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성공했구나" 듣고싶다..'돈' 벌면 벤츠, '별' 달면 제네시스, 포르쉐는? [세상만車]
벤츠 E클래스 제네시스 G80
밴드왜건·파노플리 효과 한몫
포르쉐, '성공 아이콘'에 합류
자동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금수저 상류층 사람들만 소유했다. 단순한 이동수단을 넘어 운전자(또는 탑승자)의 신분을 상징했다.
상류층도 의식주 못지않게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자동차를 적극 활용했다. "난 너희들과 달라"라며 자신의 존재감과 위압감을 말없이 알려주기 위해서다.
자동차가 생활필수품이 되고 비교적 적은 돈으로 비싼 차를 탈 수 있는 대여(렌트), 금융상품, 구독 서비스 등이 나오면서 '차종=신분' 분위기는 약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신분이나 직위에 따라 탈 수 있는 차종이 달라지는 카스트 유산은 남아있다.
'성공의 상징'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 성공을 상징하는 대표 차종은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와 S클래스, 제네시스 G80과 G90, 현대차 그랜저다.
이 중 벤츠 E클래스는 수입차 분야, 제네시스 G80은 그랜저 뒤를 이어 국산차 분야에서 '금수저'가 아니더라도 타볼 수 있는 대중적인 '성공 아이콘'이 됐다.
물론 성공하지 않아도 탈 수 있다. 성공했다고 이들 차종만 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성공' 이미지는 이들 차종이 베스트셀링카로 자리 잡는 데 크게 기여했다.
E세그먼트 차종은 더 럭셔리하지만 부유하지 않으면 구입하기 어려운 F세그먼트(럭셔리카급)의 대형 차종보다 많이 팔리고 브랜드 이미지를 형성하는 중추 역할을 담당한다.
A세그먼트(경차급), B세그먼트(소형차급), C세그먼트(준중형차급), D세그먼트(중형차급)를 끌어주고 F세그먼트를 밀어준다.
E세그먼트를 장악해야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면서 시장을 '호령'할 수 있다. 당연히 자동차 브랜드들은 사활을 걸고 E세그먼트를 공략한다. 차종이 주는 심리적·사회적 이미지에도 공들인다.
게다가 이그제큐티브(Executive)는 경영진, 중역, 고급이라는 뜻을 지녔다. E세그먼트는 성공한 직장인이 오너 드리븐카(차주가 직접 운전하는 차)로 사용할 수 있는 마지노선처럼 여겨진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 통계에 따르면 벤츠 E클래스는 지난해 3만2480대가 판매됐다. 가장 많이 판매된 수입차종이다.
지난해 벤츠코리아 전체 판매대수 7만6879대의 절반 가까이가 벤츠 E클래스 몫이었다.
수입차협회가 집계하는 베스트셀링카 1위 자리도 벤츠 E클래스 차지였다. 벤츠 E250은 지난해 1만321대가 팔리면서 1위에 올랐다. 유일하게 판매대수 1만대를 돌파했다.
벤츠 E300 4매틱은 7835대로 3위를 기록했다. E클래스만 판매 톱10 자리에 두 개 모델이 포함됐다. 벤츠 E클래스 경쟁상대인 BMW 520은 6948대로 4위, 렉서스 ES300h는 5732대로 6위, 아우디 A6 40 TDI는 4923대로 8위를 기록했다.
벤츠 E클래스는 2016년 6월 10세대 모델이 출시된 뒤 5년 연속 1위에 오르는 기록도 세웠다. 지난해 10월 출시된 더뉴 벤츠 E클래스는 11~12월에 판매 돌풍을 올리며 1위 자리를 지키는 데 기여했다.
벤츠 E클래스는 올 1~10월 2만2913대가 판매됐다. 2위이자 막판 추격에 나선 BMW 5시리즈(1만5734대)를 7179대 차이로 제쳤다. BMW 5시리즈가 한 달 평균 1500대 정도 판매된 점을 감안하면 벤츠 E클래스를 따라잡긴 어렵다.
벤츠 E클래스 인기에는 '삼각별'로 대표되는 벤츠의 프리미엄 가치가 인증하는 성공과 성취가 한몫했다.
벤츠코리아가 다음소프트에 의뢰한 '벤츠 E클래스 소셜 빅데이터 분석 리포트'에서도 벤츠 E클래스는 한국 사회에서 개인의 성취를 인증하는 지표로 나타났다.
성취 연관어로 전통적인 '집'과 '아파트' 외에 '수입차'(외제차), '시계' 등에 대한 언급량이 증가하며 이들이 새로운 성취의 대상으로 나왔다.
