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19년 만에 '돈표' 부활..화폐로 보는 北 경제

KBS 입력 2021. 11. 2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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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최근 국가정보원 국정감사에서 북한이 돈표를 발행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요.

지폐를 찍어낼 종이와 잉크도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네, 그런데 이 돈표가 시중에 풀려 있는 외화를 거둬들이는 용도냐, 아예 화폐 대용으로 쓰는 거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북한은 자국 화폐보다 달러나 위안화 등의 외화 의존도가 높은 실정이었는데요.

지난해부터는 아예 외화 사용이 금지되고 있다고 합니다.

결국 북한의 돈표 발행은 자국 화폐의 가치를 높이려는 목적일 텐데요.

화폐로 본 북한경제 사정은 어떤지, 클로즈업 북한에서 분석해 봤습니다.

[리포트]

지난달 비공개로 진행된 국정원 국정감사.

이날 국정원은 북한의 경제난을 언급하며 물가도 여전히 높다고 보고했다.

국경 봉쇄가 장기화되면서 물자 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데, 수입해 온 조폐 용지와 잉크마저 바닥났다는 것이다.

[하태경/국회 정보위원회 야당 간사 : "수입이 중단되어서 찍어낼 돈 종이하고 잉크가 없는 거예요. 수입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북한산 종이로 돈표를 발행했다고 합니다."]

이날 관심을 끈 것은 다름 아닌 '돈표'.

국정원 발표에 앞서 한 인터넷 매체가 보도한 북한의 '돈표 발행'이 공식 확인된 것이다.

국정원은 화폐 대용이라고 보고했다.

2002년 폐지된 북한 돈표에는 '외화와 바꾼 돈표'라고 써 있지만, 최근 공개된 돈표에는 '오천원'이라는 금액만 표기돼 있다.

또 과거 돈표의 발행처가 무역은행이라면, 이번 돈표는 북한의 화폐를 발행하는 중앙은행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김영희/남북하나재단 대외협력부장 : "옛날에 있던 외화와 바꾼 돈표란 건 외화였어요. 그래서 이건 무역은행에서 발행했어요. 근데 지금 건 외화와 바꾼 돈표가 아니라 그냥 돈표에요. 바꾼 돈이 아니라 돈표에요. 그리고 중앙은행이 발행했어요. 그건 결국 이 오천원권이란 건 외화가 아니라 원화다, 이건 분명해요."]

그렇다면 북한은 왜 지금 돈표를 발행한 것일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지시로 진행되고 있는 평양 만 세대 살림집 건설.

올해 안 완공을 목표로 하는 만큼 전국의 건설 인력이 이곳으로 집중돼 있다.

평양 보통강변에도 약 800세대의 호화 주택이 들어서고 있다.

철근과 시멘트 등 건설 자재를 공급하기 위한 작업도 북한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

이런 대규모 건설에는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데, 대북 제재와 국경봉쇄로 수출입이 꽉 막힌 상황이어서 국가 재정 확충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내부 경제만 순환시키고 있다 보니까 국가가 돈이 없는 거예요. 자본주의 국가 같은 경우는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서 채권을 발행하거든요. 그런데 북한은 채권을 발행하지 못하니까 돈표를 발행하는 거고..."]

그런데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돈표 발행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또 다른 목표가 있을 거라고 분석한다.

바로 북한에서 사용되고 있는 화폐의 통합이다.

[김영희/남북하나재단 대외협력부장 : "지금은 북한이 공식 화폐가 뭔지를 헛갈릴 정도로 3, 4개 화폐가 공식 화폐처럼 돌아가고 있는 것. 당국은 원하지 않지만 어쨌든 돌아가고 있는 거죠. 당국의 입장에선 그것을 빨리 원화로 정착시켜야 되는 과제가 있어요."]

실제 북한에서는 원화와 함께 여러 외국의 화폐가 함께 사용되고 있다.

심지어 외화가 자국의 화폐를 대체하는 '외화통용 현상'도 일어나고 있는데, 미국의 달러와 중국 위안화가 대표적이다.

2018년, 국제 유소년축구대회를 계기로 평양을 찾은 KBS 제작팀.

당시 평양 개선문 앞에 위치한 모란봉 기념품 상점도 취재할 수 있었다.

다양한 북한 특산품과 술, 담배 등을 파는 상점이었다.

북한 주민들이 이용하는 곳인 만큼 가격은 모두 북한 화폐 단위로 표시돼 있었다.

그러나 판매 가격을 물어보면 달러 가격도 함께 알려준다.

[모란봉 기념품 상점 판매원 : "(얼마예요?) 250원입니다. 달러로 2.5달러."]

달러 가격부터 먼저 말하기도 한다.

[모란봉 기념품 상점 판매원 : "이건 45달러입니다."]

관광객에 대한 배려로 볼 수도 있지만, 수입산 명품가방은 아예 달러로 가격을 표시해 놨다.

