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대만' 민주주의를 무기로 '골리앗 중국'에 맞서 싸우다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2021. 11. 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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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윤의 슬픈 중국: 대륙의 자유인들 <8회>

<타이완의 차이잉원 총통/ 사진, economist.com>

대만 외교의 최강 병기, 자유 민주 인권

국제외교의 전장에선 어리석고 힘센 골리앗을 물리치는 영리하고 날쌘 다윗의 활약을 꽤나 흔히 볼 수 있다. 타이완 차이잉원(蔡英文, 1956- ) 총통의 정공법 외교술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떠오른다.

최근 차이잉원 총통은 미국의 대표적인 국제외교 저널 <<포린 어패어스(Foreign Affairs)>>에 실린 특별기고문 “타이완과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Taiwan and the Fight for Democracy)”에서 “타이완은 절대로 민주주의를 양보할 수 없다”면서 타이완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군사도발에 단호히 맞서 함께 싸우자며 세계 각국에 지지를 호소했다.

타이완은 일본 북부에서 보르네오까지 이어지는 제1열도선상에 놓여 있는 지정학적 요지이며 인도-태평양 지역 경제 발전의 핵심 거점이다. 차이 총통은 바로 그 타이완의 역사가 범인류적 보편가치를 실현해가는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과정이었다고 역설한다. 그렇게 타이완의 이념적 정체성을 명확히 밝힘으로써 차이 총통은 타이완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군사 위협은 자유민주주주의에 대한 “더욱 노골적이고, 더욱 확신에 찬 권위주의의 도전”이라고 명료하게 규정한다.

인류사의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중국공산당이 부르짖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란 이미 낡고 진부해진 100년 전의 구호일 뿐이다. 반면 차이 총통이 부르짖는 자유, 인권, 민주주의의 가치는 여전히 절실한 전 인류의 열망이자 이상이다. 바로 그 점을 부각시켜 차이 총통은 타이완 해협을 사이에 둔 이른바 양안(兩岸) 문제를 자유주의 대(對) 전체주의의 대결이라 정리한다. 이제 세계인의 뇌리에서 타이완 이슈는 “민족부흥”을 외치며 외교적 고립을 자초하는 비대한 대륙국가와 “자유·민주·인권”을 외치며 국제 연대를 강화하는 날렵한 강소국의 대결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2020년 타이완 대선 당시 차이잉원 총통의 지지자들이 반중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bangkokpost.com>

대만의 민주주의 수준 아시아 1위, 세계 11위

위풍당당한 차이 총통의 발언은 자유민주주의의 보편가치를 실현해 간 다수 타이완 사람들의 결연한 정치적 신념에 근거하고 있다. 국민당 군사정권의 권위주의를 물리치고 민주화를 이룩한 타이완 사람들이 그에 비할 바 없이 가혹하고 억압적인 중국공산당의 위협에 굴복할 리가 없다. 차이 총리는 말한다.

“늘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으나 지난 세월을 통해서 타이완 사람들은 집체적인 정체성을 확립했다. 우리는 [인류의 보편가치를] 흡수해서 우리의 가치로 체화했으며, 지방 전통들과 융합해서 ‘자유롭고 앞서가는’(liberal and progressive) 질서를 창출했으며, 타이완 사람이 되는 것의 새로운 의미를 찾았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영국에서 해마다 발표하는 “민주주의 지수(Democracy Index)”에서 타이완은 2020년 현재 세계 11위의 온전한 민주주의이다. 호주, 뉴질랜드를 제외한 아시아 국가들 중에선 단연 1위를 자랑한다.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전개된 강대국 중심의 비정한 실리외교 결과, 타이완은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로부터 배척되고 소외당하는 거센 외교의 역풍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럼에도 타이완은 최첨단의 산업 강국으로 꾸준히 발돋움했으며, 세계 최고 수준의 민주주의를 자랑하고 있다. 정치와 경제 모든 부분에서 모범이 되었기에 타이완은 당당하게 전 세계를 향해 선제적으로 자유민주주의의 국제연대를 강화하라 촉구할 수 있다.

대륙 중국의 민주주의 수준은 세계 151위 최하위권

타이완과는 정반대로 중국의 “민주주의 지수”가 세계 151위로 베네수엘라보다 아래이며, 이란, 바레인 등과 동급이다. 중국공산당은 그토록 억압적이고 폐쇄적인 방식으로 인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기 때문에 타이완처럼 당당하게 범인류적 보편가치를 선양할 수가 없다. 대신 오로지 “중국 특색”의, “중화민족”의, “중국만”의 특수한 상황, 예외적 조건, 독자적 가치를 일당독재의 핑계로 내세울 수밖에 없다. 오늘날 중국공산당의 가장 취약한 급소는 바로 인민의 이름으로 인민을 억압하는 인민독재의 허약한 이념에 있다.

