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그늘] 구도심
[경향신문]
구도심이냐 신시가지냐에 따라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차이를 드러낸다. 구도심에는 주로 낡은 주택과 관공서가 있다. 관공서마저 떠나 버리면 그야말로 맥 빠진 곳이 되어버릴 것이다. 낡고 초라한 건물들 사이로 작은 골목이 이어지고, 그곳에는 이발소와 슈퍼와 색소폰 학원과 당구장이 보인다. 색소폰 가게는 이미 문을 닫았고 당구장에는 동네 노인들이 100원 내기 당구 치는 모습을 간간이 볼 수 있다.
대부분 노인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것으로 알고 있는 구도심에는 그래도 사람 사는 모습이 남아 있다. 콩나물 국밥집 입구에는 작은 화단이 붙어 있고, 때로는 채송화나 봉숭아 모종을 나누어 가기도 한다. 어쩌다 보니 버스 종점에 젊은이가 차린 커피 로스팅 가게가 들어서 있다. 그 집이 눈에 뜨일 정도로 주변은 고요하고 적막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하나둘씩 빈집이 늘어나고 있다.
반면에 신시가지 주변에는 온갖 맛집이 줄이어 있고,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새것을 좋아해서 살고 있는 아파트를 얼마 지나지 않아서 팔고 곧 새 아파트로 옮겨간다.
사람의 모습이 뜸한 구도심에는 비탈길이 많다. 비탈길 골목에서는 시가지가 내려다보이고 산과 강을 가로막고 서 있는 아파트단지를 바라볼 수 있다. 대문도 없는 어느 집 회색 시멘트 담 아래 화단에서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희고 탐스러운 꽃이 피어 있다. 그 꽃 위로 하얀 공작의 깃털 같은 것이 펼쳐 있었다. 너무 신기해서 조화인 줄도 몰랐다. 구도심 골목길은 새로 생겨나는 것보다 늙어가는 것과 제 빛을 잃어가는 것들로 가득하여 조화에도 물을 주고 싶을 정도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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