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신문 훔쳐갔다 전화까지.. 옥천신문이 만든 풍경

장슬기 기자 입력 2021. 11. 27. 16:08 수정 2021. 12. 1.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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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 황민호 옥천신문 대표 "대도시에서 온 인턴기자들 '옥며든다'며 변화"
"커뮤니티 저널리즘에선 모든 사람이 인터뷰 대상"…"옥천신문 구독 이유는 효능감이 높아서"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지역신문'이 오염됐다.

지역사회에 '밀착'해 주민들의 목소리를 전하기보다는 지방권력과 '유착'해 주민에게 외면받는다. 많은 경우 '사이비언론' 취급을 받는다. 지방자치제 시행 30년이 다 돼가는데 지역신문은 광역자치단체(광역시·도) 단위의 지방신문으로 이해된다. 서울과 중앙의 소식을 전하는 전국 단위 '중앙언론'을 흉내 내듯 해당 광역단위 내 대도시 소식을 다룬다. 기초자치단체(시·군·구) 단위의 지역신문은 쉽게 상상하지 않는다. 있더라도 대부분 관청 보도자료를 전하는 홍보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나 기초단체 단위에서 주민과 밀착하고, 지방권력을 감시하는 지역신문들은 포털에 보이지 않고 화제가 되지도 않지만 자신들의 지역을 공고히 지키고 있다. 지방분권과 풀뿌리 민주주의가 중요해지고 소규모 지역공동체를 복원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힘을 얻는 가운데 그 중심에는 지방행정과 토호세력이 아닌 주민 중심의 언론이 있을 수밖에 없다. 건강한 풀뿌리 지역신문이 곳곳에 존재하는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가장 선진적인 지역신문으로 평가받는 곳은 옥천신문이다.

옥천신문의 황민호 대표(발행인)는 2002년 입사해 10년간 옥천을 취재했다. 끈끈한 옥천 지역사회에 타지에서 온 그가 뛰어들었으니 힘들만도 하다. 물론 좁디좁은 옥천군을 10년이나 휘젓고 다녔으니 속속들이 다 알게 됐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옥천신문을 퇴사해 3년간 읍에서 가장 먼 청산면에서 주민들과 살았다. 기자 명함을 버렸을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다시 옥천신문에 와 현장취재에 나섰다. 제작실장 등을 거쳐 지난 8월 옥천신문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옥천신문에는 편집국, 총무국 등 말고도 '황민호국'이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옥천신문이 일개 지역신문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뿌리내려 '커뮤니티 저널리즘'을 실현하기 위한 '미디어플랜'을 계획하는데 이를 황 대표가 주도하고 있어서다. 이에 미디어오늘은 지난 19일 충북 옥천군 옥천읍에 위치한 옥천신문사에서 황 대표를 만났다.

▲ 19일 충북 옥천군 옥천신문사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는 황민호 옥천신문 대표. 사진=옥천신문

지난 17일 은평시민신문 유튜브 방송에 출연한 황 대표는 “최상의 미디어 리터러시는 모두가 저널리스트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아닌 시민들이 주변을 취재하고 비판의식을 가지며 스스로 말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라고 믿는다. 충북 제천에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과정), 서울에 윤세영 저널리즘스쿨(구 이대 프론티어 저널리즘스쿨)이 있다면 충북 옥천에는 '옥천 저널리즘스쿨'이 있다. 이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황 대표와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옥천 저널리즘스쿨은 언제부터 운영했나?

