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 세종] 세종시 남쪽 관문 대평동 '유래비' 제막

이은파 2021. 11. 26.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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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신도심(행정중심복합도시) 남쪽 관문인 대평동 꽃내음광장에 26일 '대평동 유래비'가 세워졌다.

대평동 유래비 건설추진위원회는 이날 꽃내음광장에서 유래비 제막식을 했다.

이후 근현대사를 지나오면서 5일장인 대평장 신설과 독립만세운동 현장, 행정중심복합도시 출범과 함께 대평동으로 재탄생한 과정이 유래비에 상세히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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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대평동 유래비 [세종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세종=연합뉴스) 세종시 신도심(행정중심복합도시) 남쪽 관문인 대평동 꽃내음광장에 26일 '대평동 유래비'가 세워졌다.

대평동 유래비 건설추진위원회는 이날 꽃내음광장에서 유래비 제막식을 했다.

유래비는 가로 10m·높이 3m 크기로, 상단에는 '대평에 살어리랏다'와 'SEJONG'이란 문구가 나란히 새겨졌다.

본문에서는 '넓고 평평한(大平), 큰 들(大坪)'을 뜻하는 옛 지명인 대평리가 동이름으로 활용된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고증을 통해 대평동이 백제시대에 소비포현, 조선시대에는 양야리면에 속했던 역사를 조명했다. 조선 명종 2년 충청감사 김익수의 장계에서 '대평'이라는 말이 등장한다고 적었다.

이후 근현대사를 지나오면서 5일장인 대평장 신설과 독립만세운동 현장, 행정중심복합도시 출범과 함께 대평동으로 재탄생한 과정이 유래비에 상세히 기록됐다.

대평리에 있다가 1946년 금강 대홍수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옛 충남 연기군 금남면 소재지가 남쪽으로 1㎞ 정도 떨어진 현재의 용포리로 옮겨졌으나, 지역민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대평리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다.

박종권 추진위원장은 "대평동의 유래를 잘 알지 못하는 시민이 많아 유래비를 세우게 됐다"며 "유래비가 시민의 자긍심을 드높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 = 이은파 기자, 사진 = 세종시 제공]

sw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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