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언론 톺아보기] 프랑스 최대 일간지 여론조사 보도 중단 선언이 한국에 주는 의미
[미디어오늘 진민정 한국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위원(파리2대학 언론학 박사)]
프랑스 최대 지역일간지 '우에스트 프랑스(Ouest France)'가 2022년 대선에는 지지 정당 혹은 후보자 관련 여론조사에 대해 그 어떤 보도도 싣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언론사들 사이에 여론조사 보도에 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신문의 편집국장, 프랑소와-자비에 르프랑은 지난 10월23일 트위터를 통해 “우에스트 프랑스는 대선 전까지 정치적인 여론조사를 수행하지 않을 것이며, 이에 대한 논평을 듣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자사 칼럼을 통해 “토론을 본질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여론조사를 더 이상 다루지 않을 것이며, 대선 보도는 “르포나 탐사보도 중심으로, 현장에 나가 시민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듣는 방향”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아울러 리베라시옹과의 인터뷰에서는 “여론조사 무용론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론조사를 마치 진실인 양 언론이 대대적으로 호도하는 것에는 반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같은 결정은 다른 프랑스 언론사에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누군가에겐 용감한 행위로, 또 다른 누군가에겐 지나치게 단순한 도덕주의적 발상으로 비치고 있는 것이다. 여론조사기관의 조사 방식에 대한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르프랑의 선언이 있고 며칠 후 발행된 '르몽드'의 전 편집국장, 뤽 브로뇌르의 여론조사에 대한 심층 보도 역시 이러한 비판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는 수백 개의 설문 조사에 참여한 후 온라인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수행되고 있는 여론조사의 불투명성을 해부했다. 조사기관들이 “실질적인 통제없이 인터넷에서 모집한 패널들을 대상으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주제에 대해 설문조사를 하는 대신 낮은 보수를 제공한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게다가 누구나 이메일 주소, 집 주소, 취향, 소득 정도, 직업, 정치 성향, 연령에 대한 정보 등을 제공하기만 하면 각 조사기관의 패널로 등록이 가능하다. 몇몇 정보는 허구로 기입할 수 있어 대표성을 갖는 표본이라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르몽드'는 자체적으로 엄정하고 투명한 방식의 여론조사 방법을 고안하기로 했다.
정치적 여론조사를 다루지 않겠다고 선언한 언론사는 '우에스트 프랑스'만이 아니다. 대표적인 인터넷 독립언론인 '메디아파르트'는 2008년 창간 당시부터 여론조사를 의뢰하거나 논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이유는 바로 정보의 신뢰성 때문이다. 온라인 설문조사가 전화통화를 대체하면서 비용은 훨씬 저렴해진 반면, 여론조사가 수행되는 방식의 투명성 문제는 수년에 걸쳐 심각해졌다는 것이 이 매체의 입장이다. 즉, 신뢰하기 힘든 여론조사 보도로 시민들의 정치적 선택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 논란이 더 많은 관심을 얻는 것은 프랑스 최대 일간지의 공개적인 선언이라는 점과 2015년 영국 총선이나 미국 대선 예측에 실패하면서 정치적 여론조사의 신뢰성에 대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것에서 기인한다. '우에스트 프랑스' 편집국장에게 여론조사 보도는 “진정한 토론을 방해하는 여론조작에 기여”할 수 있다. 그의 선언이 옳든 아니든, 이후 쏟아지는 이 신문에 대한 긍정적인 피드백은 독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프랑스 언론사, 그리고 일부 유럽 언론사들에게 상당한 자극이 되고 있다.
우리 역시 정치적 여론조사의 신뢰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언론은 여과없이 보도하기 일쑤다. 때로는 여론조사의 결과 자체도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그 결과를 부풀리거나 입맛에 맞게 왜곡해서 전달한다는 비판도 들린다. 헛된 희망일 수 있겠지만 우리도 여론조사와 관련 보도에 대한 논쟁에 불을 지피는 선언이 등장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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