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요소수에 공급망 쇼크..정부 '경제안보' 새 판 짠다
관련 법안 정비 및 예산 증액 등 제도적 기반 강화
(세종=뉴스1) 한종수 기자 = 정부가 요소수 품귀 사태를 계기로 특정국에 의존하는 주요 물자 공급망을 들여다보고 재편하는 작업을 본격화한다.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이어 또다시 공급망 문제가 불거지자 '경제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특정국가에 의존하는 공급망이 위험하다는 적신호가 여러 차례 켜졌다는 점에서 늦은 감이 없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관련 법안 정비와 예산 증액 등 제도적 기반을 더욱 조밀하게 하는 경제안보 전략이 만들어질지 주목된다.
2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6일 글로벌 공급망 충격에 근원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처음 열었던 '경제안보 핵심품목 태스크포스(TF)' 회의를 매주 정례화하고 필요에 따라 수시로 운용하기로 했다.
요소수 사태에서 드러난 글로벌 공급망(서플라이 체인·Supply Chain)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들여다보고 경제안보와 밀접한 핵심품목 공급망 관리를 체계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게 TF 신설의 의미다.
범정부 역량 결집을 위해 경제를 총괄하는 기재부를 비롯해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농림축산식품부,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부 등 11개 부처가 참여한다. TF 팀장은 기획재정부 이억원 1차관이 맡는다.
국제 분업 구조를 의미하는 글로벌 공급망은 '효율성'이 최우선 가치다. 품귀 사태로 온 나라를 마비시킬 지경에 이르렀던 요소수만 해도 국내에서 생산하는 것보다 중국에서 들여오는 게 채산성이 높다.
최근 자동차 산업에서 빚어지는 차량용 반도체 수급 차질과 2019년 일본이 핵심소재 수출 규제로 반도체 산업에 경종을 울렸던 불화수소 등의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이슈도 국제 분업구조로 빚어진 문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중국 의존도는 심각하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9월 1만2586개 수입 품목 중 특정 국가 의존도 80% 이상은 31.3%(3941개)이며 이 중에 절반인 1850개는 중국 의존도가 80%를 넘는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빚어지는 미국 주도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중국발 산업 소재 품귀 현상은 앞으로 더 빈발할 가능성이 크다. 전자제품 소재인 '마그네슘' 생산 1~3위 국인 북·중·러의 동맹이 세상을 멈출 수 있다는 주장을 허투루 볼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또한 '경제안보'는 첨단산업 분야뿐만 아니라 쌀 등 식량안보와도 직결된다. 우리나라가 쌀 시장을 개방해 값싼 미국, 동남아산을 들여왔다면 그사이 국내 쌀 산업은 무너지고, 요소수 사태처럼 수입하던 쌀이 끊기면 생존, 국가존립을 위협할 수 있게 된다. 이번 경제안보 TF에 산업부나 외교부 등 산업·외교 관련 부처뿐만 아니라 농식품부, 해양수산부 등이 참여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TF를 이끄는 이억원 기재부 1차관은 "최근 요소수 품귀 현상이 2년 전 일본 수출 규제에 이어 우리의 공급망 구조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한 소중한 계기였다"라며 "글로벌 공급망 교란에도 흔들리지 않는 국가적 차원의 공급망 리스크 관리체계를 강화하겠다"라고 밝혔다.
정부는 특정국 수입 의존도가 50% 이상이거나 관찰 필요성이 큰 4000여개 품목 대상으로 조기경보시스템(EWS)을 가동하고 수입 의존도가 특히 높은 마그네슘, 텅스텐 등 100~200개 경제안보 핵심품목을 지정하기로 했다.
더 나아가 경제안보에 필요한 관련 법안 정비, 예산 증액방안도 마련한다. 일본의 경우 최근 특허 공개 제한, 공급망 강화, 첨단기술 연구개발 지원 등을 골자로 한 경제안전보장추진법 추진, 5000억엔(약 5조2400억원)의 경제안전보장관련 기금을 마련하는 것처럼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김규판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선임연구위원은 "일본의 경제안전보장법, 예산 및 기금 확장처럼 대담한 투자에 우리 정부도 국내 공급망 강화와 첨단기술의 연구개발 지원 측면에서 벤치마킹할 수 있는 부분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일본 수출 규제에 이어 2년여 만에 다시 공급망 문제가 불거지자 부랴부랴 대응에 나섰다는 지적도 있다. 그런 만큼 임시방편식 대책에 몰두할 게 아니라 주요 기업들과의 협업체계 강화, 외교 체계 재정비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김바우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기업들 스스로 공급망 약점을 잘 알고 있으니 기업 협업이 필수적이며 특히, 의존도가 높은 중국과 FTA 공동위원회 등을 활용한 협의체 활성화, 아세안·남미 등 서플라이 체인 다변화 등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정부도 해외 공관과 무역관, 무역협회에 '해외 진출 기업 공급망 협의회'를 신설해 핵심품목의 수급 동향을 정기적으로 보고하도록 하고, 국내 주요 수입기업과 전문 무역상사, 수입협회 간에는 '핫라인'을 마련하는 등 공조 체계를 더욱 강화한다.
정부 관계자는 "경제안보 문제는 특정 부처나 특정 기업에 국한된 게 아닌 만큼 경제, 산업, 식량 및 한미동맹, 중국과의 관계 등 다양하게 짚으면서 관련 예산도 늘리고 법안도 정비하면서 근원적으로 대응해 나가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jepo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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