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왔어요" 다급한 목소리..경찰은 수화기를 놓지 않았다

이사민 기자 2021. 11. 28.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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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베테랑]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34만건(2019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상담 중인 분당경찰서 청문감사인권 피해전담경찰관 문수미 경장(30) /사진=분당경찰서 제공


"경장님, '그 사람'이 왔어요"

지난해 11월 오후 2시30분쯤. 수화기 너머로 숨이 넘어갈 듯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당경찰서 문수미 경장(30)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건 이는 다름 아닌 문 경장이 평소 상담을 해온 스토킹 피해자였다. 미용실을 운영하던 피해자는 가게 손님으로 만난 30대 남성으로부터 스토킹과 살해 협박을 당해온 터였다.

문 경장이 전화를 받은 날은 바로 피해자가 경찰서를 재방문하기로 한 날이었다. 경찰서를 찾기 두어 시간 전 가해자는 다시 피해자의 영업장을 찾아 행패를 부린 것. 가게 문이 부서지고 유리창이 깨지며 아수라장이 됐다. 놀란 피해자는 인근 가게로 도망치며 경황이 없던 나머지 112가 아닌 문 경장 개인 휴대폰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자칫하면 끔찍한 강력범죄라도 일어날 수 있는 상황. 문 경장은 침착하게 피해자 전화를 끊지 않으면서도 112상황실과 소통했다. 위급한 순간 문 경장이 순발력을 발휘해 피해자는 다치지 않고 출동 경찰관을 만나 무사히 경찰서로 올 수 있었다.
어머니 때린 아들, 매 맞은 외국인 아내…상처 다독이는 '피해자전담경찰관'
문 경장과 같은 '피해자전담경찰관'은 범죄 피해자들이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끔 범죄 피해 회복을 돕는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석사로 범죄심리학을 전공한 문 경장은 '피해자심리전문요원'(CARE)으로 활동하며 범죄피해자들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전국에는 문 경장과 같은 '케어' 요원 230여명이 피해자들을 만난다.

문 경장은 이웃 간 다툼 같은 일상 사건부터 데이트폭력, 성범죄, 살인 등 각종 강력사건까지 도맡는다. 지난 1월에는 한 모자(母子)가 문 경장을 찾아왔다. 10대 아들은 외출 문제로 훈계를 하는 40대 어머니와 싸우다 화를 참지 못하고 존속폭행을 저질렀다.

이후 문 경장은 아들에게 폭행을 당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혼 후 어렵게 두 아들을 키우던 피해자는 자신이 '가해자의 어머니'가 됐다는 복잡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이에 문 경장은 외부 전문기관까지 연계해 모자가 소통할 수 있는 심층상담을 계획했다. 상담 과정에서 아들은 어머니와 대화하며 자신의 속내를 드러냈다. 깊은 이야기가 오간 끝에 가족은 비로소 화해할 수 있었다.

문 경장의 상담은 언어 장벽도 뛰어넘는다. 한국인 남편과 국제결혼을 한 뒤 가정폭력을 당한 영국인 피해자를 돕기도 했다. 피해자는 한국어와 국내 법체계를 잘 몰라 피해 회복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문 경장은 이혼 상담을 위한 법률사무소에도 피해자와 동행해 이혼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도왔다.

문 경장은 "당시만 해도 통역비가 지원되지 않아 번역기를 돌려가며 소통했다"면서 "이후 피해자가 정말 고맙다고 인사 주셔서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며 활짝 웃었다.
칼에 찔리는 '악몽'도…그럼에도 "피해자 아픔과는 비교도 안 돼"
분당경찰서 청문감사인권 피해전담경찰관 문수미 경장(30) /사진=이사민 기자

대형 참사도 피할 수 없다. 문 경장은 지난해 4월 발생한 '이천 물류센터 화재사고'를 잊지 못한다. 당시 문 경장은 화재로 한날한시에 세상을 뜬 카자흐스탄 형제의 유족을 돌봤다. 갑작스레 아버지를 잃은 초등학생 자녀가 홀로 머나먼 한국 땅을 밟을 수 있게끔 문 경장이 공항 이동, 통역, 코로나19(COVID-19) 격리 등 입국 절차 지원까지 세세하게 신경 썼다.

피해자의 상처는 곧 문 경장의 아픔이 되기도 한다. 문 경장은 종종 칼에 찔리는 악몽에 시달린다. 장시간 상담으로 강도상해, 살인 등 각종 범죄피해를 직·간접적으로 목격하기 때문이다. 문 경장은 "유족들의 아픔과 비교할 수는 없다"며 "그렇게라도 그분들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느낀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문 경장은 조금씩 일상으로 나아가는 피해자들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 지난 9월 강도상해를 당한 20대 남성은 문 경장과 처음 만날 때만 해도 마음의 상처가 커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어려워했다. 상담 이후 그는 자신의 아픔에 대해 주변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등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초심을 잃지 않겠습니다. 진심으로 듣고 존중하겠습니다. 앞으로도 피해자와의 만남을 단순 업무로써 대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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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민 기자 24m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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