<2018년 타이페이에서 타이완 독립을 주장하는 수천 명의 시위대가 국민투표를 요구하며 반중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EPA-EFE>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차이 총통은 자유주의 국제연대라는 최강의 병기를 꺼내들고 중공의 아킬레스건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짐짓 외면하는 모양새를 취하지만, 중공중앙은 결코 이 논쟁을 피해갈 수 없다. 중국이 그 영토의 일부라 주장해 온 타이완이 본격적으로 자유, 민주, 인권의 깃발을 들고 분리·독립의 길을 가고 있으며, 전폭적인 국제사회의 지지를 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양안 문제의 핵심은 2차 대전 이전부터 이어진 자유주의 대 전체주의, 휴머니즘 대 부족주의, 보편주의 대 특수주의의 이념 대립임을 간과해선 안 된다.

“중국 특색 대국 외교” 내세워 민주와 자유는 뒷전

지난 2021년 11월 11일 발표된 중공중앙의 결의문에는 이른바 “중국 특색 대국 외교”에 대한 기본 원칙과 행동 강령이 장황한 만연체 문장으로 아래와 같이 열거돼 있다.

“당 중앙은 복잡하고도 엄중한 국제 형세에서 전대미문의 외부적 풍파와 도전에 직면해서 반드시 국내외의 큰 국면(局面)을 총괄하고, 외교 업무에 있어 당의 영도 체제를 더욱 강화하며, 대외 공작에 더욱 힘을 써서 최고 수준까지 치밀하게 설계하고, ‘중국 특색의 대국(大國) 외교’의 전략과 모략을 짜내고, 새로운 형태의 국제관계 건설과 인류 운명공동체의 건설을 추동하고, 평화, 발전, 공평, 정의, 민주, 자유라는 ‘전 인류 공동의 가치’를 널리 선양하고, 인류의 진보 조류를 견인하고 영도해야 함을 강조한다.”

여기서 “복잡하고도 엄중한 국제 형세”란 갈수록 심각해지는 미·중 갈등과 팬데믹 이후 세계 각국의 반중(反中) 정서를 의식한 발언인 듯하다. 결의문 전체를 보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 핵심어인데, 따로 “인류 운명공동체”를 언급하고 있다. 아마도 중국 중심의 새로운 세계 질서를 구축하겠다는 중공중앙의 결연한 의지를 표명한 듯하다. “인류의 진보 조류를 견인하고 영도해야” 한다는 표현은 중국을 세계 사회주의 운동의 중심국으로 만들고자 했던 마오쩌둥의 포부를 연상시킨다.

이 모두가 중공중앙의 국제 감각 및 외교 노선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들이지만, 특히 “전 인류 공동의 가치”라는 어구가 눈길을 끈다. 2013년 이래 중공중앙은 중국의 지식인들과 교육자들을 향해 “보편가치”는 언급조차 하지 말라 요구해 왔기 때문이다. “보편가치”에 그토록 과민반응을 보이던 중공중앙이 “전 인류 공동의 가치”로 “평화, 발전, 공평, 정의, 민주, 자유”라는 여섯 가지 가치를 나열한 이유는 무엇일까?

극히 일부의 철학자들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심지어는 외계의 합리적 존재까지 포함하는 범우주적 보편성을 논하기도 하지만, 일상 언어에서 “보편가치”와 “전 인류 공동의 가치”는 외연과 내포가 완벽하게 일치하는 동의어이다. 유엔 헌장에 명시된 “보편가치”가 바로 “전 인류 공동의 가치”를 의미한다. 그럼에도 중공중앙은 “보편 가치”는 터부시하면서 “전 인류 공동의 가치”를 강조한다. 중공중앙은 왜 이토록 허술한 언어 게임에 빠져들고 있을까?

중공중앙이 강조하는 그 여섯 가지 가치를 잘 뜯어보면, 1) “화평, 발전, 공평”과 2) “정의, 민주, 자유”가 대칭을 이루고 있음이 보인다. 좀 더 자세히 보면 1) “화평, 발전”, 2) “공평, 정의”, 3) “민주, 자유” 등 세 쌍이다. 1) “화평, 발전”과 3) “민주, 자유”가 2) “공평, 정의”를 사이에 두고 대립하고 있다. 쉽게 말해, “화평, 발전”을 전면에 내세우고, “민주, 자유”를 뒤로 미루는 중공중앙의 의도가 번연히 보인다. 결국 전 국가의 “화평과 발전”이 “민주와 자유”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가치라는 전형적인 권위주의 개발독재의 논리이다.

