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수능시험'을 봤다[남기자의 체헐리즘]

남형도 기자 2021. 11. 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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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수능시험, 직접 치러보니..국어영역 평이하단 말에 울컥, 비 맞으며 교문 나서던 수험생 "하늘도 내 기분 같아" 한숨..잊고 있었다, 이렇게 어려운 시험이었다는 걸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안 보였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수능을 본 11월 18일 아침, 책상에 올려놓은 수험표. /사진=18시험실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것 같은 남형도 기자

헤겔에게서 변증법은 논증의 방식임을 넘어, 논증 대상 자체의 존재 방식이기도 하다. 즉 세계의 근원적 질서인 '이념'의 내적 구조도, 이념이 시공간의 현실로서 드러나는 방식도 변증법적이기에, 이념과 현실은 하나의 체계를 이루며, 이 두 차원의 원리를 밝히는 철학적 논증도 변증법적 체계성을 지녀야 한다.

국어영역 지문을 읽다 울컥했다. 이게 무슨 반려견 똘이가 배달 왔을 때 현관문을 향해 짖다가 음식을 보고선 꼬릴 치다 안 주면 앞발로 벅벅 긁는 것 같은, 복잡하고 역설적이며 정성스러운 강아지 소리인가. 그 문장이 이해가 안 돼 무려 세 번을 읽었다. 그래도 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주어진 단 80분의 시간은 무자비하게 뚝뚝 떨어졌다. 아직 4번 문제인데 붙잡고 있다간 망한다, 불교의 공(空) 사상을 새기며 집착을 버려야 한다, 속으로 계속 되뇌었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됐고 마른 침만 꼴깍꼴깍 넘어갔다. 애꿎은 밑줄과 동그라미만 반복해서 쳤다.

아마 다들 비슷하리라. 18번 시험실의 다른 친구들을 슬쩍 보니, 모두의 정수리에서 보이지 않는 열이 느껴졌다. 좀 더 살펴보려다 수능시험 감독관과 눈을 마주쳐서 황급히 시험지로 눈을 깔았다.

2022년도 수능시험을 보고 있었다. 2002년 처음 수능시험을 본 뒤 20년 만이었다(물론 그 이후 몇 번 더 봤다).

이미 다 끝낸 수능을 다시 본 이유가 있었다. 떠들썩한 시험의 속내 비슷한 걸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출제 경향이나 등급 컷이 아닌 그 너머 이야기가 필요했다. 고3 수험생이었을 때, 내 인생 전부 같아 온통 긴장하며 봤을 땐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예컨대, 그걸 실제 준비하고 푸는 마음이란 건 뭔지. 시험실에서 학부모들이 다 보지 못한 자녀들 표정은 어떤지. 끝날 때 나가면서 교문을 바라보는 심경은 무엇일지. 그런 것들 말이다. 혹여나 수능이 대박 나면 기자를 관두고 재입학할까 싶기도 했다.

수능 접수하러 가니, "저랑 동갑이시네요"
수능 시험을 접수하는 남형도 기자./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수능 접수는 마감 날인 9월 3일에서야 했다. 마지막까지 진짜로 볼지 말지 고민이 많았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맘속에서 거부감이 커서였다(가끔 다시 보는 악몽도 꿨었다).

증명사진을 다시 찍어야 했다. 동네 사진관에서 찰칵 찍었다. 중간점검을 하는데 턱살이 적나라하게 접혀 나왔기에 '알아서 뽀샵 해주시겠지' 생각했는데 큰 오산이었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존중하는 분이었다. 졸업증명서와 신분증 등 필요 서류를 챙겨서 동네 교육청으로 갔다.

접수해주던 선생님은 신분증을 내미니 "어머, 저랑 동갑이세요"라고 했다. 뭐라 답할지 몰라 "와, 정말요? 반가워요"라고 하고는, 속으로는 나이 많이 먹었네 싶어 엉엉 울었다. 옆에서 접수해주던 다른 선생님은 "목소리가 좋으세요"라고 했다. 쑥스러워 감사하다고 답할 때 목소리를 더 짙게 내리깔았다.

