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만원짜리 식물이 있다고?..'식테크족' 불러온 희귀식물의 세계
[경향신문]
최근 한 온라인 식물오픈마켓에 1200만원짜리 식물이 올라왔다. 실수로 0이 더 붙은 것이 아니다. ‘최상품종’이란 타이틀이 붙은 이 식물의 이름은 ‘몬스테라 보르시지아나 알보 바리에가타’. 흔히 ‘알보몬’이라고 부르는 ‘희귀식물’이다. 식물업계에서 이른바 희귀식물이 인기다. 큰 잎에 구멍이 나거나 갈라져 이국적인 정취를 풍기는 열대성 관엽식물인 몬스테라의 일반종은 같은 마켓에서 5000원 미만에 판매되고 있다.
지난 18일 경기 파주의 조인폴리아를 찾았다. 1만3223㎡ 규모로 식물원을 방불케 하는 농장 겸 대형마트로 식물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업체 측은 코로나19 이후 식물 수요가 늘면서 한때 주말 방문객이 3000~4000여명에 달했다고 했다. 희귀식물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중앙에 자리한 ‘희귀식물존’에는 ‘금액대가 높습니다. 조심히 다뤄주세요’라는 안내 표지가 붙어 있었다. 몬스테라, 안스리움과 함께 ‘관엽식물 3대장’이라 불리는 필로덴드론 마이크로스틱텀이 150만원이란 가격표를 달고 있었다. 같은 필로덴드론종인 스트로베리쉐이크와 화이트프린세스에는 각각 50만원이 붙어 있었다. 어쩐지 아쉬워하는 표정을 읽은 조인폴리아 김건 대리가 일반 고객의 출입이 제한된 온실로 이끌었다. 희귀식물 전용 육묘실에서 비로소 1000만원 상당이라는 몬스테라 아단소니 바리에가타(30여종의 몬스테라 품종 중 아단소니, 그중 무늬가 있는 종)를 알현할 수 있었다. 김 대리는 “(비슷한 가격대의) 호말로메나 루버센스 바리에가타는 국내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며 “판매용이 아니라 종자 보존용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라 설명했다.
일반종과 달리 무늬가 포인트인 ‘희귀식물’은 멸종위기종이 아니다. 서지현 삼육대 환경디자인원예학과 교수는 “식물의 생태적 조건, 형태적 요소, 유연관계에 따라 나누는 원예학적 분류기준에 따른 무늬(반입)식물은 잎이나 꽃의 색이 엽록소 결핍, 엽록소 이외의 색소 포함, 표피세포의 변형 등의 요인에 의해 여러 가지의 색을 함께 나타내는 식물”이라고 말했다. 엽록소가 결핍되는 흔치 않은 변이로 인해 잎사귀에 흰색이나 아이보리, 노란색, 분홍색, 연녹색 등의 무늬가 입혀진 종이 희귀식물로 알려지며 몸값이 치솟았다.
인스타그램에는 #rareplant(s)(희귀식물)로 100만건에 가까운 게시물이 올라와 있다. 식물 콘셉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아트인플랜츠의 정지연 대표는 “희귀식물이 최근 몇 년간 큰 사랑을 받은 데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다. 식물 애호가들은 ‘오직 세상에 하나뿐인 무늬를 가진 내 식물’을 뽐낸다. 희귀식물 사진은 물론 시세까지 공유한다.
정 대표는 관엽식물로 시작된 희귀식물의 인기 조짐은 2010년대 초중반 시작됐다고 했다. “유통망과 체계를 갖춘 남미 식물 기업이 나타나면서 남미 출신 관엽식물이 SNS를 타고 전 세계에 데뷔했다”고 표현한 정 대표는 “이미 수년 전 동남아시아 농장들은 남미에서 관엽식물을 들여와 이를 대비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비자발적 격리 생활은 식물에 대한 관심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 서지현 교수는 “공기 정화 기능 뿐만 아니라 관상 가치 및 기르는 즐거움이 매력으로 인식되며 식물을 즐기는 문화가 형성됐다”고 전했다. 최근 발표한 연구 논문 <무늬 관엽식물 선호도의 변화 및 색채 조화미 분석>에서도 “녹색의 단조로운 관엽식물보다 다양한 색과 무늬를 가진 반입식물의 요구도가 높아지고 있다”며 식물의 심리적 긴장감 완화 기능을 주목했다.