[모란봉 기념품 상점 판매원 : "4,768달러입니다."]

[모란봉 기념품 상점 판매원 : "(이건 얼마예요?) 4,480달러입니다."]

물건을 사가는 고객도 대부분 북한 주민이라고 이야기하는 판매원.

[모란봉 기념품 상점 판매원 : "한 세 개 정도 나가는 날도 있고, 아예 안 나가는 날도 있고."]

2018년 문을 연 대동강 수산물식당에서도 달러로 계산하는 북한 주민들 모습이 포착됐다.

[김영희/남북하나재단 대외협력부장 : "원래 외화관리법은 국내에서 외화를 유통할 수 없다예요. 근데 당국이 지금까지 공공연하게 외화 상점에다가 외화 가격을 써놓고 거래를 하고 있는 거죠. 당국도 잘못된 거예요. 외화관리법을 위배하고 있는 거예요."]

1990년대 극심한 경제위기와 함께 인플레이션까지 발생한 북한.

북한 원화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주민들은 비교적 안정적인 외화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2009년 단행된 5차 화폐개혁은 외화가 북한 원화를 대체하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기존 화폐 100원을 신권 1원으로 맞교환해주면서 개인당 최대 10만 원으로 교환 금액을 제한했다.

현금 부자들의 타격이 특히 심했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일정 금액만 교환을 해주고 나머지 돈은 은행에 예치해라 예금해라 그럼 나중에 다시 돌려주겠다, 이렇게 이야기했지만 결국 약속을 못 지킨 거죠. 그러니까 굉장히 짧은 시간 안에 화폐개혁이 북한 시장 활동은 거의 중단시키고 그러면서 인플레이션은 발생하고, 인플레이션이 올라가니까 북한 주민들의 생활고는 더 심화되고 이게 악순환이 되는 거예요."]

북중 간 국경 무역은 물론 밀무역에서도 중국 위안화 사용은 대폭 늘어났다.

화폐개혁 이후 국경지대의 북한 주민들을 통해서도 그 실태는 감지됐다.

[북한 주민/2013년 인터뷰 : "하여간 그저 국내에 외화가 많이 돌아가죠. 국가가 가진 외화보다 개인이 가진 외화가 더 많을 거예요."]

북한 주민들은 더 이상 북한 화폐를 믿지 못하게 됐다.

[북한 주민/2013년 인터뷰 : "(북한 돈은 안 쓰고?) 안 씁니다. (화폐개혁 2009년도에 했죠?) 그때 혼났어요. 저희들이 다 달러로 몽땅 갖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2013년 인터뷰 : "달러로 바꿔 두면 아무 때고 쓰니까 달러로 다 바꿔 놓는단 말이에요. (북한 돈은 잘 안 믿네요?) 2009년도같이 화폐 교환하게 되면 쫄딱 망하잖아요."]

화폐개혁이 실패했다는 보도가 잇따르자 북한 당국은 이례적으로 외국 언론과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리기성/북한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교수/2010년 美 APTN 인터뷰 : "전반적으로 밖에서 지금 우리나라 화폐 교환에 대해서 제기된 문제에 관해서 떠들고 있는 이런 것보다는 그렇게 무슨 큰 사회적 혼란이란 것도 없고 지금 전반적으로 안정이 되어 가고, 또 여러 가지 조치들이 따라서면서 경제사업도 잘되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이 개인과 기관의 외화 보유를 금지하고, 시장을 차단하는 정책들도 추가로 시행했지만 역효과만 발생했다.

공식적으로는 1달러당 환율이 북한돈 100원으로 정해져 있지만, 실제는 9천 원까지 치솟았다.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기면서 북한은 화폐 교환 조치를 주도한 노동당 박남기 계획재정부장을 공개 처형까지 했다.

이후 북한은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개인 간의 시장거래를 다시 허가하고, 외화 사용도 암묵적으로 허용했다.

외화 선불카드를 도입하는가 하면, 외화 택시와 외화 마트 등 다양한 수단을 활용했다.

막대한 외화를 보유한 돈주들과 국영기업의 합작 사업도 허용했다.

그런데도 주민들이 외화를 내놓지 않으면서 북한 당국은 지난해부터 시장과 공장기업소 등에서 외화사용을 금지하고 북한 돈으로만 거래하도록 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결국 외화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되고, 외화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선 개혁 개방을 통해서 경제발전을 해야 되고, 어느 정도 경제발전이 이뤄져야 주민들이 자국 화폐에 대한 신뢰를 갖게 되고 그러면서 자력경제가 어느 정도 완비가 된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거죠."]

2009년 후계자 시절 화폐개혁의 실패를 직접 목격한 김정은 위원장.

이번 돈표 발행 역시 북한 원화의 가치를 높이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경제난 타개라는 성과를 달성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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