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회장 불법파견 죄 물어라..나에 대한 중형도 달게 받겠다"

김종철 2021. 11. 27.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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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김종철의 여기][한겨레S] 김종철의 여기_ 5년6개월 구형받은 비정규직 투사 김수억
“최후진술 때 5년6개월 구형을 달게 받겠다고 얘기하려고요. 다만,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나 정의선 현대차 회장처럼 불법을 저지른 재벌에 대해서도 저한테 했던 잣대만큼 가감 없이 법을 적용해달라는 얘기를 꼭 하려고요.”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김수억씨가 지난 1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비정규노동자쉼터 꿀잠’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설마?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는 집회와 시위를 여러차례 주도했다고 5년6개월의 징역형을 구형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귀를 의심했다. 집회와 시위 과정에서 뭔가 중대한 불법행위를 한 건 아닐까. 그러지 않고서야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그런 엄벌을 요구했을까 싶었다.

그래서 더 검찰 공소장을 꼼꼼히 들여다봤다. 그러나, 해당 집회나 시위에 위협적인 도구가 등장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특수건조물침입, 도로교통방해,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여러 죄목이 나열돼 있지만, 관청의 사무실이나 로비에 들어가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면서 농성하거나 신고 범위를 조금 벗어나 도로를 점거하고 행진한 정도였다. 또, 경찰들과의 몸싸움 과정에서 일어난 폭행 혐의도 있었지만, 전치 2주의 팔 타박상이나 발목 염좌(근육이나 인대의 손상) 등 비교적 가벼운 상해였다. 물론 직접 가해자가 누구인지는 특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달 1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서 기소된 17명의 비정규직 노동자 전원에게 징역 5년6개월부터 6개월까지의 실형을 판사에게 요구했다. 여러차례 시위를 벌였다는 점이 아마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실제로 가장 무거운 구형을 받은 김수억(45·이하 호칭 생략) 전 기아자동차 노조 비정규직 지회장의 경우 검찰 시각에서는 상습 시위꾼이다. 이번 기소장에서 그가 직접 관련된 것만도 5건이다. 김수억은 집시법 위반 등으로 과거 수차례 벌금형을 받았으며, 회사 파업과 관련해서 두차례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또, 다른 비정규직 투쟁과 관련한 2심 재판을 받고 있으며, 지난해와 올해 있었던 여러 노동자 시위와 관련해서도 또다시 기소될 가능성이 높다. 가중 처벌의 위험성이 높은데도 그는 왜 끊임없이 거리로 나서 법률의 울타리를 넘으려 하는 걸까.

인터뷰 요청에 김수억은 자칫 나홀로 주인공으로 부각될까 봐 주저했다. 인터뷰의 특성 등을 설명한 뒤에야 마주 앉을 수 있었다. 지난 1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있는 ‘비정규노동자쉼터 꿀잠’에서 김수억을 만났다.

20년간 비정규직 투쟁에 앞장…두번 구속 등 잇따른 고초

“다시 구형하겠다는 건 검찰 꼼수”

―요즘 출근은 어디로 해요?

“경기도 화성에 있는 기아자동차 공장입니다. 수원이 집인데 통근버스 타고 출근해서 다른 동료들과 같이 각종 부품을 서열대로 조립공장에 공급해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는군요. 노조 전임이 아닌가요?

“기아차 비정규직노조 지회장을 하다가 2년 전에 현장으로 복귀했어요. ‘비정규직 이제그만’이라는 단체의 공동소집권자로 있지만, 회사와는 직접 관계가 없어요.”

‘비정규직 이제그만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은 2018년 후반 전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연대 투쟁단체다. 대표 격인 공동소집권자는 김수억 외에 차헌호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지회장과 김주환 전국대리운전노조 위원장 등 3명이다.

―5년6개월의 구형을 받았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어요?

“잘못 들은 줄 알았어요. 여러 건이 병합되어 있어서 구형이 가볍지만은 않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마는 그런 정도로 중한 구형이 나올지는 몰랐어요. 시위하면서 경찰들하고 물리적 충돌이 세게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집시법과 도로교통법 위반, 공무집행 방해 등 시위 때 발생하기 마련인 정도의 위반사항이거든요.”

―재구형이 오는 30일에 예정돼 있다는데 그건 뭔가요?

