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물류대란 살펴보니 "사람이 없다"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2021. 11. 26.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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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 부족→인건비 증가→인플레이션 압박 가중 우려..고용시장 점검·대책 마련 시급

(시사저널=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미국 서해안의 대표적인 컨테이너 항만인 롱비치 앞바다에는 현재 컨테이너선 수십 척이 줄지어 대기하는 모습이 몇 달째 이어지고 있다. 항만에서 선박이 제시간에 하역하지 못하고 대기하는 '체선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2021년 들어 경기회복으로 해상 물동량이 급증했지만, 항만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주요 컨테이너 항만의 경우 싣고 온 컨테이너를 내렸다가 다시 선적한 후 출항하는 데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코로나19 확산 이전에는 1일 정도였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 미국 서해안을 중심으로 시간이 점차 증가했다. 현재는 최대 5일 이상으로 늘어난 상황이다. 미국 서해안의 대표적인 컨테이너 항만인 LA항과 롱비치항에서 컨테이너를 하역하지 못한 채 대기하고 있는 선박 수는 평균 80척에 가까우며, 항구 인근에서 대기하는 기간도 18일까지 증가했다.

글로벌 물류대란이 현실화하고 있는 11월17일 경기도 의왕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연합뉴스

美 백악관까지 나서 항만 체선 문제 해결

미국 서해안 항만의 컨테이너 처리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함에 따라 올해 3분기까지 아시아에서 미국 서해안으로 향하는 노선의 운항시간은 3년 전과 비교했을 때 평균 8.4일 이상 길어졌다. 이는 다시 물류난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컨테이너선의 운임지수인 SCFI(상하이컨테이너교역소운임지수) 역시 코로나19 확산 직전인 2020년 1월3일 1022.72에서 2021년 9월3일 4502.65로 4배 이상 폭증했다.

미국 서해안 항만의 물류난에는 몇 가지 원인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경기회복에 따라 수요가 증가하자 반입물량이 17% 증가했지만 이를 처리할 공간이 부족했던 것이 첫 번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작업공간 부족으로 컨테이너 처리 효율이 감소하면서 3일 정도이던 컨테이너 선박의 항만 내 체류 기간이 9월 들어 6일로 증가했다. 두 번째로는 트럭 및 철도 운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서 가득이나 좁은 공간에 빈 컨테이너가 쌓여 있어 새로운 컨테이너를 하역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컨테이너의 하역과 운반 등에 종사할 인력 자체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숙련도 저하가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 세 번째 원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항만을 둘러싼 전후방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바이든 대통령까지 나서 항만 체선 문제를 해결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백악관 관계자들이 주도해 항만 및 철도 관계자들을 설득한 끝에 컨테이너 적체가 해소될 때까지 관련 시설을 24시간 주 7일 가동한다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부두에서 근무할 야간 근무자와 컨테이너를 운반할 트럭운전사를 확보하기 어려워 당초 기대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여러 가지 노력과 시도가 이뤄지면서 11월19일 해상에 정박한 컨테이너선은 71척으로 최고 수준이던 86척에서 감소하고 있다고 남캘리포니아 해양거래소는 밝히고 있다. 태평양 횡단 노선의 컨테이너 운임 역시 블랙프라이데이 수요가 충족된 이후 점차 하락 안정세로 전환되고 있다. 11월 중순에는 25% 가까이 하락하기도 했다. 2년 만에 가장 큰 하락 폭이다. 하지만 이런 흐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다. 조금씩 문제가 해결되고 있지만, 완전한 해결은 연말연시 쇼핑 시즌이 끝나 수입물동량이 감소하고, 2022년 동아시아 국가들의 설날 연휴로 수출 물동량이 감소하는 2월이 돼야 가능할 것이다.

글로벌 해상물류망의 핵심에는 항만과 더불어 철도 및 트럭 운송 네트워크와 일체화돼 움직이는 2500만 개의 표준화된 컨테이너가 있다. 이들 컨테이너는 세계적으로 6000여 척의 선박을 통해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는데, 이 흐름에 문제가 자꾸 생기고 있는 것이 현재 해상물류를 둘러싼 문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상품 수요는 급등락을 거듭하고 있으며, 집단발병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항만 가동 중단이 이어지면서 필요한 장소와 시점에 적절한 상품을 공급하기 어려워졌다. 여기에 더해 국가 간 경기회복 시차도 문제를 키웠다. 중국은 다른 국가에 비해 빠르게 회복했으며, 상품 공급 능력을 빠르게 상승시켰다. 하지만 정작 중국의 물건을 싣고 온 컨테이너를 하역하고 운반할 항만 노동자와 트럭운전사는 급속하게 감소함에 따라 항만과 철도 허브에 컨테이너가 쌓이게 됐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노동력 부족에 있다. 2020년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대규모 실업과 이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은 국민에게 직접 현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이런 과감한 정책은 경제 붕괴를 막는 데 도움을 주었고, 기본소득의 효용성을 강조하는 데 유용한 사례로 활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태가 2년 넘게 장기화하면서 노동시장은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됐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직장에서의 감염을 회피하거나 회복하기 위해 많은 인력이 직장을 떠났으며, 사태가 장기화하자 상대적으로 고령화돼 있던 항만 및 운송 부문의 인력 상당수가 이전보다 일찍 은퇴하면서 노동력 감소가 심화됐던 것이다. 노령 인구 및 고령 노동자의 증가라는 인구통계학적 압력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단기간에 확대됐으며, 국제적 노동력 이동 역시 거의 멈추면서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한국도 위드 코로나 후 인력 부족 가중

미국의 경우 400만 명 이상의 인력이 노동시장에서 이탈했다. 노동참여율은 2020년 초반에 비해 계속 1.7% 정도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자연적인 고령화로 인한 은퇴와 더불어 조기 은퇴 규모가 2021년 8월까지 약 240만 명에 이르고 있기 때문에 단기간 내에 노동력 부족 현상을 해소하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일부 고령 근로자는 코로나19 확산세가 진정되고, 가계의 재정적 부담이 커지기 시작하면서 복귀를 선택하겠지만 그 비율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2021년 초반부터 식당을 비롯한 많은 산업현장에서 노동력 부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위드 코로나가 본격화된 이후 단적으로 드러난 식당 인력과 택시기사 부족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런 현상은 근본적인 노동시장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인력 부족, 그에 따른 인건비 상승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더욱 가중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전체 산업 및 고용시장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과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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