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서 최상급 연봉 직업 손꼽히는 '장제사'를 아십니까

이진한,김호영 2021. 11. 26. 17:0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weekend interview] 서울경마공원 1600마리 말발굽 책임지는 신상경 한국마사회 장제사
신상경 장제사가 지난달 28일 경기도 과천시 한국마사회 말보건원에서 말발굽에 새롭게 부착할 편자를 망치질하고 있다.
치료를 앞둔 말이 긴장에 떠는 모습은 인간과 다름없었다. 명문가 혈통을 이어받았다는 일본에서 온 명마 '마하걸'은 발굽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컸던지 장제소에 있는 내내 심하게 근육을 떨었다. 이제 막 두 살 반, 사람으로 따진다면 열 살이 채 되지 않은 어린 나이였지만 온몸이 근육으로 단단했다. 그러나 먼저 장제를 받은 발굽에서는 새빨간 선혈이 보였다. 이날 마하걸은 두 번이나 진정제를 맞고 나서야 약 2시간에 걸쳐 발굽을 정비할 수 있었다.

1983년부터 38년 동안 한국마사회에서 장제사(裝蹄師)의 길을 걸어온 신상경 씨(57)는 지난달 경기도 과천시 한국마사회 말보건원을 찾은 마하걸을 보고 혀를 찼다. 그는 "지금까지 치료 장제를 한 말 중에서도 상태가 안 좋기로는 손에 꼽을 정도"라며 마하걸의 상태를 진단했다. 이어 신 장제사는 그를 보조하는 수련생들에게 긴장을 푸는 농담을 던지며 "앞으로 장제사로 활동하면서도 다시 보기 어려운 경험이 될 것이니 잘 보고 배우라"고 당부했다. 수련생들 눈길이 신 장제사의 손끝을 떠나지 않는 까닭이었다.

―'장제사'라는 용어부터 생소하다.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말굽을 관리해주는 사람이다. '보호할 호(護)'에 '굽 제(蹄)'를 써 호제 관리를 한다고도 말한다. 소나 말의 발굽에 편자를 박아 붙이는 일이다. 이를 위해 동물의 발굽을 깎고 발 크기에 맞는 편자를 제작한다. 시중에 판매되는 기성품 편자가 있지만 직접 쇠를 녹이고 틀을 만들 때가 많다. 같은 종이라도 말굽 형태와 크기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서울경마공원에 말 1600여 마리가 있는데 전부 모양이 다르다. 어떤 말은 발굽만 보고도 말 이름을 알 수 있을 정도다.

―쇠를 다룰 줄 알아야 하겠다.

▷그렇다. 한여름에도 화덕 앞에서 대장장이처럼 망치질을 한다. 육안으로 대강 몇 ㎝ 철을 사용할지 고르고, 뜨겁게 달궈진 철을 발굽에 대면서 정확한 모양을 맞춘다. 강한 연기와 함께 단백질이 타는 냄새가 퍼진다. 다행히 발굽 외피까지는 말이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약 40년간 경험을 쌓았지만 아직도 못으로 발굽과 편자를 고정하는 마지막 단계 전까지 몇 번을 수정한다. 손끝으로 쇠 강도를 느끼고 미세하게 변형할 수 있어야 한다. 손 기술이 필요한 직업이다.

―장제는 말에게 어떤 활동인가.

▷교정을 위해 필요하다. 장제의 첫 번째 절차가 보행 검사인 까닭이다. 외상은 물론 선천적으로 굽 형태가 어긋난 말은 발이 불편해 이상하게 걷는다. 아직 성장기에 있는 육성마 단계에서 교정하지 못하면 말의 잠재력을 살리기 어려워진다. 말발굽은 월평균 4㎜, 어렸을 때는 15㎜까지 자란다. 경주마는 발톱이 길면 보폭 거리가 달라져 전속력으로 달릴 때 넘어질 수 있다. 사고로 골절이나 인대가 끊어진 경주마는 간혹 안락사에 처해진다. 그런 맥락에서 장제는 말의 생명을 보호하는 작업이다. 또 발굽에 발생할 수 있는 각종 감염병을 치료할 수 있다. 사람으로 치면 무좀 같은 질병이다. 이를 치료 장제라고 한다.