“이런 경우도 처음 봤어요. 검찰이 구형을 하고 저희가 최후진술까지 마쳤는데 검찰이 한 사안에 대해 뒤늦게 공소장 변경을 했고, 그래서 다시 구형을 한대요. 그 변경 내용이 참 웃겨요. 저희가 2018년 11월에 대검찰청 로비에서 항의 농성을 하다가 연행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을 건조물 침입으로 기소를 했다가 퇴거 불응으로 바꿨어요. 녹화 영상을 봐도 알지만, 당시 다른 사람이 자유롭게 통행하고 있는 등 업무가 정상대로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에 건조물 침입으로는 무죄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해요. 그러니까 검찰에서 퇴거 불응으로 바꾼 거예요. 세차례의 퇴거 요청에 저희가 안 따른 것은 사실이거든요. 어떻게든 유죄를 받아내겠다는 꼼수죠.”

일련의 비정규직 시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18년 7월 말부터였다. 문재인 정부가 과거 정부의 노동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고용노동부 산하에 만든 고용노동행정개혁위(위원장 이병훈)가 9개월 동안의 활동을 끝내는 시점이었다. 노동개혁위는 최종 보고서에서 △5인 미만 사업장에서의 근로기준법 적용 △전교조 법외노조를 직권으로 취소할 것 등과 함께 불법파견 노동의 대표적인 사업장인 현대·기아차의 사내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직접고용 명령을 내릴 것을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현대·기아차의 불법 파견 피해 당사자인 김수억을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개혁위의 최종 결론이 나오기 며칠 전부터 노동개혁위가 열리는 건물(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들어가 고용노동부 장관 면담을 요구하는 등 압박 시위에 나섰다. 결론이 나온 뒤에는 투쟁 강도를 더 높였다. 노동개혁위의 여러 권고를 고용노동부가 즉각 실행하지 않고 미적거렸기 때문이다. 이들은 고용노동부뿐 아니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회, 정부서울청사, 대검찰청, 대법원 등을 찾아 항의 시위를 벌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비정규직 대표 100인의 대화를 요구하면서 청와대 앞에도 여러차례 찾아갔다. 비정규직 연대 투쟁 과정에서 태안화력발전소의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이 일하다가 참혹하게 숨졌으며, 이를 계기로 중대재해법 제정 투쟁도 벌였다. 이러한 투쟁의 전면에는 항상 김수억이 있었다.

2019년 1월18일 청와대 신무문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과의 대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인 뒤 집시법 위반 혐의로 체포돼 경찰에 연행되는 김수억씨.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김수억씨는 2019년 7월 말부터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현대·기아차의 불법 파견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시정 명령을 할 것을 요구하면서 47일간 단식 투쟁을 했다. 단식 30일째(8월27일)의 김수억씨. 한겨레티브이 김도성 피디 kdspd@hani.co.kr

“대기업 불법파견 처벌 않는데, 중소기업이 불법파견 관두겠나”

문 정부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노동개혁위의 권고가 나온 뒤에는 기대가 컸겠군요.

“저희는 대단히 기대했죠.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와 민간기업의 불법 파견 해소 등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유튜브 방송(‘비정규직의 눈물’)까지 했던 대선 공약이었던데다가 초대 고용노동부 장관인 김영주 장관도 불법 파견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었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불법 파견 문제만큼은 바로잡히겠구나 하고 기대했죠.”

―실제로는 고용노동부가 제대로 안 움직였고요?

“네. 저희가 그해 9월 말에서 10월 초까지 서울고용노동청을 점거하고 농성한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노동개혁위 권고대로 지금이라도 왜 불법 파견에 대한 시정명령을 하지 않느냐고 고용노동부에 묻기 위한 것이었어요. 원청의 불법 파견 문제에 대해서 고용노동부가 할 수 있는 게 있거든요. 시정 명령을 내리고, 따르지 않으면 과태료를 때리고, 그래도 안 들으면 처벌하라고 검찰에 기소 요청을 하면 되거든요. 노동부는 2004년부터 그 권한 행사를 한번도 안 해왔어요. 그동안 현대·기아차의 불법 파견을 확인하는 법원 판결만도 32번이나 있었는데도 말이죠. 결국 저희가 점거 농성과 각종 시위를 벌이고, 제가 47일간 단식(2019년 7월 말~9월 초)을 하고 난 뒤인 2019년 10월에야 고용노동부는 현대·기아차에 불법 파견 시정 명령을 했어요.”

―고용노동부가 노동개혁위의 권고가 있고서도 1년이나 시간을 끌었군요.