'선택 과목'을 고르는 게 가장 큰 고민이었다. 국어영역도 선택 과목이 있는 줄 몰랐다. 언론에 근무하니까 이게 제일 낫겠지 싶어 '언어와 매체'를 선택했다. 수학은 미적분, 사회탐구는 윤리와 사상, 사회문화를 골랐다. 접수를 마치니 접수증을 나눠주었다.

기억에서 퇴색됐다는 건, 살면서 안 썼다는 것
어렵다, 어려워. 이 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다 풀었었을까./사진=맞은 문제만 보여주는 남형도 기자
수능시험준비를 하기 위해 회사 근처 대형서점에 갔다. 참고서를 다시 다 살 엄두는 안 나서, 수능 기출 문제와 EBS 파이널 모의고사를 풀며 까먹었던 이론을 보충하며 공부하기로 했다. 고3 때와 다른 건, 내 카드를 직접 긁으며 그로서 아픈 마음을 느낀다는 거였다.

시간을 재고 국어영역 1회를 풀었는데 85점이 나왔다. '아직 죽진 않았네'하고 자신만만해서 수학 영역도 풀었는데 25점이 나왔다. 정답 인쇄가 잘못되었나 싶어 출판사에 전화할까 하다, 영어 영역이 80점이 나온 걸 보고 멈췄다.

그 점수를 보며 새삼 깨달았다. 살면서 쓸 일이 없었던 공부가, 기억에서 더 많이 퇴색됐단 걸. 국어나 영어는 그나마 어떻게든 써먹으며 살았는데, 수학은 사칙연산 말고는 쓸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함수의 극한이나 미적분 같은 걸 물으니 멍해져 어쩔 줄 몰랐다.

잘 안다. 모두 써먹으라 배우는 공부만은 아니란 걸. 그걸 잘하기 위해 인내와 절제, 성실성 같은 게 요구되고, 그 역시 살면서 필요한 공부긴 하다는 걸. 그렇지만 12년 넘는 시간을 들여 배운 공부를, 20년 내내 못 써먹어 기억에서 아예 다 지워졌다니, 괜스레 억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공부는 영 다 까먹었어도, 점수 높이자는 일념으로 독서실 책상에 앉아 지겹게 쌓았던 시간만큼은 여전히 선명했으니까 말이다.

D-1, 수능 선물과 도시락엔 사랑과 부담이
예비 소집일에 수험표를 받기 위해 줄을 길게 서 있는 수험생들./사진=남형도 기자
수능 하루 전날, '예비 소집일은 안 가도 된다'며 심어진 기억 때문에 자칫하면 수험표도 못 받고 수능도 못 볼 뻔했다. 다행히 점심을 먹다가 다시 찾아본 뒤 접수증에 적힌 중학교로 갔다.

수험표를 받으려는 줄은 아주 길게 늘어서 있었다. 구불구불하게 돌고 돌아선 줄의 끝을 찾아서 섰다. 푹 눌러쓴 모자에, 도톰한 점퍼에, 무릎이 나온 편안한 바지를 입고 수능 입장표를 받기 위해 기다리던 이들. 대기가 길어지자, 그 시간도 아낀다고 서서 프린트며 문제집을 들고 몰입하는 몇몇 수험생들의 모습이 장엄하고 저릿했다.

우연히 앞에 서 있던 수험생이 누군가에게 기프티콘을 받는 걸 봤다. 수능 선물인 모양이었다. 그는 "왜 이런 걸, 수능 끝나고 봐, 고마워"란 취지의 답장을 했다. 그 선물은 사랑이고, 그 사랑은 어쩌면 부담이어서 묵직하게 누른다. 그 역시 답장을 하자마자, 오답 노트를 쥐고 뒤적이며 막바지 마무리에 애썼다. 바깥 공기가 차서 손이 시렸을 게다.

