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35를 잡아라".. 세계 각국서 등장한 대항마는 '이것' [박수찬의 軍]
F-117의 위력에 놀란 세계 각국은 앞다투어 스텔스 기술을 포함한 첨단 전투기 개발에 나섰다. 하지만 미국은 강력한 스텔스 성능과 정보융합 기술 등을 갖춘 F-35A를 앞세워 미래 공군력 변화를 계속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F-35A가 세계 전투기 시장의 모든 수요를 충족할 수는 없는 상황.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F-35A를 얻지 못하는 국가들도 있다.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투기가 세계 시장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틈새시장’을 확보할 채비를 하고 있다.
◆중동에 모습 드러낸 러시아 스텔스기
중동 지역은 대표적 ‘틈새 시장’이다. 주변국보다 우월한 군사력을 유지하기를 원하는 이스라엘은 아랍 국가들이 미국산 스텔스기를 보유하는 것을 경계해 왔다.
사우디, 오만 등 역내 국가들은 F-15, 타이푼 등의 전투기를 대신 도입했지만, 이란의 위협에 맞설 수 있는 스텔스기와는 거리가 있었다.
지난 7월 모스크바 에어쇼에서 처음 공개된 직후 첫 국제무대 데뷔 장소로 중동을 선택한 것이다.
SU-75 제작사인 로스텍은 F-35보다 저렴하고 성능은 우수한 기종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15년 동안 300대를 판매할 수 있다”며 수주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2023년 첫 비행을 한 뒤 2027년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갈 SU-75는 러시아 공군에 배치되고 있는 SU-57 스텔스 전투기의 기술을 활용했다. 엔진 1개를 사용해 2800㎞를 날아가며 음속의 두 배에 이르는 속도를 낸다.
향후 5년 안에 인공지능(AI)으로 통제되는 무인기 형태도 개발할 계획을 갖고 있다.
대당 가격은 최대 3000만 달러(356억 원)로 스웨덴 그리펜 전투기 수준을 목표로 한다. 가격 대비 우수한 성능을 강조하면서 F-35A와의 차별화를 꾀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다.
러시아 정부도 SU-75와 방공체계를 포함한 자국 무기의 중동 수출에 적극적이다. 지난 8월 사우디와의 군사협력협정에 서명한 러시아는 두바이 에어쇼와 아부다비 국제 방위산업전시회(IDEX) 등을 통해 세일즈를 지속하고 있다.
사우디 국영석유회사 아람코가 소유한 아브카이크의 탈황 시설과 쿠라이스 유전이 지난 2019년 9월 드론 공격을 받았을 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산 방공미사일 S-300이나 S-400을 사우디에 공급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 미사일들이 사우디의 모든 인프라를 확실히 보호해줄 것”이라면서 S-300이나 그 개량형인 S-400 중 어떤 미사일을 구매할지는 사우디가 스스로 선택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에서 압도적 위력을 지닌 공군 전투기를 투입, 반군과 이슬람국가(IS)에 밀리고 있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이 전세를 뒤집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러시아 전투기가 미국 못지 않게 강력하다는 점을 중동 국가들에게 과시한 셈이다.
미국은 중국 국영 해운기업인 중국원양해운(COSCO)이 UAE 아부다비 인근 항구에서 진행한 공사 현장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되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이뤄진 F-35A 전투기 50대, 리퍼 무인기 18대 등을 포함한 230억 달러(약 27조3000억 원) 규모의 미국산 무기 수출 계획을 취소할 수 있다면서 UAE를 압박해 공사를 중단시켰다.
반면 러시아는 자국 이익에 부합하면 이같은 부분은 크게 요구하지 않는다. 전제 왕정이나 군사 정부가 집권하고 있는 중동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하지만 알제리, 아르메니아, 벨로루시, 카자흐스탄 등 러시아와 가까운 중동 및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최근 수년간 러시아산 전투기를 구매한 상황에서 SU-75의 대량 판매 가능성이 낮다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S-400 지대공미사일을 구매했던 터키가 미국의 제재로 어려움을 겪는 것을 많은 국가들이 지켜봤다는 점에서 러시아의 시장 확대 노력이 쉽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F-35A보다 한 세대 이전 기종인 F-16은 거듭된 개량을 거쳐 최신형인 F-16V가 등장했다. 실전에 배치된 지 오래된 기종이지만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F-35A를 도입하지 못하는 서방측 국가를 중심으로 수요가 끊이지 않고 있다.
F-16V는 기존 F-16과 외형상 차이가 거의 없다. 하지만 무장 및 전자장비는 최신형으로 교체돼 성능이 대폭 향상됐다.
최신형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와 임무컴퓨터, 전술데이터링크(Link-16)를 갖춰 20개 이상의 표적을 동시 추적할 수 있다. AIM-120을 비롯한 첨단 공대공·공대지·공대함 무기를 탑재해 4.5세대 전투기 중에서도 강력한 위력을 갖췄다.
대만은 F-16V를 적극 도입하는 대표적 국가다. 당초 F-35를 확보하려 했으나 중국과의 관계 등을 고려한 미국은 F-16V를 대만에 팔기로 했다. 특히 대만에 암약하는 중국 스파이들에게 F-35 관련 기술이 유출될 것을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프랑스에서 미라지 2000을 구매한 직후 신형 전투기 도입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상황에서 신형 기체를 어렵게 확보한 만큼 차이잉원 총통이 취역식에 직접 참석할 정도로 대만에선 중시되는 전력이다.
대만은 ‘봉황 전개’(鳳展)라는 사업명으로 F-16V 도입을 진행해왔다. 이 사업은 대만이 1990년대 초반 도입한 F-16A/B 141대를 F-16V로 성능개량하는 것과 미국 록히드마틴이 제작할 F-16V 66대를 신규 도입하는 사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대만 공군이 새로 실전 배치한 F-16V는 64대다. 이번에 실전 배치된 F-16V는 대만과 록히드마틴이 협력해 대만 내 F-16정비센터에서 진행 중인 F-16A/B 성능개량 사업에 포함된 물량이다. 다른 F-16A/B도 F-16V로 개조될 예정이다. 대만이 신규 도입한 F-16V은 2023년부터 대만에 인도된다.
F-35 공동개발국이었던 터키는 러시아산 S-400 지대공미사일 도입을 둘러싼 미국과의 갈등으로 F-35 프로그램에서 배제됐다. 5세대 스텔스 전투기 100대를 확보할 기회를 놓친 셈이다.
터키는 러시아산 전투기 도입을 검토했으나, 러시아는 SU-57 스텔스기 판매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4.5세대인 SU-35를 제안했다. 타이푼을 비롯한 유럽산 전투기는 프랑스와의 관계 악화로 구매가 어려워졌다.
반면 인접국 그리스는 프랑스에서 라팔 전투기를 도입하는 등 공군력 강화를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터키로서는 기존 F-16을 F-16V로 개량하는 방향으로 선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4500여 대가 생산된 F-16은 현재도 많은 수의 기체가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고, 노후화가 진행되면서 성능개량이 필요한 기체도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기존 F-16을 F-35A로 대체하기 어려운 국가를 중심으로 F-16V에 대한 수요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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