―경주마는 장제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겠다.

▷보통 승용마는 6주, 경주마는 4주에 한 번씩 받는다. 경주마의 전성기는 굉장히 어린 나이에 찾아온다. 말의 평균 수명은 25세로, 성마가 되는 시점은 평균 24개월이다. 이후에도 계속 자라 6세 때 성장을 마친다. 경주마는 2세 후반에 경기를 뛰기 시작해 3~4세 때 전성기를 맞고 5세 때부터 운동능력이 떨어지는 '에이징 커브' 구간에 들어선다. 물론 6세에 완숙한 기량을 뽐내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인간 나이 15세를 전후해 빛을 발하는 셈이다. 빠르게 달리면서 관절에 가해지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 편자 재료로 알루미늄 합금을 쓰기도 한다.

― 어떻게 장제사가 됐나.

▷처음에는 신문에서 기수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기수에 지원했다. 당시 기수는 남들 월급이 16만원 안팎일 때 상금에 따라 8배는 더 벌 수 있는 고소득 직업이었다. 그런데 기수가 되려면 체중이 50㎏ 이하여야 했다. 면접 당일 경마장에서 잰 몸무게가 기준의 10㎏을 넘었다. 기수는 물 건너간 셈이었다. 이왕 경마장에 온 거, 구경이라도 하자는 마음에 이곳저곳을 보다 장제 작업을 봤다. 처음에는 '이거라도 배우자'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당장은 자리가 없으니 이력서를 쓰고 기다리라는 말만 들었다. 이후 6개월이 지나서야 임시직으로 (장제를) 배우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매일 코피를 쏟을 정도로 열심히 배웠다.

―장제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말 산업 관련 자격증 중 말 조련사와 장제사, 재활승마지도사 등이 국가 자격증으로 지정되면서 관련 분야에 대한 교육 기반도 체계적으로 발전했다. 다만 장제사는 민간 영역에서 교수진과 마필 자원을 확보하기 어려워 마사회에서 운영하는 장제교육센터가 사실상 유일한 양성 기관이다. 경마 특성화 고교 졸업생 등 말에 대한 지식을 일정 수준 이상 쌓은 사람을 대상으로 면접을 진행해 교육 대상자를 선발한다. 체력이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배우고자 하는 의지를 더 크게 본다. 2019년 국내 1호 여성 장제사가 탄생했다. 여성에게 진입장벽이 있는 건 분명하지만 유럽은 장제사 중 15%가 여성이다. 더 많은 도전을 기다리고 있는 까닭이다.

―도제식 교육이 중요한 분야 같다.

▷'나 때는 말이야'라고 말하게 되지만 스스로도 도제식으로 장제 기술을 배웠고 그 전통은 지금도 어느 정도 이어지고 있다. 다만 기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짧아진다. 올해 교육생 4명을 두고 있는데 교육 기간은 9개월 안팎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너무 짧다. 일본은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1년 정도 교육을 받는다. 미국도 교육 기간이 2년이고, 유럽이나 호주 등은 4년이 넘는다. 자격증을 갓 딴 장제사에게 작업을 온전히 맡길 수 없는 이유다. 실제로도 개업 장제사가 되려면 장제 경력을 3년 쌓아야 한다.

―말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말은 상경하고 나서 처음 봤다. 시골에서 소, 돼지만 보다가 말을 보니까 기가 막혔다. 덩치는 큰데 행동은 초식동물의 전형이다. 또 작업을 하면서 말의 눈을 보면 참 예쁘다. 말의 눈은 전부 쌍꺼풀이 졌다는 걸 아는가? 그중에서도 백마는 직접 보면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다. 백마는 모(毛)가 처음부터 하얗게 나오지 않고 자연스럽게 변하면서 하얀빛을 띤다. 사람과 더불어 사는 동물을 반려동물이라고 하지 않나. 내게는 말이 정말 반려동물이다.