“근데 끝도 없는 게 그 시정 명령도 반쪽짜리였어요. 검찰에 기소 의견을 보내면 법원의 판결이 기준이어야 되잖아요. 법원은 컨베이어벨트에서 업무를 하는 직접 공정이든 컨베이어벨트 바깥에서 일하는 간접 공정이든 불법 파견이라고 판단했죠. 그런데 고용노동부는 검찰과 회사가 주장했던 대로 직접 공정만 불법 파견이라면서 그 부분만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고 과태료를 요구했어요. 제가 단식에 들어간 것은 반쪽짜리 시정 명령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걸 막기 위해서였어요. 2004년부터 따지면 15년 만에 겨우 시정 명령을 하면서 법원 기준이 아니라 회사 쪽 주장대로 한다면 고용노동부가 재벌의 호위무사이지 노동자들을 대변한다고 할 수 없잖아요. 근데 단식이 끝나고 얼마 뒤 결국은 반쪽짜리로 시정 명령을 하더군요.”

―싸움을 하더라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경찰이나 검찰에 꼬투리도 안 잡히고요.

“오죽하면 그러겠어요. 그렇게 악을 쓰는데도 문재인 정부가 우리 목소리에 귀를 안 기울이잖아요. 비정규직 문제를 알리기 위해서는 불법으로라도 농성하고 단식하는 것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어요.”

현대차와 기아차는 그 뒤 사내 하청업체의 노동자들을 특별채용 형식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검찰이 2019년 7월 재벌 기업 대표로는 처음 불법 파견 혐의로 기소한 박한우 전 기아차 사장에 대한 재판도 느리지만 진행 중에 있다.

―지난한 투쟁의 성과인가요?

“사실은 특별채용이 문제예요. 모르는 사람은 특별채용으로 정규직이 됐으니 이제 괜찮은 거 아니냐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특별채용으로 가는 사람들은 많은 걸 포기했습니다. 첫째는 정규직으로서 당연히 받아야 할 그동안의 체불임금을 포기했어요. 제일 중요한 것은 파견 문제에 대해서 법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부분입니다. 그런 내용의 각서를 써야 특별채용 원서를 넣을 수 있어요. 당신들이 지은 죄를 추궁하지 않겠다는 것을 피해자가 약속해야 하는 이런 나라가 상식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게다가 특별채용도 1차 하청업체에 대해서만 하고, 2차와 3차 하청들은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어요. 그러고는 공장 안에 하청업체를 두면 불법으로 판정이 나니까 이제는 하청업체들을 아예 공장 밖으로 빼고 있어요. 소위 합법 파견으로 만들어서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만년 비정규직으로 두겠다는 거죠.”

―특별채용을 거부하고 남아 있는 사람도 있다고요?

“불법 파견 책임자들은 반드시 처벌받아야 된다, 그리고 내 권리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들이죠. 기아차의 경우 약 350명 정도 되는데 저도 그중 한명이고요. 현대·기아차라는 재벌의 불법 파견은 사회적으로 공개된 범죄인데 이게 바로잡아지지 않으면 대한민국에서 어떤 기업체 사장이 불법 파견을 안 하겠어요.”

“특별채용·자회사 정규직은 짝퉁…전체 비정규직 뭉쳐서 해결해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난 8월24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불법파견으로 고통받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대한 입장을 이재명 윤석열 등 대선후보들에게 공개 질의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첫 파업 날 감격의 눈물

김수억은 2003년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의 하청업체인 신성물류에 입사했다. 조립할 자동차 부품을 순서대로 배열해주는 일을 하는 업체다. 그는 2005년 화성공장의 비정규직 지회 결성을 주도했으며, 2007년에는 비정규직 지회장을 맡았다. 2007년 파업으로 2년6개월 실형을 살았으며, 5년간 해고됐다가 2016년에 복직했다.

―비정규직 싸움에 나선 계기는 뭐였어요?

“2003년 4월에 입사를 했는데 진짜 노예 같았어요. 스물여덟살이었는데 관리자가 저한테 한달은 꾹 참고 일해야지 중간에 나가면 안 된다고 말했어요. 젊은 사람들이 들어왔다가 일도 힘들고 돈도 적은데 막 시달리니까 일주일을 못 버티고 죄다 도망가더라고요. 겨울에는 난로가 없고, 여름에는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제대로 없었어요. 그런데 우리 바로 앞 정규직이 일하는 곳은 에어컨이 나오고 겨울에는 난로가 설치돼요. 심지어는 비정규직들에게는 현장에서 사용하는 장갑도 제대로 지급을 안 해줘서 정규직들이 쓰다 버린 장갑을 휴지통에서 주워 빨아서 사용했어요. 젊은 관리자들한테 50대·60대 고령의 노동자들이 반말과 욕지거리를 듣고도 말 한마디도 못 하는 상황이었죠. 인간적 모멸감, 이런 것들이 일상적 고통으로 있는 그런 곳이었어요.”