일부 온라인몰에서는 희귀식물을 ‘명품식물’로 분류한다. 명품의 조건 중 하나인 ‘희소성’을 갖췄기 때문이다. 희귀식물은 변이종이다 보니 ‘콩 심은 데 콩 나는’ 번식이 어렵다. 정 대표는 “관엽의 번식 난도가 높진 않지만, 주로 삽목(꺾꽂이) 번식이기 때문에 개체수가 증가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며 “(무늬종 유묘를 키우더라도) 무늬가 약하거나 없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는 “인위적으로 개량해 농장에서 대량생산하는 식물과 달리 대부분 원종식물인 관엽 희귀식물은 한 땀 한 땀 장인(자연)이 만들어낸 식물의 이미지가 있다”고 비유했다. 네덜란드와 같은 북유럽 원예 강국이 수년간 만들어낸 다채로운 개량종에 대한 선호가 단순하면서 자연스러운 식물로 옮겨가는 흐름이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본래의 성질을 가진 종자를 의미하는 원종식물은 학술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엽록소가 결핍된 하얀 잎은 고스트라 불린다. 이름은 근사하지만, 광합성이 안 되니 금세 상한다. 생존에 지장이 없으면서도 아름다운 비율의 무늬가 나와야 가치가 높아진다. 조인폴리아 김용근 대표는 “무늬가 나올 확률은 몇십만 개 중 하나 정도”라고 말했다. 무늬의 모양에 따라 가격은 제각각. 잎 한 장짜리 삽수를 키워서 새잎을 보기까지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그야말로 우연과 확률, 정성의 영역이다.
뿌리나 잎에서 생장점을 잘라 플라스크 안에서 육묘를 키우는 조직배양도 시도된다. 이론상 조직배양을 통해 번식이 이뤄지면 개체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수도 있다. 그러나 전문 기술과 멸균 설비 등 진입 허들이 높은 데다 성공 확률도 높지 않다. 영국에서 가든디자인을 전공한 뒤 가든디자이너로 활동하는 가든킹 왕준현 대표는 지난해 종자업 등록을 마치고 조직배양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블로그를 통해 “‘알보(흰 무늬)’가 왜 비싼지 알겠다”며 “배양은 가능하지만 대량생산하기에는 너무 느리고 난도도 어렵고 수득률도 심하게 안 좋다”고 했다. 조직배양 전문가와 함께 2년여 작업해온 그는 “조직배양으로 생산한 식물들을 조금씩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희귀식물의 가격 변동에는 개체수의 증가 속도가 큰 영향을 끼친다. 정지연 대표는 번식이 쉽고 개체수 증가가 많아 공급 폭증이 일어났던 다육식물의 가격 하락을 예로 들었다. 희귀식물은 외부 요인의 영향도 받는다. 정 대표는 “지난해 해외 유명 스타가 키우는 ‘알보몬’이 방송을 통해 알려지며 해당 국가의 수요 폭증과 가격 상승이 나타났고 이는 글로벌 시장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여기에 일부 수입 식물에서 바나나뿌리썩이선충이 발견돼 해당 국가가 수입금지국으로 지정되면서 지난 2년 동안 국내에서는 인기 관엽식물 품귀를 빚었다. 이로 인해 국내 희귀식물 가격 상승이 도드라졌다. ‘식테크(식물+재테크)’ 트렌드는 이 같은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유튜브에서는 식테크 관련 콘텐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식물학자 못지않은 지식을 쌓은 이들도 많다.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서는 유묘와 삽수 거래가 활발하다. 잎 한 장 붙은 삽수가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에 거래된다. 중고거래앱 당근마켓은 지난해 말 식물 카테고리를 개설했다. 내가 지불한 비용이 ‘죽은 돈’이 아니라는 확신을 주는 리셀시장의 효용이 식물업계에서도 통하고 있다.
