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월의쉼표] 빠르고 간편한 위로도 위로

2021. 11. 26.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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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받았다.

남부러울 것 없는 소위 엘리트로서 내내 성공가도를 달려오다가 최근 생애 최초로 힘든 일을 겪으며 심신이 피폐해져 있는 후배였다.

극단적으로 표현해 작가가 독자에게 감동과 위로를 주기 위해 글을 쓴다면, 독자 또한 바로 그것을 얻기 위해 책을 읽는다면, 문학은 작가에게나 독자에게나 그저 빠르고 간편한 '위로 제공 매체'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리라는 말을 나는 그렇게 전할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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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받았다. 남부러울 것 없는 소위 엘리트로서 내내 성공가도를 달려오다가 최근 생애 최초로 힘든 일을 겪으며 심신이 피폐해져 있는 후배였다. 메시지에는 어떤 책의 일부를 촬영한 이미지 파일이 첨부돼 있었다. 문학작품을 통해 위로받는다는 게 어떤 건지 알 것 같다고 그는 썼다. 우연히 접한 책인데 주인공이 자신과 너무나 유사한 상황에 처해 있어서 깊이 공감했다고, 책을 읽으며 많이 울었고 그만큼 위로도 많이 받았다고.

책과는, 특히 문학작품과는 숫제 담을 쌓고 살아온 후배가 보내온 뜻밖의 문자를 나는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 문득 며칠 전 학생들에 제출한 과제가 떠올랐다. 문학의 기능, 혹은 목적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작품 예시와 함께 정리하는 과제였다.

문학작품이 우리가 몰랐던 삶의 진실을 깨닫게 해준다는 의견, 문학에는 아무 효용이 없으며 그저 언어 텍스트로서의 미학적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의견도 드물게 있었으나 압도적으로 많은 의견은 문학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위로’라는 것이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거나 나아가 갖은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하는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감동과 위로를 받는다고, 그럼으로써 자신도 상처를 딛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고, 그러기 위해 책을 읽는다고 학생들은 과제에 썼다.

맞는 말이었다. 나 역시 문학작품을 통해 위안을 얻은 경험이 적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는 이야기를 돌아오는 수업에서 할 계획이었다. 필립 로스는 저서에서 “자신이 좋은 사람임을 증명하고자 하는 예술가의 욕망보다 예술에 더 사악한 효과를 미치는 것도 없다”고 했다. 또한 독자들이 “즉시 느끼고 싶어하기 때문에 충격이나 감동을 주는 일이 가장 쉬운 일”이라고도 했다. 극단적으로 표현해 작가가 독자에게 감동과 위로를 주기 위해 글을 쓴다면, 독자 또한 바로 그것을 얻기 위해 책을 읽는다면, 문학은 작가에게나 독자에게나 그저 빠르고 간편한 ‘위로 제공 매체’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리라는 말을 나는 그렇게 전할 작정이었다.

역시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빠르고 간편한 위로는 위로 아닌가. 무엇에도 위로받지 못하는 삶에 위로를 제공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지 않은가. 후배의 메시지를 곱씹는 동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러니까, 수업 준비를 다시 해야 할 것 같았다.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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