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곡할 역사의 뒤안, 귀인 혹할 현실 속 힐링길 [투어테인먼트]
[스포츠경향]
괴발개발이라도 탁상공론보다 낫다. 시절에 지친 발걸음이라도 그 궤적에서 만나는 역사는, 또다시 살아갈 힘을 주기도 한다. 의미를 찾기위해 떠난 여행길은 아니지만, 우연히 스친 그 묏자리가 끝내 발목을 잡는다. 수많은 트레킹을 통해 자연스레 묏자리 순례객이 된 김무종씨의 도움으로 등산과 산책 길에서 만난 묏자리 이야기를 들어봤다.
■요즘도 아바타가 넘치는 조말생의 묘(남양주 수석동)
조말생(1370~1447년)은 조선 태종과 세종 대에 걸쳐 관직을 끝내 유지했다. ‘끝내’라 함은 조선판 ‘법꾸라지’로 노비 관련 스캔들의 주역으로 공범으로부터 36명의 노비를 증여 받은 탓이다. 죄인은 그는 죄값을 단기간의 ‘귀양’으로 ‘퉁’친 후, 다시 관직에 복귀했다. 더군다나 천수를 누렸으니, 역사가 반복된다는 수많은 이의 일갈처럼 과거나 지금이나 판박이다.
조말생은 남양주시 금곡동에 있는 홍릉(고종)에 안장됐으나, 고종에 의해 집안 묘역 40여기와 함께 현재의 장소로 옮겨졌다. 이런 소란스런 분위기와 달리 그의 묏자리는 풍광이 대단하다. 검단산, 예봉산 사이를 지나 흐르는 한강이 그대로 내다 보인다.
조말생의 묘는 경기옛길 평해길 2코스 ‘미음나루길’ 12㎞에서 만날 수 있다. 합수머리세월교→조말생묘→덕소역→팔당역으로 이어진다. 조말생묘 인근은 가파른 언덕과 내리막 길, 자작나무 숲이 있다. 언덕에 맛집과 카페, 공원이 있어, 연인이며 가족 탐방객들의 발길이 잦다. 오롯이 걷는 길과 더불어 한강 건너 보이는 신도시의 스카이라인이 볼거리다.
■결국 ‘황금 보기를 풀같이 한’ 최영 장군의 묘(고양시 대자동)
‘황금을 보기를 돌 같이 하라’는 말보다 묘에 풀이 자라는 지 여부가 더 호기심을 끄는 고려말 최영 장군(1316~1388년)은 고양시에 잠들었다. 사실 ‘황금’ 이야기는 최영의 부친인 최원직의 유언으로, 최영 스스로 그 말을 마음 속에 새긴 탓에 파워 엘리트이면서도 부정부패에 휘말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풀’ 이야기는 어찌 된 것일까? 원·명 교체기, 고려 역시 정치적 혼란이 이어졌다. 최영의 죽음은 왕조를 지키려는 그와, 그가 키웠지만 위화도 회군으로 쿠데타 밖에 살 길이 없었던 이성계의 대립이 가져온 불행이다. 참형된 최영은 죽기 전 “평생 탐욕이 있었다면 내 무덤에 풀이 자랄 것이요, 탐욕이 없었다면 풀이 자라지 않을 것”이란 유언으로 남겼다. 각종 자료를 찾아보니, 그의 말은 600년 가까이 지켜져오다가, 1976년부터 풀이 자라기 시작했단다. 이 때문일까. 최영 장군은 오늘날에도 무속신앙에서 가장 영험한 힘을 지닌 장군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최영 장군의 묘는 고양시 대자산에 있다. 7.1㎞ 이어지는 누리길이 시작되는 대양로 초입에는 열댓 개의 비석들이 줄지어 서있다. 오늘의 주객인 최영 장군의 묘를 비롯해 성령대군(태종의 넷째 아들로 세종의 친 동생) 등 대자산 곳곳에 있는 역사 인물들의 묘역을 알리는 이정표들이다. 이곳에 영사정도 있는 데, 조선 숙종 때 인원왕후의 부친인 김주신의 집으로 1709년 지어졌고 2014년 복원됐다. 고양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옥으로 손꼽힌다. 고택 옆 언덕에서 바라보는 북한산 경관도 일품이다. 이 길은 가을이면 붉게 물든 단풍나무가 가을 정취를 더해준다.
최영 장군은 몇해 전 탄생 700주년을 맞아 고양문화원에서 세운 석비가 있어 찾기 어렵지 않다. 최영 장군의 묘는 100여 개의 돌계단과 고려 전통의 묘역 양식인 곡장(曲墻)으로 부친 최원직의 묘와 위 아래로 자리했다.
