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의 시대, 위기의 언어](중)코로나 신조어 한국은 보건 정책, 중국은 애국 강조

서동준 기자,고재원 기자 2021. 11. 26.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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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만들어진 신조어를 통해 현재 보건 정책이 사회에 큰 변화를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진은 단계적 일상회복 1단계 시행 첫날인 이달 1일 저녁 서울 송파구 방이동 먹자골목에서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는 모습이다. 연합뉴스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일상생활뿐 아니라 언어도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 새로운 의학 용어들이 쏟아졌고 생활 방식 변화에 따라 신조어들이 생기며 일상으로 들어왔다. 이렇게 바뀐 언어는 다시 우리 생활과 의사소통 방식에 변화를 주고 있다.  동아사이언스는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19 시대 중간쯤에서 우리 시대의 언어를 살펴봤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을 발간하는 옥스퍼드 랭귀지는 지난달 31일 2021년도 올해의 단어로 ‘백스(Vax)’를 선정했다. 백스는 1980년대 처음 등장해 코로나19 이전까지 말장난 정도로 사용되는 단어에 불과지만, 올해는 9월 기준으로 1년 전보다 72배 많이 쓰였다. 단어 길이가 짧은 덕에 다른 단어와 쉽게 결합돼 백신 반대론자를 뜻하는 ‘안티 백스’처럼 다수의 신조어까지 탄생시켰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수면 아래 있던 단어가 떠오르고, 수많은 신조어가 생겼다. 지난해 옥스퍼드 랭귀지는 코로나19로 인해 매달 새로운 단어가 떠오르며 2020년도 올해의 단어를 코로나19, 봉쇄, 필수노동자 등 여러 개를 꼽기도 했다. 옥스퍼드 랭귀지를 포함해 전 세계 언어학자들은 각국의 떠오르는 단어들을 정리하고 이를 통해 사회변화를 파악하는 데 여념이 없다.

한국에서도 신조어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남길임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팀은 5개 주요 일간지의 신문 기사를 통해 ‘코로나19 말뭉치’를 구축하고 신조어를 조사한 결과를 지난해 10월 발표했다. 말뭉치는 언어 연구를 위해 컴퓨터가 가공·처리·분석할 수 있는 형태로 단어 또는 여러 단어의 묶음을 모아 놓은 자료다.

컴퓨터 분석 능력이 급성장하면서 언어학계에서는 말뭉치를 활용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옥스퍼드 랭귀지도 본래 분기별로 사전을 갱신했지만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상황에 맞춰 4월과 7월에 말뭉치를 활용한 특별 갱신 작업을 진행했다. 가장 많은 말뭉치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 브링엄대의 ‘현대 미국 영어 말뭉치(COCA)’도 전 세계 온라인상의 뉴스를 대상으로 코로나19 말뭉치를 구축하고 지속해서 갱신하고 있다.

남 교수팀은 코로나19가 발생한 2019년 12월부터 8개월간의 코로나19 사태 기간 중 사용된 말뭉치를 구축하고 분석했다. 해당 어휘의 뜻풀이에 코로나19나 이와 관련된 어휘가 포함되면 말뭉치에 넣었다. 그 결과 8개월간 코로나19와 관련한 신조어만 302개가 생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1년에 생성되는 신조어 수가 평균 300~500개임을 고려하면 코로나19가 8개월 만에 언어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조어 302개 중 ‘턱스크’, ‘언택트’와 같은 명사는 55개, ‘마스크 의무제’, ‘랜선 술자리’, ‘비대면 강의’와 같은 명사구는 247개였다. 연구팀은 “단어보다 구 단위가 4배나 많은 것은 매우 특징적인 현상”이라며 “코로나19와 연관된 제도나 정책, 의학, 보건 등의 분야와 관련된 전문어적 성격의 어휘들이 자주 나타난다는 특성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고 밝혔다.

가령 복지 정책에 따라 ‘긴급재난지원금’ ‘긴급돌봄 제도’와 같은 명사구가 만들어졌으며, 경제 변화에 따라 코로나 쇼크, 방역정책에 의해 ‘집합금지 명령’이란 명사구도 새로 생겨났다. 연구팀은 “복지와 보건과 관련된 신조어가 74%에 이른다”며 “코로나19 이전까지 사회와 경제 분야 관련 신조어가 가장 많았던 것과 대조된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어 “코로나19의 사회, 경제적 충격은 결국 복지 문제로 귀결되며, 이런 복지 관련 이슈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복지 정책, 제도 등이 다양하게 새로 출현한 영향으로 해석한다”고 분석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이 올해 5월 중의약의 선구자이자 후한 시대의 명의인 장중징의 사당 의성사를 방문해 중의학의 발전을 강조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이런 특징은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김주아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 HK연구교수는 중국의 신조어 경향을 분석해 올해 5월 학술지 ‘한중언어문화연구’에 발표했다. 김 교수는 중국의 국가 언어자원 모니터링 연구센터와 중국 출판사 ‘상무인서관’이 선정하는 2020년도 올해의 10대 신조어를 분석해 언어를 통한 사회변화를 알아보고자 했다. 

김 교수는 10대 신조어 중 6개는 ‘코로나19’, ‘무증상감염자’, ‘임시병원’ 등 코로나19와 직접 연관이 있었고, 그중 4개가 의학 관련 용어였다. 김 교수는 “신조어로 의학용어가 선정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2020년은 유독 의학용어가 많이 선정돼 코로나19의 파급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신조어의 발생에는 ‘단결’과 ‘애국’을 강조하고 있는 중국 사회의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2020년도 올해의 한자와 단어로는 각각 ‘民(인민)’과 ‘脱贫攻坚(빈곤 탈출의 난관 돌파)’가 선정됐는데, 이는 방역 활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중국 인민의 노고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빈곤 탈출이라는 정책목표를 달성했다는 중국 정부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반면 국외를 대표하는 한자와 단어는 각각 ‘疫(바이러스)’과 ‘新冠疫情(코로나19)’이 선정돼, 코로나19 이슈를 국제사회(외부)의 문제로 치부하려는 경향을 읽을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시대의 언어 변화가 궁극적으로 언어에 어떤 변화를 줬는지 알기 위해서는 수년,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고 전망한다. 지난 2년 동안 끊임없이 사용했던 단어가 코로나19 종료와 함께 대부분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현재의 언어 변화는 코로나19의 위기 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이는 인류가 겪었던 고난의 상황을 후대에 전하는 역할을 할 것이란 점에서 코로나19가 끝날 때까지 언어의 변화를 관찰하는 건 중요한 과제로 자리할 것으로 보인다.

※ 이 기사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문화원연합회 쉬운 우리말 쓰기 취재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서동준 기자,고재원 기자 bios@donga.com,jawon121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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