다시 수입차 연관어를 분석한 결과, 성취 연관 모델로 벤츠 E클래스가 가장 많이 나왔다. 벤츠 E클래스를 성공을 상징하는 차로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또 벤츠 E클래스 연관어를 분석한 결과, '전문직'과 '맞벌이'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E클래스가 '고소득 맞벌이' 부부의 차로 인식되고 있는 동시에 우리 사회의 맞벌이 부부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하는 셈이다.
2008년 1월 1세대 제네시스(BH)로 첫선을 보였고 2013년에는 2세대 제네시스(DH)로 진화했다. 제네시스가 2015년 현대차에서 독립해 프리미엄 브랜드로 출범하면서 제네시스 G80이 됐다.
카이즈유데이터 연구소에 따르면 제네시스 G80은 지난해 5만4946대가 판매됐다. 전년(2만2625대)보다 142.9% 폭증했다.
14년 만에 국내에서 벤츠 E클래스를 잡으면서 국내 프리미엄 차종 1위 자리에도 올랐다. 벤츠 E클래스는 2019년 3만9788대, 지난해 3만3642대 각각 판매됐다.
제네시스 G80은 올 들어서는 1위 굳히기에 들어갔다. 올 1~10월 판매대수는 4만9856대다. 벤츠 E클래스(2만2913대)보다 두배 많이 팔렸다.
제네시스 G80은 대중화 길을 걷고 있는 그랜저 뒤를 이어 성공의 아이콘이 됐다. 그랜저보다 더 '급'이 높은 임원용 차로 자리매김했다.
대기업의 경우 상무급은 그랜저나 기아 K8, 전무급은 G80이나 K9을 제공한다. 대다수 직장인의 로망인 '별'을 달아야 탈 수 있는 차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글로벌 행사에 '의전차량'으로 자주 등장한 것도 성공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올해도 지난달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G20 발리 정상회의'에서 제네시스 G80 전동화 모델이 공식 VIP 차량으로 선정됐다.
미국 자동차 전문매체 로드앤트랙은 "신형 G80은 제네시스 브랜드의 새롭고 멋진 디자인 언어를 통해 BMW 5시리즈, 아우디 A6,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등과 경쟁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상대적'으로 벤츠 차종은 경제적 성공, 제네시스 차종은 사회적 성공과 명예에 좀 더 무게가 실린다. 돈 벌면 벤츠, 별 달면 제네시스인 셈이다.
물론 경제적으로 성공한 뒤 제네시스 G80을 구입하거나, 회사에서 임원으로 승진한 뒤 벤츠 E클래스를 제공받는 사례도 있다.
또 성공한다고 이들 차종만 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차종도 많이 선택한다. 성공하지 못했다고 살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성공' 이미지는 두 차종의 가치를 높여줬다. 경쟁차종들이 가격, 성능, 품질을 높여도 쉽게 따라잡기 어려운 경쟁력도 제공했다.
밴드왜건은 서커스 행렬 선두에 서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악대 자동차'다. 경제학과 심리학에서는 일부 부유층에서 시작한 과시적 소비를 주위 사람들이 따라하면서 사회 전체로 확산되는 '편승 효과'를 의미한다.
파노플리는 특정 계층이 소비하는 상품을 구입해 해당 계층에 자신도 속한다고 여기는 현상을 뜻한다. 상품이 사람을 평가한다는 생각이 바탕에 있다.
'성공' 이미지에 밴드왜건과 파노플리 효과가 결합하면서 시너지를 창출한 셈이다.
포르쉐는 성공한 연예인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일거수일투족이 노출되는 유명 연예인의 차는 그 자체로 이미지 형성에 기여한다. 연예계에서 성공하고 이미지도 좋다면 그 효과는 배가된다.
여기에 스타 연예인이 사용하는 제품을 품절사태로 만드는 밴드왜건 효과, 사회적 지위나 부를 과시하기 위해 가격이 더 비싼 물건을 흔쾌히 구입하는 베블런(veblen) 효과도 작용한다.
포르쉐는 올해에는 '국민MC' 유재석 덕을 봤다. 유재석은 지난 3월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제가 방송에서 몇 번이나 '예전에는 국산 차를 많이 탔지만 차를 바꾼 지 2년 정도 됐고 지금은 (포르쉐) 파나메라 탄다'고 밝혔는데 자꾸 편집을 하신다"며 속 시원하게 고백했다.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신과 함께'의 원작 웹툰 작가인 주호민도 포르쉐 성공 이미지에 기여했다. 그는 지난 8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채널을 통해 그동안 타던 기아 레이를 중고차로 내놓고 포르쉐 911을 구입한 사실을 밝혔다.
주호민은 영상에서 "작년에 마흔 살이 된 기념으로 드림카를 장만하려다가 어영부영 넘어갔는데 염따 선생의 '질러라, 그리고 더 열심히 일해라'라는 철학에 영향을 받았다"며 차량 구매 이유를 설명했다.
[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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