“2018년부터다. 처음에는 풀뿌리 청년학교라고 서울시 청년허브에서 하는 기자 체험 프로그램이었다. 옥천은 기자, 홍성은 농부, 춘천은 교육, 영광은 복지 등 서울 청년들이 지역에 내려가서 2주 동안 각 역할을 맡는 체험이었다. 서울시가 숙박과 식비를 지원해줬는데 옥천에서 숙박이 곤란했다. 여관을 빌리기엔 여관비가 너무 비싸서 따로 공간을 얻었다. 한해 15~20명 정도 오면서 2년 정도 했는데 (서울)시장도 바뀌고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지원이 끊어졌다. 2주 프로그램이었는데 더 있겠다는 사람들이 나왔다. 한 달, 3개월 길게는 6개월씩 더 있겠다고 하더라. 다른 지역에선 사업이 종료됐지만 옥천은 이걸 바탕으로 옥천 풀뿌리 청년학교를 시작했고, 지금은 옥천 저널리즘스쿨로 부른다.”

-지금은 어떻게 운영하나?

“사람이 많아지니까 여기(옥천신문 2층)에는 방이 두 개인데 안 되겠더라. 옥천읍내 보증금 저렴한 곳을 얻어 1인1실 제공하고 방세 월 10만 원, 밥값 11만 원 정도 받는다. 처음에는 우리가 다 부담했는데 교육비는 안 받는 대신 숙박비와 식비만 받았다. 계속 진행하다 보니 교육이라고는 하지만 노동을 하게 되니 급여를 줘야 하지 않나. 청년일자리 지원정책을 통해 급여를 주기 시작했다. 옥천 저널리즘스쿨 출신들이 한겨레, 경남도민일보 등에 입사하기도 했다.”

-실제 현장을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하는 게 도움이 될 거 같다.

“바이라인도 본인 이름으로 나가고 자발적으로 아이템 발제하고 취재지도 하니까 재밌어한다. (인턴기자) 명함도 만들어주고 직접 현장에 가서 취재하고 검토해주면 지면에도 실리고, 성취감에 발전하고 있다. 전국에서 온다. 서울, 경북, 충남 등 10여명 되니까 자기들끼리 커뮤니티도 형성돼서 어울린다. 한 인턴기자가 '서울에 있을 때 언론고시 강박으로 하루하루 지옥같았는데 여기 오니까 마음의 평화를 찾아 더 있고 싶다'고 하더라. '옥며든다'고 한다. '옥천에 스며든다'는 뜻으로. (하하) 그런 친구들의 변화를 보면서 고맙고 반가웠다.”

-강사진은 어떻게 되나?

“우린 미리 짜놓은 프로그램이 없다. 대략 옥천신문과 '커뮤니티 저널리즘'을 설명하고 실전에 투입한다. 처음 동행 취재를 몇 번 하면 스스로 아이템 발제한다. 이번 12월 말이면 6개월되는데 연장하고 싶다고들 한다. 임금을 어떻게 마련할까 걱정이다. 근무시간을 줄여야 하나. 돈을 구해야 한다.(하하)”

▲ 옥천신문 신문 배달 차량. 사진=장슬기 기자

-정부나 지자체에서 청년일자리 사업 등 청년 지원 프로그램이 좀 있던데.

“행정안전부 청년마을 사업 신청했는데 지난해에 떨어졌다. 내년에 다시 신청할 생각이다.”

-기자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대도시 급박한 사이클에서 벗어나서 실제 취재도 하면서 급여도 받아 좋을 것 같다.

“힐링도 한다. 서울에서 여기 오는 학생들은 종합일간지 등에서 인턴을 한 경우가 많다. 책상에 앉아 SNS 뒤졌는데 진짜 취재를 하고 싶다고 온다. 면접 때 '원 없이 현장 취재할 수 있는 곳이니까 능력껏 취재해보라'고 말한다. 승용차 한대 인턴기자용으로 마련해 알아서 쓰라고 했다. 자전거도 5대 마련해서 가까운 데는 자전거 타고 다닌다. 지역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다. 특히 도시 청년들은 농촌이 생소하고 낯설다. 기자도 기자지만 지역을 경험하고 농민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경험을 언제 하겠나. '한달 살아보기'가 유행처럼 번지지만 한달을 그냥 사는 것보다는 사람들 만나고 이야기 들어서 기록하고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누구나 만날 수 있다.”