식테크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20년 원예업 경력의 한 업체 대표는 “공산품이 아니라 생물이다보니 수형, 모양, 잎 색상, 무늬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라며 “식테크란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에서 식테크를 운운하며 가격 변동 요인을 만든다”는 지적도 했다. “(몬스테라) 민트 아단소니 (바리에가타)가 150만~160만원이라는 기사가 나온 뒤, 중고사이트에 매물이 쏟아져 나오며 가격이 절반으로 떨어졌다”며 “가격 폭락으로 낭패를 볼 수도 있으니 식테크만 노리고 고가의 식물을 구입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식테크용 식물을 추천해달라는 고객에게는 공부를 더 하시라 권한다고 했다.
김용근 대표는 “태국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한 실직자들이 희귀식물 번식으로 고수익을 올리는 경우가 있다”며 “식테크보다는 도시농업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을 줬다. 벼농사를 위해서는 넓은 땅이 필요하지만, 희귀식물은 작은 공간에서도 경쟁력 있는 상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에 따르면 ‘희귀 고가 식물’ 시장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다만 키우기 어렵고 손이 많이 가는 난이 기성세대의 고급 취미였다면, 최근의 희귀식물 선호층은 한결 젊다는 데 차이가 있다. 최근 왕준현 대표는 희귀식물 입문반 주말 클래스 모집 공고를 냈다. 희귀식물 트렌드 분석 및 키우는 방법, 번식법, 삽목 실습까지 한다는 공지에 클래스는 하루 만에 마감됐다. ‘식집사’ 하면 여성을 떠올리는 공식도 옛말이다. 왕 대표는 “수강생은 30~40대가 대부분이며 여성 대 남성 비율이 6 대 4 정도”라고 전했다. 그는 “희귀식물 잘 키우는 것으로 유명한 분들 가운데 남성이 많다”며 “남성 식집사의 경우 무늬종뿐만 아니라 가죽과 벨벳 질감의 식물이나 다크 계열의 식물에 대한 선호가 높은 듯하다”고 말했다. 희귀식물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희귀식물을 취급하는 아네모네의 박상수 대표는 “젊은층의 희귀식물 선호에는 주거환경의 변화도 영향이 있다”고 말했다. 베란다를 둔 이전 세대들이 사계절을 느낄 수 있는 관엽, 분재, 야생화를 주로 키웠다면, 요즘 세대는 베란다를 확장해 실내 공간으로 사용하다보니 통기가 덜 되거나 고온고습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을 들이게 됐다고 했다. 희귀식물은 번식이 어렵고 생장이 더디지만, 열대 관엽이라 따뜻한 실내에서 잘 자란다. 가습기, 서큘레이터, 실내 온실을 별도로 갖추고 식물을 관리하는 이들도 늘었다.
희귀식물의 인기는 계속될까. 정지연 대표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BTS와 <오징어 게임>을 통해 한국문화를 알아가는 사람들이 있듯이 트렌디한 희귀 관엽식물이 그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희귀식물이 수년간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던 국내 원예와 화훼 업계에 활기를 북돋워줬으면 한다는 것은 여러 식물인의 공통된 목소리였다. 김용근 대표는 “희귀식물 붐을 높은 가격에 포커스를 두기보다는 새로운 문화현상으로 바라봤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개업식 선물이나 인테리어 소품쯤으로 여기거나 몇 천원에 샀으니 죽으면 버리는 소모품으로 소비하지 않고 반려식물로 삼아 각별한 애정을 기울이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장회정 기자 longcut@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윤 대통령 ‘외교용 골프’ 해명에 김병주 “8월 이후 7번 갔다”···경호처 “언론 보고 알아
- “남잔데 숙대 지원했다”···교수님이 재워주는 ‘숙면여대’ 대박 비결은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이준석 “대통령이 특정 시장 공천해달라, 서울 어떤 구청장 경쟁력 없다 말해”
- “집주인인데 문 좀···” 원룸 침입해 성폭행 시도한 20대 구속
- 윤 대통령 골프 라운딩 논란…“트럼프 외교 준비” 대 “그 시간에 공부를”
- 한동훈 “이재명 당선무효형으로 434억원 내도 민주당 공중분해 안돼”
- “그는 사실상 대통령이 아니다” 1인 시국선언한 장학사…교육청은 “법률 위반 검토”
- 또 아파트 지하주차장 ‘벤츠 전기차 화재’에…주민 수십명 대피
- [단독]“일로 와!” 이주노동자 사적 체포한 극우단체···결국 재판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