■과학으로 이기고픈 애국의 전설, 문무대왕릉(경주시 문무대왕면)
신라 문무대왕(재위 661∼681년)은 해중릉에 안거했다. 문무대왕면 봉길리 앞 해중(대왕암)을 스스로 묏자리로 택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적 제158호다. 삼국통일을 했지만 그 통일은 문무대왕에게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 불안정한 국가의 안위를 지키겠다는 무한 책임은 유골을 동해에 묻어, 용이 되어서라도 신라를 지키겠다는 전설로 이어졌다. 아들 신문왕의 만파식적은 저승의 문을 여는 ‘일성호가’였다. 화장된 대왕은 대석에 유골이 뿌려지고 장례가 치러졌다. 그 대석이 대왕암이다.
대왕암은 육지에서 불과 200여 미터 떨어진 바다에 있다. 1300여 년이 지나 그 바위에 현대인의 호기심이 초음파를 들이대, 해중릉의 실제 여부가 논란이 됐다. 지금도 엄존하는 능지탑, 감은사 창건의 이유, 인공으로 절리된 대왕암의 흔적, 그 흔적이 사리탑 양식이라며 과학과 팽팽히 맞서고 있다.
논란을 떠나. 문무대왕릉을 품은 봉길해변은 해변 산책 코스로 그만이다. 동해 바다이기에 일출도 의미 있고, 해무 퍼진 문무대왕릉의 전경은 전설을 시연한다. 여기엔 한몫 하는 것이 바닷새의 향연이다. 새우깡 한 봉지의 행복은 여심을 키우고 여독을 해소한다.
인근에 횟집들이 지천이고, 경주 시내 역시 지근거리라 경주 여행의 포인트로 삼기에 좋다.
■대건이 걸어 대중이 길을 만든 김대건 신부 성지(용인시·안성시)
올해는 우리나라 최초의 가톨릭 사제이자 유네스코 세계 기념 인물로 선정된 김대건 신부(안드레아 1821~1846)의 탄생 200주년이다. 때마침 용인시와 안성시를 연결해 김대건 신부의 자취가 깃든 역사적 명소에 순례길을 조성했다.
은이성지와 김대건 신부의 묘가 있는 미리내 성지를 잇는 길이다. 10.3㎞에 이르는 길은, 김대건 신부의 자취가 깃든 곳이라는 ‘청년 김대건 길’로 명명됐다. 그가 산 시간이 오롯이 청년이기 때문이다. 신부의 뜻이 오늘도 이어지는 덕에 트레킹은 자연을 느끼며 편안히 걸을 수 있다.
이중 안성에 있는 은이성지는 김대건 신부가 1845년 세례를 받고, 첫 사목활동을 했던 장소다. 더불어 순교하기 전 마지막 미사를 올렸던 곳이기도 하다. 이 곳은 마음만 일렁이게 하는 게 아니라, 가을 풍광 역시 단풍으로 동공에 지진을 일으킨다. 그 속에 김가항 성당은 고결한 하얀 색 역시 방점이 되고 남음이 있다. 성당 옆에 김대건 신부 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은이성지의 맞은편에 십자가의 길이 있다. 그 길을 나오면 용인의 미리내 성지까지 고개 세 곳이 있다. 이 모두 김대건 신부가 걸었던 길이다. 이를 기억하면 그 자체로 사색과 힐링의 코스가 된다. 은이성지에서 약 5㎞ 떨어진 곳에 김대건 신부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골매마실 성지도 있다.
■동구밖 왕족묘지, 그 자체로 힐링코스 동구릉(구리 동구릉로)
동구릉은 조선왕조 7명의 왕과 10명의 왕비·후비가 잠든 곳이다. 이곳은 태조가 건원릉에 잠들면서 조선왕조의 왕릉으로 조성되기 시작했다. 동구릉이란 이름은 1849년 헌종의 경릉이 아홉번째로 이곳에 잠들면서부터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9릉은 태조의 릉, 문종과 현덕왕후의 현릉, 선조와 의인왕후·계비 인목왕후의 목릉,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의 휘릉, 현종과 명성왕후의 숭릉, 경종비 단의왕후의 혜릉,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의 원릉, 헌종과 효현왕후·계비 효정왕후의 경릉, 추존된 문조와 신정왕후의 수릉이다.
동구릉은 전체 능역이 59만여 평에 달한다. 숲이 울창해 인근 학생들 소풍장소로, 역사공부의 현장이 되어 왔다. 이중 건원릉은 함흥을 그리워한 태조의 유지를 받들어 억새풀로 옷을 입혔다.
구리 교문사거리에서 43번 국도를 따라 퇴계원 쪽으로 1.9㎞ 가면 동구릉주차장이 나온다. 이곳의 안내판만 읽어도 그 자체로 실사판 ‘조선왕조 500년’을 새록새록하다. 왕릉으로 조성된 곳이라, 이곳을 돌아보는 것 자체가 힐링코스라 하겠다.
강석봉 기자 ks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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