-'커뮤니티 저널리즘'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커뮤니티 저널리즘은 보통의 저널리즘과 다르다. 일반 저널리즘이 창이라면 커뮤니티 저널리즘은 거울이다. 내가 안에 있으면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본다. 그러나 거울은 스스로를 보게 한다. 내가 사는 지역이 어떤지 보는 것이다. 개념이 다르다. 일반 뉴스는 저명한 사람, 뉴스거리가 되는 사람을 인터뷰하지만 커뮤니티 저널리즘에선 모든 사람이 특별하다. 누구나 인터뷰 대상이 될 수 있도록 지역사회에 밀착한다. 누가 학생회장이 되면 인터뷰하고, '고추농사 잘 됐다'고 취재 와달라고 하면 가서 얘기를 듣는다. 사소해 보이는 민원도 다 듣는 거다. 지역공동체의 일원이니까. 주민들이 옥천신문을 구독하는 이유는 효능감이 높기 때문이다. 제보를 하면 해소가 되고 내가 아는 사람들이 신문에 나온다. 지역공동체에 대한 만족감, 자긍심에 살맛나게 된다. 신문이 매주 배달되는데 안 보면 쌓이지 않나. 그러면 금방 끊는다. 그렇지만 옥천신문은 훔쳐 가서 보는 사람도 있다.”

▲ 19일자 옥천신문 1면

-요즘에도 종이신문을 훔쳐다 보는 사람도 있나?

“훔쳐 갔다고 다시 보내달라는 전화가 많이 온다. 문제가 생겼을 때 군청에 가고 경찰서도 가서도 해결이 안 되면 마지막으로 신문사로 온다. 정말 답답해서 옥천을 떠나려고 했지만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이 기록하고 때론 문제해결까지 해주면 감동한다. 옥천신문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이유다. 실제 옥천신문은 안남면 주민들이 태양광 난개발할 때 지속적으로 보도했다. 환경미화원 1년간 부당해고 당해 복직투쟁할 때 지속적으로 보도했고, 방문보건노동자들 부당해고 사건도 마찬가지다. 주민들이 친구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려울 때 나를 마지막으로 지켜주는 사람들이라고. 신문은 민(民)의 권력이어야 한다. 옥천에선 사람들이 술 먹다가 '야 너 잘못하면 옥천신문에 나와'라고들 한다. (잘못한 사람에겐) 무섭고 두려운 존재, (그렇지 않으면) 친한 친구 같은 존재다.”

▲ 19일 충북 옥천군 옥천신문사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는 황민호 옥천신문 대표. 사진=옥천신문

-'지역신문'이라는 말이 꽤 더럽혀졌다. 좋지 않은 뜻으로 이해되고 관련 기사 댓글도 대부분 부정적이다.

“지방일간지는 거점 중심이다. 청주의 소식을 다루면서 '충북일보'라고 하는 식이다. 나머지 시군은 들러리다. 그 안에서도 차별을 받는다. 바람직한 지방일간지는 그런 게 아니다. 수평적으로 연대해야 한다. 지방일간지에선 작은 시군에 주재기자를 파견하고, 파견된 기자는 좌천됐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해결되지 않고 수직적 문화가 깨지지 않으면 바뀔 수 없다.”

-지방일간지들의 최근 주요 이슈는 한 지역에 한 언론사씩 포털에 들어가는 문제다.

“지역신문이라고 하기 어렵다. 서울 종합일간지의 아류다. 서울에 있는 종합일간지와 지방일간지의 격차는 크지 않지만 지역일간지와 (기초자치단위의) 지역주간지는 격차가 크다.”

다음 기사에선 옥천신문에서 파생한 다양한 미디어 스타트업과 옥천신문이 구상하는 '미디어플랜'에 대한 인터뷰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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