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스타일로 쇼팽답게 연주하라고요?

한겨레 2021. 11. 27.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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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임현정의 클래식 산책][한겨레S] 임현정의 클래식 산책
예술의 정답
고전 음악가라고 불리는 그들이 오늘날까지 우리와 함께 살아 숨 쉬는 이유는 틀을 벗어난 혁신적인 정신을 음악에 녹여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베토벤이 우리에게 “내 음악은 내 스타일대로만 연주해야 해”라고 말하는 모습은 상상도 할 수가 없다. 사진은 피아니스트 임현정씨가 한 음악가에게 지도를 하고 있는 모습. 다나기획 제공

파도 소리는 과연 어떤 소리일까? ‘철썩철썩’ ‘찰싹찰싹’ ‘쏴아아’. 어떤 표현이 정답일까? 사실 파도 소리에 대한 정답은 아무도 갖고 있지 않다. 그저 각자 자유롭고 솔직하게 자신만의 소리로 표현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예술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완벽함을 추구하게 되며 어떤 특정한 정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경우가 있다. 피카소는 만약 예술에 정답이 있다면 같은 나무를 10명의 화가가 그렸을 때 10개의 똑같은 그림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화가의 수만큼 각자 유일한 그림이 나오기 마련인데, 그것은 바로 자신의 유일무이한 영혼의 소리를 내는 것이 예술의 아름다운 역할이기 때문이다.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특정한 정답은 존재하지 않고 최상의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다르게 말하면, 음악인의 수만큼 정답이 존재한다. 감정 팔레트의 무한한 가능성을 둘러보며 ‘이거다!’라고 가슴을 관통하는 음악을 추구하는 것이다.

고전 음악가는 틀을 벗어난 혁신가

여러 음악 전공생들은 나에게 비슷한 질문을 자주 한다. 요약하자면 한 작곡가의 곡을 연주하면서 느껴지는 감정들을 마음껏 표현하고 싶은 갈망이 있지만, 바흐나 베토벤의 경우 고전적이라 딱딱하고 엄격하게 연주해야 한다는 가르침 때문에 두려움의 브레이크가 잡히고, 쇼팽의 경우는 섬세하고 여리게 연주를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소위 말해 ‘기를 못 편다’는 것이다. 무슨 기준으로 누가 이런 규칙을 정한 것일까? 혹시 우리가 모르는 ‘국제 쇼팽(혹은 베토벤) 점검협회’라도 있는 것일까? 콩쿠르나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저 점검협회의 눈치만 보아야 하는 것이리라. 또, 실제로 펜을 들고 점수를 매기며 자신들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심사위원들에게까지 잘 보여야 하는 부담까지 안게 된다. 그래서 순수하게 음악 그 자체에 대한 사랑에 빠지기도 전에 콩쿠르에서 이기거나 시험에 합격하기 위하여 발버둥 치는 상황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원통한 일인가.

이토록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로 가득 찬 어지러운 카오스 속에서 연주자가 진정한 자신의 목소리를 듣기는 쉽지 않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때가 있다. 설령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지 확실히 안다고 할지언정 수많은 검열을 뚫고 용기 있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것인지, 아니면 느끼는 감정을 억제하고 남의 시선을 우선시하며 타협할 것인지, 이런 딜레마 속에서 힘들어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연주자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누구누구답게 연주하라’는 지침
정작 쇼팽은 생전에 제자에게
“네 마음 자유롭게 따르라”고 해 

실제로 연주자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바로 ‘베토벤 스타일답게’, 혹은 ‘쇼팽 스타일답게’, 즉 누구누구 스타일로 연주하라는 말이다. 이러한 요구가 당황스러운 이유는 ‘과연 베토벤 본인은 베토벤 스타일이 무엇인지 알았을까?’라는 의구심 때문이다. 베토벤이 우리에게 “내 음악은 내 스타일대로만 연주해야 해”라고 말하는 모습은 상상도 할 수가 없다. 어떻게 그들 자신도 모르는 ‘베토벤적인’ ‘쇼팽적인’ 스타일을 운운할 수 있는가. 베토벤과 쇼팽은 그저 그들이었을 따름이고, 그들이 음악을 추구한 이유 역시 영혼의 자유로움과 표현의 자유로움을 누리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실제로 그들은 음악을 통해 자유로움의 가치를 끊임없이 선사하고 있고 자신들의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인들 역시 그런 행복을 누리기를 바라지 않을까.

고전 음악가라고 불리는 그들이 오늘날까지 우리와 함께 살아 숨 쉬는 이유는 틀을 벗어난 혁신적인 정신을 음악에 녹여냈기 때문이다. 과거의 유산을 최선을 다하여 습득하고 존중하되 고정관념과 관습을 뒤흔드는 데 두려움이 없었으며, 이러한 자세를 바탕으로 혁신하고 창조하며 도약을 이루었다. 버림받고 비판받을지언정 자신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환호가 뒤따른 것이다. 그들의 작품이 세월을 관통하여 우리에게까지 감동을 줄 수 있는 이유는 한 치의 위선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표현하는 위험을 감수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은 음악을 절대적으로 창조했고, 절대적으로 사랑했으며 자유의 권리를 확실하게 선택했고 누렸다. 그들은 낯선 것,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맞서 싸웠으며 불안감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다. 엄청난 각오와 노력이 필요하지만, 본질적으로 우리는 모두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역량은 우리가 요구하는 만큼 어느 정도 따라오게 되어 있다.

진정한 자신 드러내는 용기가 필요

쇼팽이 제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연주할 때 당신이 하고 싶은 모든 것을 다 하십시오. 저는 당신에게 그런 권한을 드립니다. 당신이 창조한 이상을 당신의 마음 안에서 느껴보십시오. 그리고 자유롭게 따라가십시오. 아주 대담해지세요. 당신 자신의 능력과 힘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당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언제든지 좋을 것입니다.” 다른 제자에게는 이런 말도 남겼다. “우리 두 사람은 그 곡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어. 하지만 너의 마음이 가는 쪽으로 연주하렴. 네가 느끼는 대로 하려무나. 그 방향으로도 갈 수 있으니까.”

결국 예술은 ‘맞다’ ‘틀리다’를 논하는 데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슴을 떳떳하게 관통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얼마나 진실하게 그것을 표현하는지, 그리고 작품을 이해하기 위하여 얼마나 깊은 탐구를 하고 있는지(작품을 둘러싼 역사적 배경, 곡 분석, 화성적인 이해, 구조적 이해 등)에 초점을 두는 것이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 간절히 전달하고 싶은 메세지가 무엇인가? 어떤 선택을 할 때 가장 기운이 나는가? 우리 모두 한번쯤은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면 어떨까.

자기 자신이든 남이든 조건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것이 어려울 때가 많다.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위한 시도를 반복할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진정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위험을 무릅써보자. 마치 “에이, 모르겠다!” 하고 바다에 뛰어드는 것과 비슷한데, 위험을 감수할 수 있을 때 우리가 ‘나’라고 알고 있는 ‘소아’(小我)를 내려놓을 수 있고, 그 순간 커다란 자신, 즉 바다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음악을 인위적으로 연주하고 해석하는 것을 멈추고, 음악이 우리 영혼을 관통하도록 있는 그대로 느껴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피아니스트, 서울대 산업수학센터(IMDARC) 자문위원. 프랑스 국립음악원 피아노과를 최연소 수석 졸업했으며, 영국의 음반회사 이엠아이(EMI)에서 2012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앨범을 내면서 데뷔했다. 독창적이고 대범한 곡 해석으로 유명하며, 음악에서 자유를 추구한다.
피아니스트 임현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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