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제주문화](25) "자연과 공존" 해녀 숨비소리의 의미

변지철 2021. 11. 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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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녀문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5주년
'한 번의 호흡으로 물질' 바다 지키고 후세 위한 전통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됐다! 만세!"

제주해녀문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환호 (제주=연합뉴스)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열린 유네스코 제11차 인류무형유산보호 정부간위원회에서 제주해녀문화에 대한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결정이 내려지자 해녀 대표 강애심 씨와 원희룡 제주지사, 이병현 주유네스코 대한민국 대표부 대사, 문화재청 등이 환호하고 있다. 2016.12.1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2016년 11월 30일(현지 시각)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 간 위원회(무형유산위원회) 제11차 회의에서 제주 해녀문화(Culture of Jeju Haenyeo)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가 확정된 순간 해녀 대표로 참석한 강애심(70) 씨가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오랜 세월 이어온 제주 해녀문화의 가치와 보전의 필요성을 세계인들로부터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5년의 세월이 흘렀다.

제주 해녀의 삶과 문화를 세 차례에 걸쳐 들여다본다.

숨비소리, '삶'과 '대결'의 차이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실내수영장에서 벌어진 숨 참기 대결 동영상 하나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2008년 10월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돌아온 박태환 선수와 제주 해녀 할머니의 대결 UCC(사용자제작콘텐츠 동영상)였다.

한 의류 브랜드 회사가 제작한 동영상에서 나란히 물속에 뛰어든 두 사람은 수영장 바닥에 다리를 쭉 펴고 앉아 견제의 시선을 주고받기도 하고, '인제 그만 먼저 올라가라'며 익살스러운 장난을 치기도 했다.

박태환과 제주 해녀 할머니 잠수 대결 (제주=연합뉴스) 의류업체 베이직하우스의 UCC 동영상 캡처. 2021.11.28

3분 남짓 시간이 지난 끝에 박태환이 더는 참지 못하고 물 위로 올라갔다.

결국 대결의 승리는 끝까지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한 해녀 할머니에게 돌아갔다.

해녀 할머니는 승부가 난 뒤에도 물속에서 승리의 'V'자를 그리며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장난스러운 대결이었지만, 해녀에게 숨을 참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오랫동안 숨을 참을 수 있는 능력은 해녀의 위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대상군 또는 상군(작업 수심 10∼20m), 중군(〃 5∼10m), 하군 또는 똥군( 〃 3∼5m)으로 나뉘는 해녀의 위계질서는 단순히 노력만으로 넘나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군에서 중군이 되는 것은 개인의 노력 여부에 따라 가능하지만, 수십 년간 물질을 한 베테랑 해녀도 타고난 폐활량과 같은 선천적인 능력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중군에서 상군이 될 수 없다.

소라 채취하는 해녀 (가파도=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지난 10월 27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도 서북쪽 해안에서 해녀가 소라를 채취하고 있다. 2021.10.27 [연합뉴스 자료사진]

해녀는 한번 잠수에 통상 1∼2분 바닷속에서 소라·전복·천초(우뭇가사리) 등을 채취한다.

상군 중 일부 해녀는 한 번에 3분가량 20m 깊이까지 들어가 작업하기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루 7시간가량 짧게는 수십차례 길게는 100여 차례 물속을 드나들며 해산물을 채취하는 해녀 물질의 특성상 박태환과 해녀 할머니의 대결에서처럼 숨을 끝까지 참아내는 것은 무의미하다.

생활을 이어가야 하는 '삶'과 단 한 번에 모든 걸 쏟아내야 하는 '대결'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숨을 끝까지 참아가며 물질을 하다가는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거친 바닷속에서 물질을 하다 다시 수면 위로 올라가면, 간혹 숨조차 쉬기 힘든 극한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그때 가까스로 숨을 쉬며 내뱉는 소리가 '숨비소리'다.

