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눈으로 보고 문학가의 마음으로 깨닫는다..대자연 속 작은 존재들의 가르침을

문학수 선임기자 2021. 11. 2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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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저녁의 비행

헬렌 맥도널드 지음·주민아 옮김 | 판미동 | 488쪽 | 1만8000원


<메이블 이야기>는 야생 참매를 길들이는 이야기다. ‘메이블’은 사랑스럽다, 혹은 귀엽다는 뜻이다. 저자는 참매를 그렇게 부른다. “구식의 느낌이 나는 약간 어리숙한 이름, 할머니 같은 분위기, 장식 달린 덮개와 애프터눈 티 같은 느낌이 풍기는” 이름이다. 저자는 메이블이 비상하는 장면을 이렇게 묘사한다. “줄무늬 날개를 탁탁 치고, 테두리가 검은 첫째 줄 칼깃의 뾰족한 손가락 같은 돌기가 허공을 가른다. 새의 깃털이 안달하는 고슴도치의 흩어진 가시처럼 곧추선다. 커다란 두 눈. 내 가슴이 철렁한다.” 매혹적인 문장이다. 아버지를 잃고 “폐허 더미 속에 있었”던 저자는, 스스로 메이블이 되어 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나는 아예 보이지 않는” 경험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이렇듯이 ‘메이블’로 표상되는 대자연 속에서 “깊은 상처”를 치유한다. 인간과 자연, 상실과 치유 등의 주제를 섬세한 문장으로 그려낸 이 책은 논픽션 작품에 수여하는 새뮤얼 존슨상, 권위 있는 문학상인 코스타상 등을 받았다. <가디언> <이코노미스트> 등에서 ‘올해의 책’(2014년)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메이블 이야기>의 저자 헬렌 맥도널드(51)가 새 책을 내놨다. 지난해 영국에서 출간했고 이번에 번역돼 나왔다. 작가, 시인, 역사학자, 동물학자, 전 케임브리지대학 연구교수, 매 조련사 등 경력을 지닌 그가 이번에 다루는 주제는 전작에 비해 폭이 넓다. 본인의 말을 빌리자면 “송골매, 칼새, 찌르레기, 토끼, 소, 돼지, 백조 등”이 등장한다. 말하자면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작은 존재들이다. 하지만 인간의 이기적인 눈에만 작을 뿐, 다들 각자의 가치와 목숨을 지닌 ‘하나의 우주’다. 개미라든가 버섯, 발전소 굴뚝, 심지어 본인의 편두통에 관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잡다해 보이기까지 하는 글감들에 대해 저자는 “이상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한다.

어느 날 그는 헝가리 호르토바지 호숫가에 우두커니 서 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두루미 떼가 날아오른다. “갈매기 형상의 V자 대열이 후드득 날개를 퍼덕이며 어둑해지는 하늘을 가로질러 서서히 주변을 그들만의 색깔로 물들인다.” 저자의 머리 위로 날아가는 새들은 “목이 길고 우아한 검은목두루미다. 매년 가을 1만마리 이상이 러시아에서 북부 유럽까지 이동”하다가, 중간에 호르토바지에서 몇 주를 지내면서 “벌판에 남은 옥수수를 먹고 지낸다”. “귓가에 두루미들이 울어대 불협화음이 쟁쟁거리는” “점묘법으로 그린 안개” 같은 장관을 바라보면서 저자의 사유는 “헝가리 정부가 이곳에서 남쪽으로 100마일 이상 철조망”을 세웠다는 사실로 이어진다. 새 떼를 관찰하면서 시리아 난민 문제를 “절실히 깨닫는다”고 고백한다. “새들이 원하는 것은 두려움에서 벗어날 자유와 먹이, 그리고 안전하게 잠을 청할 장소”라면서, “난민도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한다.

‘둥지’라는 제목의 글은 책에서도 매우 밀도 있는 한 편이다. 저자는 어릴 적부터 새에 대한 관심이 깊었다. 그는 “집 정원에서 찌르레기와 박새와 개똥지빠귀와 동고비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컸다. 그러던 어느 날 “(둥지는) 연약함이라는 문제를 불쑥 제기”했다. “포식자 까마귀와 고양이만 생각하면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어린 시절의 그는 “어떻게 둥지가 집이 될 수 있지?”라고 의심했다. 집은 “고정불변하고 믿을 만한 은신처”여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깨닫는다. “지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집이란 단순히 고정된 장소가 아니라 내면에 품은 공간이다. 새들이 그 점을 가르쳐줬다.” 세월이 흘러 웨일스의 매 사육센터에서 일하게 된 저자는 새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미숙아여서 인큐베이터에 있어야 했던 저자는 매의 알에 입을 대고 “나즈막이 구구구 소리”를 낸다. 알 속의 새끼가 이를 되받아 “구구구 소리를 낸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한다.

자연 속의 존재들을 관찰하고 때로는 매혹당하면서, 그 경이로운 존재들의 삶을 자신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와 함께 엮어내고 있다. 모두 41편을 담았다. 물론 감상주의적 편린들이 곳곳에 드러난다. 전작 <메이블 이야기>에 비해 집중력이 떨어지는 점도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다른 존재’에 대한 저자의 애정은 곡진하다. 그는 “내 주제는 사랑”이라고 확언한다. “서로 간의 차이를 알아차리고 인정하면서 서로 보살피고 사랑”하라는 것이 책의 메시지다. ‘타임’ ‘워싱턴포스트’ 등은 올해의 책으로, ‘가디언’은 최고의 자연 부문 책으로 선정했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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