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UP] 사우디 왕세자, 석유 증산 거부하며 바이든에 관계개선 요구
국제 유가 급등으로 각국이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세계 최대 석유 소비국인 미국과 최대 석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의 외교적 갈등이 부각되고 있다. 미국의 거듭된 석유 증산 요청에도 사우디가 이끄는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호응하지 않으면서부터다. 이를 두고 “조 바이든 미 행정부로부터 독재자로 낙인찍힌 사우디의 실세 통치자 무함마드 빈 살만(36) 왕세자가 석유를 무기로 반격에 나섰다”(파이낸셜타임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수개월간 유가가 급등하자 OPEC 등 주요 산유국에 증산을 요구했다. 그러나 사우디가 이끄는 OPEC은 “코로나 팬데믹 때 대폭 감산했기 때문에 갑자기 증산하기 어렵다” “유가 상승은 원유 공급 부족 때문이 아니라 각국의 탈화석 등 에너지 정책 문제 때문”이라는 등의 이유를 대며 미온적으로 대응했다. 그사이에 통제되지 않은 유가가 주 요인이 된 인플레이션으로 미국의 민생이 악화되면서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30~40%대로 폭락했다. 대부분 자동차 생활을 하는 미국에서 유가는 일반 국민의 생활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물가 지수로 인식된다.
급기야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3일 한국, 일본, 중국 등과 연대해 전략 비축유 방출을 발표했다. 그러자 사우디는 “왜 유가를 억지로 떨어뜨리려 하느냐”고 반발했다. 사실 미국이 푼다는 전략 비축유 5000만 배럴은 전 세계 인구가 반나절 쓸 수 있는 정도의 양에 불과하다. 글로벌 유가를 안정시킬 정도의 공급 확대는 사우디 같은 주요 산유국의 손에 달려있다. 24일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사우디와 러시아는 미국에 분노해 하루 40만 배럴씩 증산하려던 계획을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OPEC발 감산 우려에 국제 유가는 오히려 더 오르기도 했다.
이런 상황은 20세기 중반 이후 핵심 동맹이었던 미국과 사우디 간 관계에서 좀처럼 볼 수 없던 장면이다. 사우디는 3년 전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2018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유가 안정을 위해 증산을 요청하자 이를 수용했었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바이든 정부는 빈 살만 왕세자를 ‘살인자’ 취급하며 국제 사회에서 소외시켰다. 2018년 10월 터키에서 사우디의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살해된 사건의 배후로 빈 살만이 지목된 것과 관련해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정부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카슈끄지 사건 당시 미 중앙정보국(CIA)은 빈 살만의 지시에 따라 살해된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빈 살만의 연루 가능성을 단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빈 살만에게 면죄부를 줬다. 트럼프는 또 예멘 내전에 개입한 사우디에 미국산 무기와 병력을 계속 공급했다. 미국산 무기 최대 수입국인 사우디와의 이해관계를 우선한 것이었다. 트럼프는 취임 직후 사우디를 가장 먼저 국빈 방문하기도 했다.
반면 ‘인권’을 내세운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한 달이 지나서야 사우디에 첫 전화를 했는데, 상대는 통치에서 손을 완전히 뗀 빈 살만의 아버지 압둘아지즈 빈 살만 국왕(85)이었다. 이어 카슈끄지 사건 조사의 기밀문서를 공개하도록 해 몸통이 빈 살만임을 확인했다. 바이든 정부는 사우디에 대한 미 무기 판매도 중단했다. 또 사우디의 주적인 이란과의 핵협상도 재개했다. 사우디의 미국 등 서방 국가 내 투자와 외교 활동은 중단되다시피 했다.
바이든 정부 출범으로 위기에 몰렸던 빈 살만의 입지는 최근 석유가 전략 무기임이 다시 한번 입증되면서 달라졌다. 블룸버그통신은 24일 “유가 상승으로 백악관은 진창에 빠졌지만, 빈 살만은 2025년까지 1조달러의 국부펀드를 쌓아 집권 기반을 다질 수 있게 됐다”며 “사우디야말로 세계 에너지 시장의 진짜 운전사”라고 했다.
미 워싱턴 정가에서 “인플레로 우리가 사우디의 경제 제재를 당하는 셈”이란 말까지 터져나오자, 바이든 정부는 사우디에 화해의 손짓을 보내기 시작했다. 지난 9월부터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존 케리 기후변화 특사 등이 차례로 사우디를 찾아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났다. 미 국무부는 사우디에 대한 무기 판매도 일부 다시 승인했다.
그러나 빈 살만 왕세자는 바이든 대통령과의 양자회담 등을 통해 미국의 인정을 공식적으로 받기 전까지는 원유 증산에 타협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 탐사보도 전문매체 인터셉트는 최근 빈 살만의 대변인 격인 인사가 “미국 추수감사절 칠면조 값이 두 배로 뛰었다고 들었다. 바이든은 지금 전화를 해야 하는 사람(빈 살만)의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고 전했다. 바이든이 빈 살만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취지다. 이 때문에 빈 살만이 석유를 고리로 바이든과 기싸움을 벌이는 모양새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Korea’s defense industry now proposes new approaches we can learn from,” says Lockheed Martin
- “우크라전 조력자 中에 반격”...나토 항모들, 美 공백 메우러 아·태로
- 무릎 부상 장기화된 조규성, 오랜만에 전한 근황
- 박성한 역전적시타… 한국, 프리미어12 도미니카에 9대6 역전승
- “한국에서 살래요” OECD 이민증가율 2위, 그 이유는
- 연세대, ‘문제 유출 논술 합격자 발표 중지’ 가처분 결정에 이의신청
- ‘정답소녀’ 김수정, 동덕여대 공학 전환 반대 서명…연예인 첫 공개 지지
- “이 음악 찾는데 두 달 걸렸다” 오징어게임 OST로 2등 거머쥔 피겨 선수
- “이재명 구속” vs “윤석열 퇴진”… 주말 도심서 집회로 맞붙은 보수단체·야당
- 수능 포기한 18살 소녀, 아픈 아빠 곁에서 지켜낸 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