취재차 편히 보려 했던 수능임에도, 내게도 부담이 켜켜이 쌓였다. 회사 동료 몇몇에 얘기하니 "수능 잘 보면 의대 가는 거야?(응?)", "그래도 국어는 잘 봐야 한다" 등의 말을 했다. 장모님은 보온도시락통을 협찬해주셨고, 아내는 이른 아침 일어나 도시락을 싸주겠다며 반찬을 준비했다. 애정이고 고마웠으나 그게 단 하루 만에 끝나는 시험을 위한 거였을 땐 부담이었다.

그러니 하루 전날, 밤 10시 넘어서도 하나라도 더 풀겠다며 문제집을 뒤적였다. 수능 전날, 밤 9시에 자려고 누웠다가 잠이 안 와 새벽까지 뒤척였던, 열아홉 살 어렸던 그때 모습이 생각났다. '자야 하는데, 잠 못 자면 큰일 나는데'란 생각에 정신이 시퍼렇게 곤두서서 괴로웠던 기억.

헤겔과 브레턴우즈와 차량 장치의 습격
수능 잘 보고 올게! 아내에게 인사하는 기자./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수능 당일 새벽 6시에 눈이 떠졌다. 아내는 따뜻한 밥에 국에 반찬까지 정성스레 싸줬다. 편안한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수험표와 신분증을 챙겨 집을 나섰다. 현관까지 마중 나온 아내가 잘 보라는 말 대신 "저녁에 맛있는 것 먹자"고 해줘서 좋았다.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수험장인 고등학교로 갔다. 교문에서 꽹과리 치고 응원할까 봐 걱정했는데(그럼 긴장된다), 다행히 조용해서 좋았다. 시험실에 가서 맨 뒤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감독관 두 명이 들어오고 핸드폰을 걷고 수능 샤프와 사인펜을 받으니 국어영역이 시작됐다.

국어영역은 3번을 넘어가는 순간 정신이 무너졌다. 헤겔의 변증법을 설명하는 비문학 지문이었는데 너무 어려웠다. 일단 문장 자체를 굳이 어려운 단어를 가져와 현학적으로 써놨다.

예컨대, '변증법은 대립적인 두 범주가 조화로운 통일을 이루어 가는 수렴적 상향성을 구조적 특징으로 한다' 같은 문장 말이다. 그냥 '변증법의 특징은 서로 반대되는 두 범주가 하나로 조화되어 나아지는 것이다' 정도로 하면 되는 거다.

자꾸 보느라 시간을 많이 썼다. 제한 시간은 80분. 초반부터 발목을 잡으니 진땀이 났다. 안 되겠다 싶어 문제 먼저 봤더니, 역시 이해가 안 됐다. 이 지문에 걸린 문제가 여섯 문제라, 다 찍을 수도 없었다. 새삼 기억이 났다. 시험이 턱 막히는 순간, 한해 공부하며 고생한 기억이, 기대하는 엄마 아빠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 숨이 턱 막혔던 게.

배경 지식 없이 시간 내에 이해하고 푸는 건 무리인듯한 비문학 지문이었다. 문제는 그게 하나가 아녔다. 브레턴우즈 체제의 기축 통화나 운전자를 돕는 차량 장치 지문 역시 짧은 시간에 파악하고 풀긴 버거웠다. 국어영역을 잘 보려면, 헤겔의 절대정신이나 트리핀 딜레마까지 다 미리 공부해야 하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땅만 보며 운동장 돌던 아이
아내가 집에서 싸준 사랑의 도시락. 맛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수학은 첫 페이지 외에는 거의 찍기의 향연이었다. 시간이 걸려도 하나씩 다 써서 열거하면, 그 노력에 정직하게 보상해주는, 수열 문제가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됐다. 시간이 넉넉히 남으니 더 괴로웠다. 시험을 망쳤다고 하는 건, 그나마 공부한 이들만 누릴 수 있는 거구나 싶었다. 나처럼 수학을 포기한 몇몇 친구들이 엎드려서 밀린 잠을 보충하는 게 보였다.

