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기후대응 예산 2조원?..70%가 '간판'만 바꿔단 기존 사업

세종=김훈남 기자 2021. 11. 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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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2022년 예산안 톺아보기-下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이 지난해 12월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2050 탄소중립 실현 당정협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뉴스1


'2050년 탄소중립' 시대를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내년에 처음으로 만들어지는 기후대응기금. 정부가 이 기금의 내년도 사업예산으로 책정한 금액은 약 2조5000억원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 70% 이상이 사실은 기존 사업에서 간판만 바꿔단 것이었다.

정부 정책기조에 따라 기후변화 관련 예산 규모가 크게 늘어난 것처럼 보이도록 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론 일부 저탄소 사업의 예산은 오히려 삭감되기도 했다. 겉보기보다 실질적인 탄소중립 지원을 위한 예산안 편성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기후대응기금 사업 141건 중 절반 이상이 기존 사업
28일 머니투데이와 나라살림연구소가 공동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된 기후대응기금은 총 2조6536억원이다. 이 기금의 사업 가운데 공공자금관리기금 예수이자상환, 비통화금융기관 예치 등 비사업성 예산을 제외한 실제 사업 수는 141건, 이들 사업에 배정된 예산은 2조4567억원이다.

내년 처음으로 조성되는 기후대응기금은 올해 제정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탄소중립법 제69조는 '기후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탄소중립 사회 이행과 녹색성장을 촉진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기후대응 기금을 조성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법적으로 기후대응을 위한 예산을 편성하도록 해 안정적으로 탄소중립 시대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문제는 기후대응기금의 사업 141건 가운데 절반이 넘는 78건(1조7522억원 규모)의 사업이 올해 예산에 이미 반영된 기존 사업이라는 점이다. 예산액 기준으론 71.3%가 기존 사업에서 명찰만 바꿔단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제외하면 진짜 신규사업 예산은 모두 합쳐봐야 7044억원에 불과했다.

기금 조성을 위한 수입 계획을 봐도 기존 예산의 전입금이 1조673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기타경상이전수입이 7306억원, 예수금이 2500억원 등이었다.

주요 사업별로 보면 정부는 내년 '탄소중립 도시숲 조성사업'에 2688억원을 배정했다. 이 사업은 올해 산림청이 에너지 및 자원사업 특별회계를 통해 진행한 2238억원 규모 '미세먼지 저감 도시숲 조성관리' 사업의 명칭을 바꾼 것으로 확인됐다.

기후대응기금 사업예산 중 두번째로 규모가 큰 '공공건축물 그린리모델링 사업'은 올해 국토교통부가 진행하던 사업을 재배치한 것이다. 내년도 기금안에 반영한 사업예산은 2245억원으로 올해 사업예산에 비해 31억원(1.4%)이 삭감됐다. 정부는 지난해 '한국판 뉴딜'정책을 발표하면서 주요 사업 중 하나로 공공건축물 1000동의 친환경 전환을 위한 그린 리모델링 사업을 포함시켰는데, 탄소중립 가속화를 추진하는 정부가 정작 그린뉴딜의 핵심 사업 예산은 오히려 깎은 셈이다.

기후변화대응 기술개발(R&D) 사업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기존 사업인데, 올해 예산 1038억원에서 절반이 넘는 564억원(54.4%)을 삭감한 473억원을 책정했다. 이밖에 '친환경소비생활 및 저탄소생산기반 구축' 사업 예산을 111억원에서 90억원으로 18.6% 감액하는 등 기존 사업에서 예산이 삭감된 사업은 총 25건으로 집계됐다.

"무늬만 기후대응기금"

나머지 약 7000억원 규모의 진짜 신규사업들을 보면 전체의 56.8%에 해당하는 4000억원이 정책금융기관 출자를 포함한 녹색금융에 쓰인다. 신규사업 중 가장 예산 규모가 큰 사업은 KDB산업은행(산은)에 대한 녹색금융출자와 탄소중립전환 선도프로젝트 융자지원으로 각각 1500억원씩 배정됐다. 또 기후대응보증 사업으로 기술보증기금과 신용보증기금에 각각 500억원씩을 출연하기로 했다.

산은에 대한 녹색금융 출자는 민간이 1500억원을 투자하면 정부가 1대 1 방식으로 동일한 금액을 매칭·지원하는 방식의 정책금융으로, 앞으로 4년 동안 총 1조2000억원의 조달 목표를 세웠다. 탄소중립전환 선도프로젝트 융자지원은 탄소중립 전환·이행에 필수적인 선도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기업에 대한 융자지원 사업으로, 두 사업 모두 정부가 저탄소 사업전환과 녹색산업 투자의 초기 위험(리스크)를 부담하기 한 정책이다.

나머지 사업들에는 평균 50억원 정도씩의 예산이 배정됐다. 예산 규모가 100억원을 넘는 사업은 △단계도약형 탄소중립 기술개발 170억원 △탄소중립기술 인력양성(폴리텍) 150억원 △녹색정책금융 활성화사업 143억원 △신기후체제대응환경기술개발 104억원 등 4건에 불과하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기후대응기금의 사업은 신규사업보다 기존사업이 대부분으로, 일부 사업은 예산을 감액하기까지 했다"며 "안정적 재원확보를 위해 기금을 신설한다는 명분이 무색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무늬만 기후대응기금을 신설할 것이 아니라 2050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안정적 재원 확보에 기여하는 실질적 기후대응기금이 운영될 수 있도록 예산을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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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김훈남 기자 hoo1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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