<2021년 11월 8-11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1기 6차 전체회의/ 중국인터넷>

중국어에서 “화평”이란 화해, 안정, 조화, 치안, 질서, 평정(平靜) 등의 포괄적 의미로 사용된다. “전쟁”의 반대말로서의 “평화”보다 훨씬 더 큰 개념이다. 오늘날 중국의 정치적 맥락에서 홍콩의 민주화 시위, 신장 위구르족의 저항, 티베트 분리주의, 타이완의 독립노선은 모두 “화평”을 해치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노골적인 사보타주 행위로 간주된다. 예컨대 중공중앙은 전 중국의 “화평”을 홍콩 기본법을 제약하는 권위주의 정치 탄압의 논리로 악용한다.

중공중앙은 “화평, 발전”을 “전 인류 공동의 가치”라고 강조하지만, 정작 대 다수 국가들이 가장 중시하는 “인권”에 대해선 언급조차 꺼린다. 중국 밖의 세계시민들은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인권 없는 화평이란 어떤 상태인가? 자유가 없는 지속적 발전은 가능한가? 현재 중공중앙의 중국은 대체 어느 시대에 머물러 있는가?

“인민민주독재” “민주집중제”는 인민을 탄압하는 명분으로

차이잉원 총통의 예리한 비판처럼, 오늘날 중국공산당은 극심한 이론적 혼란과 사상적 위기에 처해 있다. 개혁개방 이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와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1960-70년대 한국과 타이완에서 경험했던 개발독재의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인민민주독재”나 “민주집중제” 등의 통치 원칙은 인민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인민 탄압의 허울 좋은 명분일 뿐이다. 중국 헌법 전문에 명기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문제점과 허구성은 소련과 동구의 몰락으로 이미 30년 전에 만천하에 드러났다. 인류사 최악의 대기근과 문화혁명의 광기로 귀결된 “마오쩌둥 사상”은 중국 안팎 지식인들의 비판과 폭로를 통해 이미 오래 전에 해체되었다.

전 중공 중앙당교의 이론가 두광(杜光, 1928- ) 교수의 표현을 빌면, 오늘날 중국 정치의 핵심문제는 20세기 초반부터 끊임없이 지속된 “개혁 대 반개혁, 민주 대 반민주, 농단(壟斷, 권력 전횡) 대 반농단, 전제(專制, 독재) 대 반전제의 대립·투쟁”이다. 두광 교수는 중국의 근현대사에서 “개혁, 민주, 자유, 반농단, 반전제”에의 범국민적 열망은 이미 1908년 청나라 황실에서 반포된 <<헌법대강>>으로 최초로 표출되었다. 입헌군주제의 헌법으로서 많은 한계가 있지만, <<헌법대강>>은 언론, 저작,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법률에 의거하지 않는 체포, 구속, 처벌을 전면 금지하는 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나아가 개인의 재산권 등 근대 민법의 기본 권리를 구체적으로 천명하기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년 간 줄기차게 중국에서 “헌정민주” 담론을 이끌어 온 전 중앙당교의 이론가 두광(杜光, 1928- ) 교수의 모습. 사진/ twitter.com>

1911년 “민국혁명” 이후 쑨원(孫文, 1866-1925)은 <<중화민국 임시약법>>을 통해서 “국민주권”의 원칙 아래 “인신, 재산, 거주, 이전, 언론, 출판, 집회, 결사, 통신, 신앙의 자유와 선거, 피선거, 청원, 소송의 권리를 명시했다. 곧 이어진 5-4운동의 열기 속에서 자유와 민주를 향한 대중적 열망은 최고조에 달했으나 이어지는 침략전쟁과 내전의 소용돌이에서 중국의 헌법적 기초는 쉽게 뿌리내리지 못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래 1954년, 1975년, 1978년, 1982년 네 차례에 걸친 헌법 개정이 이루어졌지만, 두광 교수는 현행 중국 헌법의 입법 의도와 법리 원칙은 오히려 입헌주의 정신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수준이라 비판한다.

“현행 <<중국인민공화국 헌법>>은 모순으로 충만한, 양면적인 헌법 조문일 뿐이다. 민주성과 전제성이 본문의 자구(字句) 및 행간에 공존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전제성이 민주성을 압도하는 추세를 보인다. 따라서 헌법이 규정하는 공민의 권리는 보장되지 않고, 정치권력은 제약을 받지 못해 도처에서 권력 남용이 일어난다. 이는 헌법이 있음에도 헌정이 실현되지 못하는 근본원인이다.”(두광, “중국 헌정민주 백년의 궤적,” 2012년 7월 16일, aisixiang.com)

두광 교수가 직접 언급하진 않지만, 청말(淸末)의 <<헌법대강>>에서 <<중화민국 임시약법>>을 거쳐 5.4운동기 다채로운 사상으로 만개했던 100년 중국헌정사의 적통(嫡統)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니라 중화민국인 타이완으로 이어졌음은 누구나 알 수 있다. 2010년대 시진핑 정권 출범을 전후해서 강력하게 일어났던 대륙의 “헌정민주” 담론을 예의주시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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