국어와 수학 영역을 마치니 오전이 다 갔다. 허기가 미친 듯이 몰려왔다. 방역을 위해 점심 시간에만 종이로 된 칸막이를 올리고 밥을 먹었다. 너무 맛있어서 순식간에 다 비웠다(사랑의 도시락). 밥 먹는 광경도 다양했다. 샐러드를 먹는 이도, 삼각 김밥으로 때우는 친구도 있었다. 앞에 앉은 친구는 밥을 절반만 먹고 도시락통에 넣었다. 우리 잘 봤든 못 봤든 밥은 먹자고, 속으로 말을 건넸다.

점심을 먹은 뒤엔 삼삼오오 모여 대화하는 수험생들이 많았다. 대략 내용이 이랬다.

"9번 문제는 뭐였지?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답이 3번만 연달아 나오는 거야. 얼마나 불안한지."
"8개 찍었어, 너무 어려웠어. 나 어떡하냐."

바로 재수 학원 등록하러 가야겠다며 웃던 친구의 어깨를, 다른 친구가 토닥거렸다. 홀로 있던 한 수험생은, 고개를 푹 숙이고 땅만 보며 학교 운동장을 돌고 또 돌았다. 그러다 흙을 발로 밀며 한숨을 푹 쉬었다. 구령대에 올라가 그를 위해 맘속으로 응원했다.

9시간 만에, 수능이 다 끝났다
시험이 끝나고 아내와 주고 받은 카똑. 고생했다는 말이 제일 좋았다, 늘 그렇듯이./사진=남형도 기자
영어 영역은 23번 문제부터 난감해졌다. '과학에서 패러다임의 역할'에 대한 지문이었는데 주제가 뭔지 헷갈렸다. 시간을 끌었음에도 명쾌한 해답을 못 찾았고, 이어진 24번 문제도 잘 안 읽혔다. 남은 문제는 아직 많은데 풀 시간이 많지 않아 조바심이 났다. 어법 문제는 쿨하게 찍고 넘어갔다(틀려버림).

오후 3시가 넘어가고, 사회탐구 영역을 볼 땐 체력이 고갈돼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한국사는 원래 좋아하던 과목이라 그나마 풀만 했다. 특히 무령왕이 처음에 신라인 줄 알고 잘못 풀었다가, 나중에 백제란 게 생각나 수정테이프로 고쳐서 맞았을 땐 뿌듯했다. 윤리와 사상, 사회문화는 생각보다 어려워 거의 찍다시피 했다.

시험이 다 끝나고 탈출을 기다리는 감독관과 수험생들. 다들 지쳤다./사진=감독관보다 나이가 많은 남형도 기자

시험이 다 끝난 뒤엔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져 축 늘어졌다. 가채점을 위해 정답을 적느라 쭈글쭈글해진 책상 위 수험표처럼. 감독관이 봉투에 문제지와 정답지를 다 넣는 걸 본 뒤에야 다 끝났다는 실감이 났다. 참으로 긴 시험이었다.

다 끝났는데 개운치 않은 기분이 어쩐지 우울하고 익숙했다. 거의 9시간 만에 핸드폰을 받아서 켜고, 아내에게 끝났다고 했다. 아내는 어떤 것도 물어보지 않고 "에구 힘들었지, 고생했당"이라고 말해줬다. 그 말을 들으니 기운이 났다. 부서 메신저에 보고하니 "수능 본 게 대단하다", "고생했다"는 격려가 쏟아졌다. 그 역시 좋았다. 그럴만한 시험이었다.

쏟아지던 비에 한 수험생이 한 말, "하늘도 내 기분 같아"
고생한 수험생 자녀를 기다리는 학부모들./사진=남형도 기자
방송 안내에 따라 차례차례 퇴실했다. 기다리는 동안 수험생들 대부분 스마트폰을 보거나, 엎드려 있거나 했다. 수능 감독관도 많이 지친 기색이었다. 거의 서 있었으니 그럴만했다. "18 시험실은 퇴실해주세요"란 안내가 나오는 순간,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독관은 "고생했어요, 다들 1등급 맞아요"라며 교실을 떠나던 우리에게 덕담을 건넸다.

