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여자' 377명 이후 시들한 난민 논의.."우린 목숨 걸렸는데"

노선웅 기자 2021. 11. 28.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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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졸업·'비자 만료' 앞둔 하자라족 출신 유학생
"탈레반 장악 아프간 심각..韓서 일하게 도와달라"
한국에서 4년제 대학에 재학 중인 아프간 출신 유학생 나지브 배기씨. 올해로 한국에 거주한 지 4년이 되는 그는 내년이면 비자가 만료된다. © News1 노선웅 기자

(서울=뉴스1) 노선웅 기자 = 지난 8월 탈레반 세력을 피해 아프가니스탄을 떠난 난민 377명이 '특별기여자'란 이름으로 국내 입국했다. 현지에서 한국 정부를 도운 이들에게 정부는 장기체류 자격을 부여했다. 이 결정은 국민 10명 중 7명이 공감을 표했을 정도로 여론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정작 한국에 거주 중인 아프간 난민들은 생명을 위협받는 고국으로 내몰릴 처지가 됐다. 아프간 사태로 활발했던 난민 수용 논의가 특별기여자 대책 발표 이후 시들해졌기 때문이다.

◇"특별기여자와 왜 다를까요"

아프간의 소수민족인 하자라족 출신 유학생 나지브 배기씨(27·남)는 당장 목숨을 걸고 돌아가야하는 처지에 놓였다. 유학생 비자를 받아 국내 4년제 대학을 다니는 그는 내년 졸업을 앞두고 비자가 만료된다.

배기씨는 "돌아가고 싶어도 우리 하자라 민족을 학살하는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해 돌아갈 수 없다"며 "특별기여자를 받아준 한국 정부가 고맙지만,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우리를 그들과 다르게 대우하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실제 배기씨의 가족은 하자라족이란 이유로 20여년 전 탈레반에 무참히 살해당했다. 아프간 인구의 10%인 하자라족은 이슬람 시아파로, 수니파인 탈레반의 탄압을 받아왔다.

올 8월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한데다 이슬람국가(IS)와 전쟁까지 선포하며 아프간 내 소수민족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이다.

그는 "우리가 무작정 한국에 눌러앉겠다는 것은 아니다"며 "아프간 상황이 매우 심각하므로 한국에서 우리가 일하며 안전하게 지낼 수 있게만 도와달라는 것뿐"이라고 호소했다.

충남 논산의 한 플라스틱 공장에 다시는 아프간 난민 콰심 살레이(32)씨도 비슷한 처지다. 2018년 6개월마다 연장받아야 하는 G1(임시체류) 비자를 받아 입국한 그는 계속해서 연장 거부 통보를 받고 있다.

콰심씨는 "우리가 처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돈도, 먹을 것도 아닌 불투명한 미래"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우리 손으로 자립할 수 있음에도 비자도, 난민 지위도 못 받고 두려움에 떨며 살고 있다"며 "그저 안전하게 일하며 살아갈 수 있는 권리만 보장해달라"고 호소했다.

◇남은 선택지 '불법체류'

비자를 연장하지 못한 아프간 난민에게 남은 선택지는 불법체류자다. 난민인권센터에 따르면 한국정부의 난민 심사 기간은 완료까지 평균 16개월가량이 걸리며, 대부분이 난민으로 인정 받지 못한다.

한국에는 최대 1만여명의 아프간인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대부분 단기체류자나 불법체류자 신분이며 극소수만 난민 지위를 인정받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우리 정부 활동을 지원해온 아프간 현지인 직원 등 377 명이 '특별기여자' 신분으로 지난 8월 26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2021.8.26/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하지만 정부의 난민 문제 대책은 수십년 째 '제자리'라는 평가를 받는다.

4년 넘게 한국에 거주 중인 아프간 난민 아프잘 칸(35)씨는 관련 논의가 활발했던 지난 8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실에서 열린 '아프가니스탄 평화정착과 난민보호 모색을 위한 국회간담회'에 대표로 참석해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국회의원들은 난민 비자제도의 정책적 전환을 고려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칸씨의 비자 요청은 여전히 답을 듣지 못하고 있다. 칸씨는 "소식이 궁금하지만 불시에 쫓겨날까 봐 하루하루 숨죽이며 살아갈 뿐"이라고 말했다.

법무부는 이와 관련해 "현재 (인도적 특별체류 조치 외에)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아프간인들에 대한 일괄적인 추가 구제 절차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개별적으로 난민신청을 하는 등의 요청이 있을 땐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어 "국내 체류하고 있는 자의 난민지위 인정 여부는 난민법과 난민협약에 따라 사실 조사와 면접 등 개별적인 난민 심사를 진행해 판단할 사항"이라고 덧붙였다.

◇"'포상 성격' 난민 정책, '이민정책' 가까워"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아프간 난민에 대한 정부 정책이 국제법과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보편적·인도적 구조의 성격이 아닌 공로를 세운 이들에 대한 '포상' 성격이라 이민정책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동안 난민인권네트워크는 법무부가 부여하려는 '인도적 특별체류' 지위가 난민법 제2조 제3호에 따른 고문방지협약 상의 지위인 '인도적 체류허가'가 아니라며 개선을 요구했다.

국제법에 따라 보장되고 처우 등에 관한 권리가 부여되는 난민법상의 '인도적 체류허가'와는 명백히 다른 임의적이고 급조된 지위라는 것이다.

난민법 전문가인 이일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는 "특별기여자·인도적 특별체류 조치는 특별하지도, 인도적이지도 않다"며 "정부가 마치 높은 위치에서 포상을 주는 것처럼 하면서 공로를 포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9일(현지시간) 탈레반 군인들이 카불공항 표지판 앞에 서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금준혁 기자

이 변호사는 "인도적 특별체류 조치는 박해, 고문, 잔혹한 처우가 예상되는 곳으로의 송환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난민협약과 제33조와 고문방지협약 제2조 제1호와 달리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이들을 추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라고 설명했다.

buen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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