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땅 못 밟고 사는 반달곰, 탈출해도 다시 지옥 끌려간다

고보현 2021. 11. 26. 16: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좁은 '뜬장' 삶에 우리 이탈해도 농장行
저항하면 사살..'정부 보호소' 태부족
환경부 "필요성 시급해 보호구역 조성 앞당길 것"
지난 22일 경기 용인의 곰 사육농장에서 반달가슴곰 5마리가 탈출해 지자체와 유해야생동물 피해방지단이 추적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지난 22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소재의 한 곰 사육농장에서 반달가슴곰 5마리가 탈출했다. 그 중 3마리는 농장 인근에서 발견됐다. 2마리는 생포됐고 1마리는 마취총을 맞았음에도 저항이 심해 그 자리에서 사살됐다. 발견되지 않은 2마리는 여전히 행방이 묘연한 상황이다. 사육되던 반달가슴곰의 탈출은 지난 7월에 이어 올해로 두 번째다.

목숨을 걸고 탈출했다 생포된 곰들이 보호시설로 가지 못해 또 다시 열악한 사육장으로 돌아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동물보호 단체를 중심으로 불법 사육되던 곰들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이 조속히 조성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7월에도 동일한 농장에서 반달가슴곰 한 마리가 탈출했다 사살됐다. 지난 7월, 녹색연합이 집계한 '곰 탈출 주요 사례'를 보면 2000년 이후 전국의 곰 탈출 사고는 이번 11월 용인 사례를 포함해 21건에 달한다. 20년간 20마리 이상의 곰들이 생존을 위해 농장을 탈출한 것이다.

곰들이 목숨을 걸고 사육농장을 탈출하는 이유는 열악한 환경 때문이다. 이번에 탈출 사건이 다시 발생한 사육농장에서는 무게 60kg 곰 17마리를 20m² 넓이의 철제 우리 4개 동에 가둬 두고 사육하고 있었다. 곰 배설물이 내부에 쌓이지 않고 땅으로 떨어지도록 지면에서 50cm 정도 떠 있는 '뜬장'이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당연히 배설물들이 치워지지 않아 비위생적인 환경"이라며 "대부분의 불법 곰 사육농장들이 비슷한 환경"이라며 열악한 곰 사육 환경을 지적했다.

현재로서는 정부가 열악한 사육농장의 상태를 알면서 곰들을 농장주에게 다시 인도할 수밖에 없다. 곰을 생포한 후 관리할 수 있는 적절한 정부 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조 대표는 "곰을 몰수한다 하더라도 키울 수 있는 보호구역(생츄어리)이 없기 때문에 정부에서 곰 몰수에 소극적으로 대응해왔다"고 했다. 정부는 2024년까지 전남 구례에 자연상태의 야생 방사장과 의료시설을 갖춘 보호소 조성을 약속한 바 있다. 그전까지 농장을 탈출한 곰들은 모두 사살되거나 농장으로 돌려보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보호구역이 만들어져도 이 같은 문제는 당분간 해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현행법상 동물은 '물건'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소유주의 포기 의사가 있을 경우에만 몰수가 가능하다. 농장주가 포기하지 않은 곰들은 다시 사육농장으로 돌아가게 된다. 지난 20년간 발생한 21번 발생한 곰 탈출 사건 또한 곰들이 모두 사살되거나 생포돼 농장주에게 다시 인도됐다. 환경, 동물보호단체들은 불법 사육된 곰들을 정부가 몰수해 생츄어리로 인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는 취지의 민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으나 정식 법률로 공포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잇따른 곰 탈출 사고를 계기로 정부와 지자체는 반달가슴곰 보호구역 조성을 서두르고 있다.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담당자는 25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전남 구례 보호구역 조성사업에 대해 "계획상으로는 2024년 조성 완료 예정이지만 생츄어리의 필요성이 시급하다고 판단해 2023년도로 앞당기는 것으로 지자체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보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