우중충한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학교 담벼락엔, 수험생의 엄마, 아빠 등 가족들이 목을 빼꼼 내밀고 저마다 기다리고 있었다. 고생한 아들, 딸 얼굴이 보일 때마다 "진우야", "아영아" 하면서 반갑게 불렀다.

잠시 뒤 소나기가 쏟아졌지만, 담벼락을 둘러싼 마음들은 떨어질 줄 몰랐다. 비를 맞으면서, 준비해 온 우산을 펼치면서 저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수험생을 기다렸다. 안아주고, 손잡아주고, 우산을 씌워주며 가족을 맞았다. 누군가에겐 그 광경이 참 착잡하고 죄송스럽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비를 고스란히 맞던 한 수험생은 친구에게 "하늘도 내 기분 같네"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넓은 하늘로의 비상을 꿈꾸라던, 종일 적어낸 수능 필적 문구가 무색했다. 어깨가 젖은 채로 힘없이 걷던 그의 뒷모습을 보며 걸었다. 20년 전 수능을 망친 내 모습 같아 마음이 아팠다. 하늘이 무너진 날이었고, 스스로 지독히 원망했고, 집에 가기 싫어 최대한 천천히 돌아갔었던, 그날.

국어영역 71점… "국어 쉬웠다"는 수능 출제위원장에게
예, 공부 제대로 안 하고 수능 보면 이렇습니다./사진=100점 맞은 남형도 기자. 아, 두 영역 합쳐서
홀가분한 기분을 망치기 싫어, 가채점은 하루 뒤에 했다. 총점은 제2외국어를 제외하고 450점 만점에 242점이 나왔다. 국어영역 71점, 수학 영역 30점, 영어 영역 74점, 한국사 41점, 윤리와 사상 11점, 사회문화 15점. 맞은 문제로 점수를 계산하던 심경이 처참한 와중에, 그나마 좋아하는 한국사가 1등급 나온 게 작은 위안이랄까.

수능 난이도를 평가한 기사를 본 뒤엔 불쾌해졌다. 수능 출제위원장은 "국어와 수학 영역은 지난해보다 쉽게 출제했다"고 했다. 시험을 어렵게 느끼는 원인을, 수험생의 '독서 부족'으로 돌렸다. 즉, 시험은 쉽게 낸 건데, 요즘 학생들이 책을 많이 안 봐서 어렵게 느꼈다는 거다.

헤겔의 '절대정신'이나, 브레턴우즈 체제의 '금 환 본위제', 카메라의 '왜곡 계수' 따위의 내용을, 평소 책을 보면서 배경 지식을 쌓아두라는 이야기일까. 그 배경 지식의 범위는 어디까지이며, 과연 수험생들에게 그걸 다 숙지할 시간이 있을까.

난이도가 어땠다, 라는 말은 쉽게 하는 게 아니다. 그 하루를 위해 오래 고생한 수험생의 심경을 조금이라도 짐작한다면./사진=포털사이트 기사 댓글 화면 캡쳐

그러면 수험생의 배경 지식이 적은 게 문제일까, 아니면 수능 시험지만 잘 봐도 이해될 수 있게 하면서도 변별력을 갖게끔 문제를 내지 못한 출제자의 미숙함 때문일까.

의문이다. 엔트로피나 양자 역학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나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억압의 방어 기제 같은 배경 지식을 지문으로 잔뜩 만들어놓고, 80분 안에 풀라고 제시했을 때, 수능 출제위원장께서는 몇 점이나 받을 수 있을지.

그리고 간과해선 안 된다. 12년의 노력이 단 하루로 평가받는 시험이란 걸. 그 중압감 속에서, 그것도 촉박한 제한 시간 안에서, 이 해괴하고 어려운 지문을 봤을 때 수험생 눈엔 더 들어오지 않는다는 걸. 심지어 난 그런 압박감이 없었음에도, 위에서 언급한 국어 지문의 내용이 보이지 않았다.

