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청원] "태풍∙지진 때 반려동물도 구조하고 재난대책 세워주세요"

고은경 2021. 11. 2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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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반려동물 재난대책 마련해달라는 '도치'
편집자주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철학으로 시작된 청와대 국민청원은 많은 시민들이 동참하면서 공론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 못 하는 동물은 어디에 어떻게 억울함을 호소해야 할까요. 이에 동물들의 목소리를 대신해 의견을 내는 애니청원 코너를 시작합니다.
2019년 4월 강원 고성군 산불로 털이 그을린 채 구조된 도치. 동물자유연대 제공

저는 2019년 4월 강원 고성군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했을 당시 개농장에서 구조된 '도치'(5세 추정)입니다. 화마가 개농장을 덮쳤고 저는 발이 빠지는 '뜬장'에서 재를 뒤집어 쓴 채 겨우 살아남았는데요. 개농장주는 연기를 마셨거나 다친 개들의 소유권을 포기했고, 5마리의 개가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 반려동물 보호소 '온센터'에 오게 됐습니다. 이 가운데 1마리는 새 가족을 만났지만 저를 포함한 도나, 도니, 도리는 아직 센터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들은 아직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완전히 풀진 못했습니다.

이렇게 구조된 건 운이 좋은 경우입니다. 대피하지 못하고 다치거나 생명을 잃은 반려동물이 곳곳에서 발견됐지요.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제출받은 '주요 자연∙사회재난 당시 반려동물 유실∙유기 현황 집계' 자료에 따르면 고성 산불 당시 4월 한 달간 총 31마리가 보호자를 잃었습니다. 해당기간 지역 동물보호센터에 입소한 동물만 집계한 것으로 실제 피해 규모는 이보다 더 클 것으로 예상했는데요.

2019년 4월 강원 고성군 산불 발생 시 개농장에서 구조된 도치가 동물자유연대 보호소에서 새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당시 반려동물 재난대책 부재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고,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동물복지 5개년 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재난에 대비한 반려동물 대피시설 지정, 대피 가이드라인 제작을 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구체적인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는데요.

행정안전부의 애완동물 재난대처법. 국민재난안전포털 캡처

현재까지는 반려동물 재난대처와 관련해 행정안전부의 '애완동물 재난대처법'이 유일합니다. 여기에는 동물 소유자들이 동물을 자발적으로 대피시키고 '애완동물은 대피소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유념할 것'이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또 자신의 지역 외부에 거주하는 친구나 친척들에게 비상시 자신과 애완동물이 머물 수 있는지 알아보고 재난으로 인해 자신이 귀가하지 못할 경우, 애완동물을 돌봐달라고 이웃이나 친구, 가족에게 부탁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전혀 받을 수 없는 겁니다.

미국, 영국, 호주, 일본 등 다른 나라의 반려동물 재난대처법 내용. 동물자유연대 제공

하지만 미국과 일본 등의 경우는 다릅니다. 미국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많은 동물이 피해를 당하자 반려동물 대피 및 구조법을 마련했는데요, 여기에는 재난 발생 시 동물을 구조해야 하며 동물과 함께 대피할 때 주의해야 할 점 등이 담겨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도 지방자치단체가 반려인들에게 반려동물 재해 대책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원칙적으로 사람과 동물이 함께 대피소에 들어갈 수 있으니 함께 대피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국내에서 반려동물 재난대책의 필요성이 대두된 지 2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정부의 반려동물 재난대책은 제자리걸음이라는 건데요. 최근 반려동물의 재난대책 지원을 담은 동물보호법, 재난구호법 개정안이 발의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재난 상황 발생 시 반려동물도 구조 대상에 포함하도록 하는 내용의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발의, 17일 입법 예고를 마쳤다고 하고요. 앞서 9월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지자체장에게 재난 시 동물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대피 지원 계획을 수립·수행하도록 하고,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재난 시 반려동물의 임시보호 공간 제공을 구호 방안에 포함시키는 내용의 동물보호법 및 재난구호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고 합니다.

강원 고성·속초 일대 산불이 번진 2019년 4월 5일 오후 강원 고성군 토성면 용촌1리 마을에서 검게 그을린 반려견이 전소된 집 앞에서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 뉴스1

2017년 경북 포항 지진과 2019년 강원 고성 산불 발생 시 대피소에 반려동물과 들어가지 못한 이재민들이 반려동물을 잠시 맡길 곳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위험에도 불구하고 집에 머무르거나 거리, 차 안에서 지낸 사례가 보도된 바 있습니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해당 법안을 발의하면서 "사람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반려동물의 안전 또한 고려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에 동의하는 바이며 재난·재해 발생 시 반려동물을 구조하고 반려동물이 대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줄 것을 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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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경 애니로그랩장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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