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 유전학의 굴곡진 역사 '라센코의 망령'

손봉석 기자 2021. 11. 26.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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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경향]


‘획득형질 유전설’을 펼친 구소련 과학자에 대한 과학 역사서가 출간됐다.

‘소비에트 유전학의 굴곡진 역사’라는 부제가 붙은 ‘라센코의 망령’(로렌 그레이엄 지음·이종식 옮김·동아시아)는 구소련 과학자 트로핌 데니소비치 리센코(1898~1976)의 연구와 함께 그가 저지른 과오와 잘못 알려진 그의 이론에 대해서 환기하는 책이다.

20세기 중반 리센코는 당시 주류던 ‘다윈주의 유전학’의 입장과는 반대로, 획득형질도 유전된다는 후성유전학을 받아들인 과학자였다. 리센코는 1930년대 중반부터 소련 과학계 스타로 떠올랐다. 스탈린과 후루시초프 시대에 총애를 받으면서 생물학계를 장악했다. 당시 소련은 그가 내세웠던 유기체가 획득한 특성이 후손들에게 전해질 수 있다는 가설인 ‘획득 형질의 유전’을 굳게 믿었고, 이 원리를 농작물 재배와 가축 사육에 적용했다. 결국 그의 학설은 당대 소련 농업에 막심한 피해를 주었다.

리센코는 정치사적 측면에서도 구소련 과학자 숙청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자신의 학설에 이의를 제기하는 동료 학자들을 스탈린에 총애를 이용해 숙청하는 작업에 나섰다. 스스로 ‘난 공산당원이 아니다’라는 면죄부를 저자에게 설파했지만 그의 라이벌과 학문적 반대파는 그의 고발로 인해 죽거나 숙청을 당했다. 스탈린 사후에도 그는 과학자로 높은 지위를 보장 받고 구소련 내에서 고급스럽게 살았지만 동료 학자들 사이에서 ‘사기꾼’이자 ‘악한’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최근 그에 대한 조명이 다시 이뤄지고 있다. 현대 연구 결과에 따르면 획득형질이 유전되는 것으로 보이는, 후성유전학으로 설명해야 할 사례가 점차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리센코가 정치적으로 ‘나쁜 과학자’였을지 몰라도 ‘틀린 과학자’는 아니었을지 모른다며 독자를 리센코의 삶과 연구로 이끈다. 결론적으로 획득 형질이 유전될 수는 있지만 리센코가 주장한 이론은 이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21세기 현재의 과학을 통해 전한다. 그럼에도 현재 러시아 내 극우성향 세력은 리센코를 복권시켜 민족주의를 강화하고 스탈린 시대 향수를 일으키려 하고 있다. 이들은 리센코가 옳았고, 리센코에 힘을 실어줬던 스탈린 체제도 옳았으니 러시아인은 위대한 민족이라는 식이다. 이들에겐 리센코가 ‘위대한’ 러시아가 아닌 ‘적성국’ 우크라이나 출신이라는 점은 큰 문제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하버드대 과학사 명예교수인 저자는 1971년 리센코를 직접 만나기도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적 욕망에 감염이 된 과학자의 문제점을 들려준다.

저자는 한국 독자를 위한 머릿말에 획득형질과 후성유전 논쟁에서 “리센코의 견해가 어떤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불행한 일이 되라라 생각한다”고 밝히고 있다

손봉석 기자 paulso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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