수능, 참 힘든 시험이었구나
수능시험을 다시 보며 새삼, "그래, 참 힘든 시험이었다"는 게 사무치게 떠올랐다.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과목을, 그 수두룩하고 까다로운 문제들을, 수없이 파놓은 함정을 피해 가며 맞춰야 한다는 게. 뭣보다 긴 수험 생활의 노고를 단 하루에 평가받고, 그걸 망치면 다시 1년이란 시간을 써서 공부해야 한단 사실이 너무 무섭고 힘겨웠다.

39년 삶을 돌아봐도 그 정도 중압감을 느꼈던 건 수능 말고는 거의 없었다.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땐 수능 말고 다른 길이 보이지 않았다. '학교-학원-집-독서실'의 무한 반복의 삶 속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그 결정체인 수능 점수가 낮다면 인생이 실패하는 것으로 믿었다. 대학에 와서야 보였다. 삶의 길은 A도 있고, B도 있고, C도 있고, 아니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첫 수능을 망친 뒤엔 재수가 필수라 생각했다. 대학교에 가는 대신 도시락통을 들고 학원에 가면서, 이 관문을 넘지 못하면 나아갈 수 없다는 절박함 속에 매일매일 채찍질하며, 그렇게 추운 계절까지 공부하니 문제 하나만 막혀도 죽을 것처럼 심장이 쿵쿵 뛰었다. 여러 번 수능을 보고 대학에 왔으나, 그 귀한 청춘을 수능에만 쏟아부은 게 잘한 건지, 지금에 와선 오히려 확신하지 못하겠다.

수능을 본지 오래돼 가물가물해진 어른들에게 말하고 싶다.

"제가 20년 만에 다시 수능시험을 봤습니다. 아니 무슨 시험을 그리 오래 보는지, 허리가 다 아팠어요. 시간은 왜 그리 촉박한지, 문제 다 푸는 것만 해도 진짜 힘들었어요. 공부하려 사놓은 문제집은 집에 와서 다 갖다 버리고 싶을 만큼 버겁고 싫었습니다. 차라리 일하는 게 훨씬 쉽다고 아내도 맞장구쳤지요."

그러니, 그 고된 시험 보느라 참 고생 많았다는 이야기를 수험생들에게 해줬으면 좋겠다. 이 얘기도 덧붙이면 좋을 것 같다. 점수 안 나와도 달라지지 않는 두 가지가 있다고. 네가 여전히 소중하다는 것과, 그런 네 곁에 너를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에필로그(epilogue).

수능을 마친 수험생들에게.

- 인생에서 마주한 첫 번째 큰 시험이죠? 2년 동안 이어진 코로나라는 큰 변수 속에서 정말 고생 많았어요. 결과가 어떻든 혹시 못 봤더라도 그건 여러분의 탓이 아니에요.

- 어른들이 "살다 보면 수능은 별 것 아니더라"고 말하는 그게 잘 와닿지 않았던 것 같아요. 19살, 20살의 그때는 수능이 정말 별거고 내 삶에서 가장 큰 이벤트가 맞거든요.

- 너무 속상해하고 자신을 지나치게 갉아먹지만 말아요. 수능은 원래! 모두가 다! 진짜 실력을 발휘하지 못 하는 시험이에요.

- 수능 보고 세상이 나를 버린 것 같고, 주변 사람들을 실망시킨 것 같아 주눅 들어 있느라 자기가 했던 노력까지 다 잊지 말아요.

- 결과랑 상관없이 수능을 보기 위해서 쏟은 시간, 노력, 자신들이 하나하나 쌓아 올린 것들의 힘은 절대로 어디 가지 않고 자기 안에 남아 있다는 걸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 지금 당장은 시험을 잘 본 친구들이나 합격한 친구들이 가장 부럽고 나만 한없이 밑으로 추락하는 것 같겠지만 인생은 변수가 많기에, 지금 살짝 주춤하고 다시 일어나기만 한다면 어느새 하늘을 날고 있을지도 몰라요!

