저도 거부당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답답한 심정을 이렇게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성숙한 민주주의,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이루려면 사람만이 아니라 제도도 바꾸어야 한다. 지역감정을 없애지는 못할지라도 모든 지역에서 정치적 경쟁이 이루어지고 소수파가 생존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인재와 자원의 독점이 풀리고 증오를 선동하지 않고도 정치를 할 수 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바꾸는 것이 권력을 한번 잡는 것보다 훨씬 큰 정치 발전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어떻습니까? 저는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승자의 저주, 이제는 끝내야

마무리하겠습니다. 임기 5년 대통령제에는 ‘승자의 저주’가 걸려 있습니다. 당선되는 그 순간부터 야당의 전면적인 반대에 직면하는 것이 우리나라 대통령의 운명입니다. 대통령을 망가뜨려야 야당에 집권의 기회가 오기 때문입니다.

역대 대통령은 그래서 모두 불행해졌습니다. 이대로 가면 이재명 대통령이나 윤석열 대통령도 불행해질 것입니다. 불행해지지 않으려면 저주를 풀어야 합니다. 권력구조를 바꾸고 선거제도를 개편해야 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이나 윤석열 대통령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도 꼭 앞장서서 해내야 하는 일입니다.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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