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무관심 속에, 탈북민 고독사 4배 급증

김명성 기자 2021. 11. 27.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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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원인 알 수 없는 '사인미상' 작년부터 전체 사망자의 58%

“담당관님, ○○씨가 연락이 안 돼요. 집에 한 번 찾아가봐 주세요.”

지난해 8월 4일, 경기도 평택시에 홀로 살던 50대 탈북 남성 채모씨가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탈북민 지원기관 경기남부하나센터 소속 심리상담사의 긴급 호출을 받은 경찰관이 집으로 출동했지만 문은 잠겨 있었다. 소방 지원을 받아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채씨는 사망한 지 일주일쯤 지난 상태였다. 경찰 관계자는 “부검이 불가능할 정도로 시신이 부패해 있었다”고 했다. 채씨는 평택경찰서에서 불과 100여m 떨어진 주택가 원룸에 살고 있었다.

그는 북한에서 중국으로 건너가 10년 이상 머물다 2018년 말 혼자 한국에 왔다. 임대주택에 살림을 꾸렸지만 외로움과 정착의 어려움 등으로 인한 우울증을 앓으며 제대로 돈벌이를 하지 못했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혼자 술로 풀다가 간경화에 걸려 정부의 기초생활수급비로 간신히 생계를 유지했다. 심리상담사가 한 달에 1~2번 그의 집을 찾아 쌀이나 김치, 라면 등 음식을 챙겨줬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해 7월 15일 마지막 방문 상담을 한 지 2주 정도 만에 그는 원인 모를 죽음을 맞았다.

지난해부터 올 7월까지, 국내에서 사망한 탈북민 154명 중 채씨처럼 ‘사인(死因) 미상’으로 처리된 경우가 90명으로 전체의 60%에 육박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26일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실이 통일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탈북민 사망자 106명 중 49명(46%)이, 올 들어 7월 15일까지는 사망자 48명 중 41명(85%)이 사인 미상이었다. 사인 미상은 병이나 고령, 사고, 자살 등 정확한 원인을 밝히지 못한 죽음을 말한다. 고독사한 지 수일이 지나 부패된 채 발견된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2019년에 사인 미상이 10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2년 연속 숫자가 급증한 것이다.

지난달 중순엔 부산 사상구에 살던 70대 중반 탈북민 남성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를 발견한 건 그를 담당하던 요양보호사로, A씨는 숨진 지 1~2일 지난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당뇨 합병증으로 양쪽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였고, 일하기가 어려워 기초생활수급비로 생계를 유지해 왔다. 그는 아들이 있고, 지자체에서 지원해주는 요양보호사가 있다는 이유로 특별 관리 대상인 ‘위기 가구’로 분류되진 않았다. A씨 아들은 돈을 벌기 위해 대구에 따로 나가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민들의 사인 미상 죽음이 최근 늘어난 이유에 대해 탈북민들은 “코로나 여파로 우울증이 심해진 이들이 고독사하는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탈북민정착기구 김중석 회장은 “탈북민들은 복지기관 직원이나 매주 교회에서 만나는 이들과 주로 외부 교류를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이런 활동이 어려워지면서 혼자 방에서만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했다. 한국탈북민정착지원협의회 조용준 사무총장도 “한국 사회에 채 적응하지 못한 탈북민들에게 갑작스레 찾아온 코로나 사태는 남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두려움을 줬을 것”이라며 “두려움을 느낀 이들이 더 움츠러들며 집에만 머무르는 현상이 늘어난 것 같다”고 했다.

코로나 기간 정부의 탈북민 관리가 소홀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탈북민 정착을 지원하는 남북하나재단의 한 관계자는 “지역별 하나센터가 탈북민 생활을 살피기는 하지만, 탈북 초기 인원을 제외한 기존 탈북민에 대한 정보는 통일부로부터 제대로 받기 어렵다”면서 “탈북민 네트워크를 이용해 복지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했다. 동아대 산하 부산하나센터장을 맡고 있는 강동완 교수는 “정부가 탈북자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현 정권은 북한 눈치를 보느라 탈북자 문제에 굉장히 소홀한 상태”라고 했다.

지성호 의원은 “탈북민들은 북한 체제에서의 기억, 탈북 과정에서 받은 충격 등으로 우울증과 공황장애 등 정신 질환을 앓기 쉬운데 코로나까지 겹쳐 복지 사각지대에 처해 있다”며 “이들의 실질적인 치료와 사회 적응을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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