- 그동안 고생한 나 자신을 그 누구보다 꽉 한번 안아주고 수고했다고 토닥여줬으면 좋겠어요. 너무 애썼잖아요. 나밖에는 알 수 없는 빼곡한 시간을 묵묵히 지나온 거 그 자체로 이미 말도 못 하게 잘 한 거예요.

-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잘 버텨서 너무너무 고생 많았고 너무너무 대견해! 12년을 쉼 없이 달려온 너에게 "잘했다"라고 꼭 말해줬으면 좋겠어.

- 시험 문제를 틀렸다고, 틀린 인생을 사는 게 아니니까.

- 결과에 상관없이 여러분들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 절대 포기하지 말고 기죽지 마세요.

- 전 모든 사람이 꽃을 피우는 시기는 각기 다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꽃을 못 피우면 어때요. 만약 그 누구도 나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해도 뭐 어때요. 나는 알잖아요. 내가 오늘날까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얼마나 힘들게 버텨왔는지 그거면 된 거예요.

- 여러분의 뒤에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여전히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고요.

- 최근에 인생 그래프를 그려보았는데, 누구나 계속 올라갈 수도 없고 계속 내려가지도 않더라고요. 올라가고 내려가는 과정에서, 단단하고 건강한 마음과 몸을 갖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 수능 못 봐서 우울했던 제가 가장 먼저 받은 '합격' 문자가 대성학원에서 합격이었던 저. 결국, 정시 다군 추가합격으로 간 학교에서 으쌰으쌰해서 잘 졸업하고 심지어 조기 취업해서, 지금 친구들 중에 가장 빨리 취직도 하고, 직급도 가장 높아요! 수능으로 인생이 순위 매겨지지 않는다는 것.

- 학교에서 공부 못해도 자기 적성 살리고 자신감 있게 꿈을 쌓으며 더 행복하고 더 좋은 커리어 쌓는 사람들 많이 봤어요. 자신을 사랑하고 꿈을 꾸고 항상 열심히 사는 게 최선을 다하는 게 더 성공하는 지름길인 것 같아요.

- 꼭 한 가지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니, 내가 가진 카드를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지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 30대 후반 아줌마가 살아보니 인생은 길고 배움의 기회는 끝이 없더라고요. 제가 만약 수험생들 나이로 돌아갈 수 있다면 너무 점수나 학교에 연연하지 않고 젊음을 즐기고 여행도 많이 다녔을 것 같아요.

-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제가 스무 살 재수할 때 마음에 담은 후 10년간 되새기고 있는 글귀입니다. 결과가 어떠하든 자신만의 지향점을 가지고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 시간이 걸리더라도 당장 눈에 성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지치지 않았으면.

- 하고 싶은 말은 지금까지 참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 할 것이라는 겁니다. 그동안 수고 많이 하셨고 마지막 10대의 마무리 잘 하시고 20대만이 즐길 수 있는 것을 마음껏 즐기세요.

- 살다 보니 그때의 긴장감, 간절함, 또 용기가 참 대단했고 그리운 것 같네요. 스스로를 맘껏 자랑스러워하고, 또 사랑해줘요, 우리.

-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오래 걸려도 즐겁게 걷자.

- 살아내자. 그리고 행복하자. 스무 살이 이제부터 시작이다. 황사가 불든 세찬 바람이 불든 비가 내리든 너의 유일한 편은 너 자신. 너를 지켜주는 것은 너 자신일 테니 말이야.

- 한성여자고등학교 3학년 3반 친구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덕분에 선생님은 정말 행복했어. 선생님 반의 학생들로 와줘서 고마워! 사랑한다!

- 참 고생 많았어. 스무 살이 되면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겠지만, 많이 많이 사랑하고, 많이 많이 질문하면 좋겠어. 그리고 앞으로 만날 세상이 더 멋진 세상일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는 성인이 된다는 건 멋진 일이야. 그 선택과 결정을 같은 마음으로 응원할게. 너희의 지난날을 위로해.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날을 축복한다.

그대들보다 인생을 조금 먼저 살아본, 32명의 선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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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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