―그래도 직접 싸움에 나서는 것은 결단이 필요한 일일 텐데요.

“실은 저는 비정규직 노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기아차에 들어갔었어요. 고향인 광주에서 대학(전남대 신문방송학과)에 다니다가 2학년 때 학사경고 누적으로 제적이 됐어요. 광주 학살 책임자인 전두환과 노태우 처벌을 요구하면서 시위하느라 공부는 안 했거든요.(웃음) 그 뒤 서울에 올라와서 전태일기념사업회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했어요. 그때 한국통신계약직노조의 투쟁(1999~2001년)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알게 됐어요. 학교로 돌아갈 게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있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는 노동문제 등을 공부하기 위해 성공회대(사회과학부)에도 적을 뒀지만, 중간에 관두고 비정규직 노동 현장으로 갔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그의 이력을 파악한 회사는 위장취업자라고 비난하는 지라시를 사내에 뿌렸다. 하지만 동료 노동자들이 “대학 다니다가 이거 하는 게 뭐 나쁜 일이냐. 더 고마운 일이지”라며 편을 들어줬다. 마침내 2005년 화성공장에 첫 비정규직 노조가 설립됐다.

―입사 2년 만에 목표를 이뤘군요.

“네. 하청업체별로 노동자회를 만들어 단결력을 키운 뒤 노조로 갔죠. 노조 만들고 첫 파업 하는 날, 현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다 울었어요. 무서워서가 아니라 감격해서요. 사람 대접 못 받다가 우리가 일을 안 하고 파업하니까 공장이 서는 것을 보고는 아, 우리가 공장 주인이었구나 하는 것을 알았거든요. 그때부터는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다 노조 조끼를 입고 다녔어요. 조끼를 입고 있으면 누구도 말을 함부로 못 했거든요. 한해 한해 싸울 때마다 삶이 진짜로 바뀌어갔어요. 에어컨이 들어오고 공장에 난로가 들어온 날 다 박수 치면서 좋아했어요. 사내하청 노조 최초로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원청이 고용을 보장한다는 확약서도 받아냈어요.”

20년 가까이 비정규직 노동 해결을 위해 싸워온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김수억씨가 지난 1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비정규노동자쉼터 꿀잠’에서, 인터뷰에 앞서 사진을 찍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비정규직 이제그만’ 연대에 역점

―뿌듯했겠어요.

“그런 성과는 있지만, 크게 보면 20년 투쟁으로 바뀐 게 없더라고요. 오히려 비정규직은 더 늘었잖아요. 현대·기아차라는 재벌 기업만 제대로 바로잡아도 많이 바뀔 거라고 처음에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죠. 어느 사업장 한군데에서 잘 싸운다고 해결될 수도 없고, 정말로 잘 싸운다고 하더라도 기껏해야 그 사업장에서 특별채용 정도를 이룰 뿐이죠. 공공부문은 자회사의 정규직이 되는 짝퉁으로 끝나고 있고요. 이런 걸 보면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정말로 지역이나 업종을 넘어서서 전체 비정규직이 단결해서 힘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런 고민에서 탄생한 게 ‘비정규직 이제그만’이에요.”

개별 사업장을 넘어 비정규직 노동자 전체로 옮아가 있는 그를 보면서 김수억의 투쟁은 종착점이 아니라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뷰를 마치려 하자 김수억은 기자를 자리에 앉히며 이렇게 말했다.

“이 말씀은 좀 꼭 드리고 싶어요. 재구형을 받으면 최후진술을 다시 할 텐데, 그때 하고픈 말인데요. 5년6개월 구형을 달게 받겠다고 얘기하려고요. 다만,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나 정의선 현대차 회장처럼 불법을 저지른 재벌에 대해서도 저한테 했던 잣대만큼 가감 없이 법을 적용해달라는 얘기를 꼭 하려고요. 검찰이 저에게 내리는 구형과 앞으로 있을 사법부 선고대로 그들에게도 하는지 지켜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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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선임기자 _ 1989년 기자로 첫발을 내디딘 뒤 정치부, 사회부 등에서 일하다 지금은 토요판 선임기자로 현장을 뛰고 있다. ‘지금 여기’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여운이 오래가는 기록’을 지향한다.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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