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모습을 결정짓는 건 건축가의 설계가 아니다 [책과 삶]
[경향신문]
무엇이 도시의 얼굴을 만드는가
리처드 윌리엄스 지음·김수연 옮김
현암사 | 336쪽 | 1만6000원
도시를 상징하는 건물들을 보면 이를 설계한 스타 건축가들의 이름이 떠오른다. 안토니오 가우디, 미스 반 데어 로에, 르코르뷔지에는 도시의 얼굴을 만들었다고 여겨진다.
영국 에든버러대 시각문화학과 교수로 도시 이론을 연구해온 저자는 이런 인식에 반대한다. 그는 “도시가 어떻게 보이느냐는 대부분 설계의 산물이 아니다. 이 책에서 나는 도시의 외관이 의식적인 설계가 아닌 무의식적인 여러 ‘프로세스’의 산물임을 주장하고자 한다”고 적었다. 저자의 주장을 다소 단정적·냉소적으로 요약하면, ‘가우디가 바르셀로나에 미친 영향력은 현대 부동산 개발업자보다 적다’고 할 수 있다.
평양 같은 극단적인 예를 제외하면 애초의 설계가 도시 경관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도시는 자본의 흐름, 정치 권력의 작동, 성적 욕망의 변화하는 속성, 노동의 변화하는 속성, 전쟁의 영향, 문화의 영향에 의해 얼굴을 바꾼다. 이 여섯 가지 요소가 저자가 말하는 ‘프로세스’다.
저자는 “자본이 아니라면, 건축은 처음부터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오늘날 도시의 인상을 좌우하는 아이콘 같은 건물들은 대부분 “성공적 투자의 가능성이 없었다면 애초 존재조차 하지 않았을 건물들”이다. 천안문광장이나 워싱턴의 내셔널몰은 압도적 크기와 질서를 구현했다. 반면 포틀랜드 시청사는 낯선 포스트모더니즘 양식을 채용했고 영국 비밀정보부(MI6)는 민간 부동산 개발사 건물을 사들여 입주했다. 과거 권력의 강력함은 시각적 명징함을 요구했지만, 현대 정부 건물은 시각적 모호함을 통해 구조적 모호함을 나타낸다. 도시는 몇몇 천재의 기획이 아니라 자본, 권력, 성, 문화가 뒤섞이는 과정에서 변화하는 유기체임을 알려주는 책이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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