'호오이 호오이'

이 소리는 누군가에게 마치 돌고래 또는 새가 우는 듯 아름답게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숨비소리는 삶을 위한 해녀의 울부짖음과 같다.

한겨울에도 작업하는 제주 해녀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자연과 공존하는 해녀의 사계절

해녀는 1년 365일 바닷속에서 물질만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해녀는 집안에서 아내이자 아이들의 어머니 또는 딸로서 제주 어촌마을에서 이뤄지는 전통 세시풍속을 그대로 따르고 집안일과 농업을 병행하기도 한다.

계절마다 월별로 반드시 치러야 하는 통과의례가 있고, 해산물에 따라 어족자원 보존을 위해 금채(禁採·채취 금지) 또는 허채(許採·채취 허락) 기간이 정해져 있다.

제주 해녀들은 영등달인 음력 2월에 바다의 평온과 풍작 및 풍어를 기원하는 영등굿을 지낸다. 해상 안전과 풍요의 신이라 일컬어지는 영등신은 음력 2월 초하루 제주도로 들어와 바닷가를 돌면서 미역·전복·소라·천초 등의 씨를 뿌려 풍요를 주고 같은 달 15일 제주 동쪽 부속 섬 우도를 거쳐 본국으로 돌아간다고 해녀들은 믿는다.

봄이 되면 해녀들에게 가장 바쁜 일상이 돌아온다.

제주 해녀의 아침 (제주=연합뉴스) 2020년 4월 28일 오전 제주시 한림읍 수원리 앞바다에서 해녀들이 물질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3월 중순 '미역 해경(解警)'이라 해서 성장기 미역을 전년 12월부터 금지했다가 이때부터 다시 채취하기 시작한다.

4월 하순 또는 5월부터는 해녀들에게 가장 큰 수입원이 되는 천초가 난다. 0∼5m 수심이 얕은 바다에서 자라는 천초는 하군∼상군 상관없이 해녀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기 때문에 평소 일손을 놓은 나이 많은 해녀들도 이때가 되면 물질을 하러 바다를 향하곤 한다.

해녀들은 해삼(1∼6월·8∼12월), 전복(1∼9월), 소라(1∼5월·9∼12월), 톳(2∼9월) 등 해산물마다 잡는 시기를 달리한다.

중요한 것은 일정 크기에 달하지 않은 해산물을 잡지 않도록 규정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어길 경우 채취를 하지 못하도록 벌칙을 가하기도 한다.

사진전으로 만나는 제주 해녀 [연합뉴스 자료사진]

해산물을 채집하는 여성공동체의 규율이다.

해녀는 삶의 터전인 바다와의 공존을 추구한다.

바다에서 나는 각종 해산물로 삶을 영위하지만, 바다 생태계와 다음 세대를 위해 불필요한 남획을 하지 않는 것이다.

각종 잠수 장비가 발달한 오늘날에도 산소통 같은 어떤 잠수장비 없이 그저 한 번의 호흡만으로 물질을 하는 오랜 전통을 이어가는 이유다.

이 전통은 어머니에서 딸에게, 선배들에서 후배들에게 전승되며 명맥을 이어왔다.

해녀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데는 이러한 전통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5년 전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는 제주 해녀문화에 대해 "지역의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보여준다"며 "안전과 풍어를 위한 의식, 선배가 후배에게 전하는 잠수기술과 책임감, 공동 작업을 통해 거둔 이익으로 사회적 응집력을 높이는 활동 등이 무형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또 자연 친화적인 방법으로 물질을 하고 해양환경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통해 여성의 일이 갖는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해녀문화와 유사한 관습을 보유한 다른 공동체와의 소통을 장려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제주해녀문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인증서 (제주=연합뉴스) 유네스코가 한국 문화재청을 통해 제주도로 보내온 제주해녀문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인증서. 2017.2.24 khc@yna.co.kr [연합뉴스 자료사진]

b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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