―말은 엄격한 혈통 관리로도 유명하다.

▷마사회에 있는 말도 다 혈통서가 있다. 승용마는 아무래도 온순하면서도 운동능력이 있는 웜블러드 품종이 많다. 경주마는 활기가 있어야 하는 만큼 핫블러드 품종, 그중에서도 서러브레드종만 출전할 수 있다. 서러브레드는 자연교배만 혈통서 인정을 받는다. 혈통서는 어떤 면에서 보면 인위적인 개량의 결과물이다. 말의 기질과 품종을 알면 경주마나 승용마 등 인간의 용도에 맞춰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만든 게 아닌가 싶다.

―기억에 남는 말이 있는지.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발가락 같은 경우는 밟혀서 다치기도 한다. 언젠가는 말 발에 차일 뻔한 적도 있다. 보통 교육생이나 경력이 얼마 안 된 친구들이 많이 다친다. 경험이 쌓이면 말이 서 있는 상태나 피부를 만지면서 말의 기분을 파악할 수 있다. 달리 말해 말에게 애정을 갖고 주의한다면 다칠 가능성이 작다는 것이다. 치료한 말이 대회에서 우승하면 보람도 크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 약 4년 전 발굽이 기형으로 태어난 경주마를 교정 장제했는데, 완치된 것은 물론 2년 동안 상금 3억원을 벌었다고 해 뿌듯했다.

―국제 장제사 대회 우승 경력이 있다.

▷가장 최근에는 2019년 호주 브리즈번에서 열린 대회에서 우승했다. 11개 종목에 걸쳐 호주는 물론 미국, 영국, 프랑스 등 7개국에서 장제사 93명이 참여한 대회였다. 국제 대회에 처음 참가한 건 2008년이었다. 당시만 해도 장제 분야는 국내에서 불모지였다. 해외에서 선진 기술을 배울 게 없을지 견학하고 오라는 마사회 권유를 받았다.

신상경 장제사가 손상된 말발굽을 관리하기 위해 발굽을 깎고 기존 편자를 제거하는 장제 작업을 하고 있다.
―수의학과에 입학해 대학원 과정도 마쳤다고.

▷장제를 하면서 후배들에게 지금까지 쌓은 경험의 요체를 전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다른 학문 분야에 비해 체계적으로 전해지는 장제 지식이 적다 보니 아쉬웠던 탓이다. 수의학을 선택한 건 가장 연관된 학문이어서다. 특히 대구 경북대에는 말에 전문성을 갖춘 교수님이 있어 그분 연구실에서 2년 반 동안 공부할 수 있었다. 연구 주제는 국내 말발굽 질병의 유병률과 치료 기술 개발이었다.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

▷좋은 인재가 장제사가 될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지고 싶다. 현재 국내에 있는 말이 약 3만마리다. 말은 관광 등 미래 산업 분야에서도 활약할 수 있는 여지가 커 앞으로 5만마리까지는 늘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3차원(3D) 프린트 같은 기술 기반이 발전하면서 편자 등 관련 부품을 만드는 기술도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장제의 본질은 말이 편하게 달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장제는 노력의 결과가 정직하게 돌아오는 분야인 만큼 후배 장제사들이 그 마음가짐을 잊지 않고 자신의 기술을 갈고닦기 바란다.

▶▶신상경 장제사는…

1983년 한국마사회에 입사해 38년 동안 장제사의 길을 걸었다. 2019년 호주 국제 장제사 대회에서 국내 최초로 '인터미디어트 블랙스미싱(Intermediate Blacksmithing)' 부문 1위를 수상했다. 2011년 한국장제사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협회 수석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5년에는 NCS 말 산업 전문과정 표준 교재를 만들었다. 2016년 호원대를 졸업하고 2019년 경북대 수의학과 대학원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이진한 기자 / 사진 = 김호영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