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비 수천억원 깎였는데".. 아무 말도 없는 '그들' [박수찬의 軍]

박수찬 2021. 11. 27.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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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F-15K 전투기가 훈련을 위해 활주로에서 이륙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6122억 원. 지난 16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삭감된 내년도 방위력개선비 규모다. 육해공군이 사용하는 무기의 성능개량과 신규 도입 사업에 필요한 예산이 6000억 원 이상 깎인 것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참사’다.

국회가 군 전력을 유지하면서 불필요한 예산 지출을 막기 위해 고심하는 동안 방위력개선비를 담당하는 정부부처인 방위사업청은 기본적인 사업 절차조차 허점을 드러냈다. 무기의 소요와 요구성능(ROC) 등을 제시하는 각 군 내부에서 방사청을 향해 쓴소리가 이어지는 이유다.

‘참사’의 일차적 책임은 방사청에 있지만, 무기를 실제로 사용하는 각 군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군은 방위력개선사업의 실질적인 수혜자다. 예산이 삭감되면 전력증강계획에 큰 차질이 빚어진다. 군 수뇌부가 이번 ‘참사’에 대해 어떤 형식으로든 입장을 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그들 중 대다수는 묵묵부답이다.

◆핵심 사업 타격받고도 공군은 ‘조용’

공군은 국회 국방위의 내년도 방위력개선비 대폭 삭감으로 가장 많은 타격을 받았다. 해군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경항공모함 예산삭감이 주목을 받았지만, 감액 내역을 따져보면 공군 주요 전력증강 사업들이 삭감 대상에 대거 포함됐다.

육군의 경우 대형공격헬기 2차 사업 등이 삭감됐지만, 국회 국방위 예산소위 심의 과정에서 일부 사업이 ‘칼날’을 피한 것과 대조적이다.

공군 E-737 공중조기경보통제기가 비행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신형 조기경보기를 도입하는 항공통제기 2차 사업은 도입 규모 등을 둘러싼 논란으로 3283억 원이 삭감, 2600만 원만 남았다. 연구용역 발주조차 벅찬 수준이다. 

이동형 장거리 레이더는 전력화 시기가 2024년에서 2026년으로 연기됐는데도 주장비 비용 중 일부인 231억 원이 포함됐다. 레이더 설치 부지 매입도 이뤄지지 않았는데 공사 착수금이 편성됐다. 그 결과 180억 원이 감액됐다. 

북한 탄도미사일 요격의 핵심인 패트리엇(PAC-3) 성능개량 2차 사업은 천궁Ⅱ를 비롯한 국산 요격무기와의 중복 논란으로 내년도 사업비의 절반인 210억 원이 깎였다. 

대형수송기 2차 사업은 선행조치 미흡, F-35A 성능개량은 연부액(매년 지급해야 하는 금액) 과다 문제로 내년도 사업비 중 50%가 감액됐다. 

공군 C-130H 수송기가 야간 비행을 앞두고 엔진 등을 점검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노후한 C-130H 수송기 성능개량도 계획이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년 사업비 30억 원이 전액 삭감됐다. 

국방중기계획에 포함됐던 F-15K 성능개량은 내년도 예산 항목에서 눈에 띄지 않는 상황이다.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넘나드는 중국, 러시아 전투기는 거듭된 성능개량을 통해 전자전 능력이 놀라울 정도로 향상됐다. KADIZ에서 중국, 러시아 전투기를 상대할 F-15K의 성능개량이 시급하지만, 사업 진행은 매우 지지부진하다.

공군이 가장 중시하는 전투기를 포함해 수송기, 조기경보기, 지대공미사일, 레이더 등 핵심 전력 증강 사업들이 줄줄이 타격을 입었지만, 박인호 참모총장을 비롯한 공군 수뇌부는 공개적인 입장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박 총장은 28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콜롬비아와 페루를 방문해 군사 외교 활동을 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방사청이 방위력개선비를 집행해 일선에 실전배치되기 전까지는 군이 입장을 드러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방사청이 진행하는 사업은 각 군의 소요와 요구성능(ROC)을 반영해 이뤄진다. 소요제기가 없다면 방사청이 굳이 인력과 예산, 행정력을 투입해 방위력개선사업을 할 이유가 없다. 

공군 F-35A 스텔스 전투기 편대가 저공비행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KF-21 전투기가 쌍발엔진을 장착한 것도 공군이 원했던 결과였다. 방사청은 당시 방산업계를 중심으로 한국형전투기 사업 지연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공군의 요구를 모두 수용해 사업을 했다. 

최종적인 수혜자로서 공군이 예산심의 전에 국회 등을 상대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대폭 삭감된 예산안이 의결된 직후에는 수뇌부의 공개적인 입장표명을 통해 내년 이후 신규 사업 동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해군은 사활을 걸고 1년 내내 여론전을 펼쳤던 경항모 사업비가 삭감되자 언론을 통해 사업의 정상 추진 의지를 밝혔다”며 “대형 사업이 많은 공군도 해군처럼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석종 해군참모총장이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해군은 총장이 직접 나섰다

해군은 경항모 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참모총장이 직접 나서서 추진 의지를 밝혔다.

부석종 총장은 25일 해군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글에서 “경항모는 국제안보환경의 불안정·불확실성이 증대되는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국가이익을 지켜낼 핵심적 합동전력”이라면서 “정상적 절차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 가운데 반드시 추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부 총장은 사업비 등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반박했다. 그는 “경항모 확보에는 6조원이 아니라 2조6000억 원 정도가 들어간다”며 “구축함들은 개별사업으로 확보 중이므로 항모 건조비에 구축함 건조비를 포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부 총장은 “군사력은 전방위 위협에 대비할 수 있도록 건설해야 한다”며 “지정학적 위치, 국가 경제의 해양 의존성, 국제사회에서의 책임 있는 역할을 고려해 큰 시각의 안보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1전시장에서 지난 6월 열린 ‘2021 부산국제조선해양대제전’을 찾은 관람객들이 해군 부스에서 경항공모함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군 수뇌부가 전력증강사업이나 국방비에 대해 외부에 입장을 밝힌 것은 부 총장이 처음은 아니다. 

2009년 8월 이상희 당시 국방부 장관은 2010년도 국방예산 증액에 대해 기획재정부가 제동을 걸자 청와대와 기획재정부에 서한을 보내 항의했다. 이 서한은 며칠 뒤 언론에 공개됐고, 큰 정치적 파장이 일었다. 이 장관은 이후 물러났지만, 의도 여부와 관계없이 군심(軍心)을 얻었다는 평도 나왔다.

2013년 1월 국회가 새해 예산안을 통과시키면서 방위력개선비가 4000억 원 넘게 삭감되자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은 “안보 예산을 깎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노대래 당시 방위사업청장도 “안보를 항상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거저 주어지거나 양보해도 되는 것쯤으로 생각하는 풍토는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이승도 당시 해병대사령관은 상륙공격헬기 사업과 관련, “해병대가 원하는 헬기는 기동성과 생존성이 보장된 공격 헬기”라며 “마린온에 무장을 장착한 헬기가 아닌, 현재 공격 헬기로서 운용되는 헬기를 원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달 18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국제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 2021(서울 ADEX) 프레스데이 행사를 찾은 관람객이 관계자 설명을 들으며 상륙공격헬기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과거에는 전력증강 사업비를 놓고 군 수뇌부가 제 목소리를 냈다. 무기를 실제로 사용하는 군의 입장을 외부에 전달하는 것은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국민적 관심을 높이면서 여론을 환기하는 등의 효과도 있었다.

유례없는 방위력개선비 삭감에 직면한 지금은 어떤가. 계룡대와 일선 부대에서는 ‘격앙’ ‘방사청 무용론’ 등이 나오지만, 부 총장 외에 수뇌부가 공개적인 입장을 내놓지는 않고 있다. “다른 수뇌부는 뭣하고 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철저한 사업 관리를 강조하든, 2023년도 예산 반영 의지를 다짐하든, 경항모처럼 사업의 정상적 추진을 약속하든 수뇌부가 메시지를 내지 않는다면 군심은 더욱 동요할 가능성이 있다. 2023년도 예산 확보 작업의 토대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조속한 전력증강을 원했던 일선부대 지휘관과 장병들의 하소연에 군 수뇌부는 어떤 형태로든 응답할 책임이 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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