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단지 '權色거래'의 폭로일까..'중국판 미투' 진상

박영서 2021. 11. 25. 22:1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강권국가' 중국에서 아주 드문 불륜 스캔들이 터졌다. 주인공은 중국 공산당 최고 간부 중 한 명이었던 장가오리(張高麗·75) 전 부총리와 중국을 대표하는 테니스 선수 펑솨이(彭帥·35)다. 펑솨이는 모종의 결심을 하고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성폭력 피해와 불륜 관계를 적나라하게 공개했다. 그 내용은 외신을 통해 전파되면서 폭발력있는 국제 이슈로 커졌다. 분명히 '미투'(성폭력 고발 캠페인)이지만 한편에선 정치적 음모론이 제기된다. 이번 폭로가 상하이방(上海幇)을 몰아내기 위해 현 지도부의 '일격'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를 한번 따져보자.

◇하나부터 열까지 이례적 전개

그녀의 고발은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중국 정부가 허용할 지는 다른 문제다. 중국 국내에서 인터넷 검열은 대규모로, 게다가 정밀하게 이뤄진다. 중국 공산당의 이익을 해치는 글은 즉석에서 삭제된다. 그 철벽 시스템은 '만리장성 방화벽'(Great Firewall)으로 불린다.

지금까지의 상식대로라면 이번 고발 글은 인터넷에 올라오는 순간 흔적도 없이 지워졌을 것이다. 하지만 글은 널리 퍼졌다. 국제스포츠계까지 중국에 등을 돌린다면 베이징동계올림픽 성공 개최에 경고등이 켜질지 모르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중국 당국이 어느 정도 확산을 용인했다고 봐야한다. 이례적이다.

이례적인 것은 또 있다. 펑솨이의 안전이다. 지금까지 중국에선 금기를 깨뜨리면 치르는 대가가 컸다. 기존 관행에 비추어보면 펑솨이는 아마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펑솨이의 안전을 걱정했다. 펑솨이도 한때 실종설이 퍼졌다. 하지만 최근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공개한 사진 속 펑솨이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폭로 글을 올린 지 2주만에 펑솨이는 다시 등장해 건재함을 드러냈다. "정권의 비호가 없었다면 가능한 일이었겠느냐"는 지적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앞으로도 펑솨이는 별일 없을 것 같다.

게다가 이번 고발의 대상자는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을 지냈던 최고 권력층 인물이다. 물론 정치국 상무위원이 '사생활 문제'로 곤혹을 치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2년 상무위원 저우융캉(周永康)이 관영 중국중앙(CC)TV 앵커 예잉춘(葉迎春), 선빙 등과 내연 관계라는 이야기가 나온 바 있었다. 하지만 이는 저우융캉 부패사건을 조사하면서 나온 '부산물'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직 부총리를 정조준했다. 장가오리는 불행히도 중국 지도자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성비리가 공개되는 '대망신'을 겪었다. 역시 이례적이다.

◇최고 권력자에서 추악한 성범죄자로

이번에 부적절한 관계를 폭로당한 장가오리는 푸젠(福建)성 진장(晋江) 출신이다. 1946년 11월생으로 올해 75세다. 빈농 출신이다. 1970년 샤먼(廈門)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석유부 산하 광둥(廣東)성 마오밍(茂名)시의 마오밍석유공업공사로 배정됐다. 물류 부서의 노동자였다. 전공과는 어울리지 않는 직장이었지만 회사에서 고속 승진했다. 부사장까지 지낸 후 1985년 광둥성 경제위원회 주임으로 발탁되면서 관계에 진출했다. 그런 사이 그는 석유업계의 거물로 성장했다.

장가오리는 광둥성에서 선전시 당서기, 광둥성 부서기 등 다양한 경험을 쌓은 후 2001년 산둥(山東)성으로 무대를 옮겼다. 산둥성 당서기로 근무하던 2006년 5월 그는 '인생의 귀인'을 만났다. 중국 국가주석 직함을 뗀 80세의 장쩌민(江澤民)이 태산(泰山) 여행을 온 것이다. 장가오리는 이틀 동안 봉산(封山)을 명령하는 등 최고의 예우를 다했다.

당시 그는 특정 정파에 속한 인물이 아니였다. 장쩌민이 이끄는 상하이방도,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국가주석을 필두로 한 퇀파이(團派·공청단 계열)도 아니었다. 원로 자녀들의 파벌인 태자당(太子黨)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는 장쩌민의 눈에 쏙 들면서 상하이방으로 분류되기 시작한다. 이후 출세의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2007년 직할시인 톈진(天津)시 당서기로 영전했고 당 정치국에 입성했다. 2012년 11월 시진핑(習近平) 현 총서기를 선출한 제18차 중국공산당대회에서 마침내 권력의 핵심인 상무위원으로 선출됐다. 장쩌민의 후광이 없다면 어림없는 일이었다. 상무위원 '톱7'의 마지막 7번째가 정해지지 않았을 때 장쩌민이 그를 추천했다고 한다. 보답으로 그가 장쩌민 일파에게 광둥성의 석유 이권을 계속 주었다는 얘기가 있다.

이듬해 3월 정식 출범한 시진핑 정권에선 부총리를 맡게 됐다. 은퇴 후 만년을 광둥성 선전에서 보냈던 시중쉰(習仲勳) 전 부총리를 그가 잘 보살폈기 때문에 아들인 시진핑도 이견이 없었다는 후문이다.

2017년 10월 상무위원에서 물러난 후에도 장가오리의 정치적 위상은 높았다는 분석이다. 2018년 은퇴를 앞두고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사회주의 사상을 지침으로 삼는다"는 등의 발언을 한 것을 보면 그렇다. 올해 7월 1일 열린 공산당 창당 100주년 경축대회에선 오랜만에 그의 모습이 톈안먼(天安門) 누대에서 확인되기도 됐다. 이런 그가 졸지에 추악한 성범죄자로 급락했다.

◇'일격' 맞은 상하이방, 치열해지는 권력투쟁

장가오리는 외관상 독특한 스타일이다. 머리는 염색해 까맣고 얼굴은 창백할 정도로 하얗다. 특히 표정이 전혀 없다. 마치 로봇 같다. 그래서 속 마음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속에는 뭔가 꿍꿍이가 잔뜩 도사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절대 만만치 않은 느낌이다.

이런 그가 졸지에 '권색(權色) 거래'의 파렴치한으로 급락했다. 그의 추락은 중국 공산당의 '역사결의'와 관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1월 8일 19기 6중전회(중국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제6차 전체회)가 열렸고 11일 폐회했다. 6중전회에서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아 세 번째 '역사결의'가 채택됐다.

평솨이의 폭로는 11월 2일 이뤄졌다. 시기에 주목해야 한다. 6중전회 개최 직전이다. 스캔들이 6중전회 직전에 터져 나왔다는 건 우연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 현 집권 세력의 '의중'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중국문제 전문가들의 견해다.

상하이방은 시진핑의 최대 정치적 라이벌이다. 시진핑은 이번 6중전회에서 장쩌민 집권 시절에 전면적인 부패가 초래됐다고 공개적 지적을 하려 했다고 한다. 공개 비판 의도는 '시진핑 신시대'를 확립하기 위함이다. 장쩌민의 구(舊)시대에 대한 부정 없이는 시진핑의 신시대는 '모래 위의 성'처럼 기초가 허약해진다.

그런데 장쩌민의 과오를 비판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장가오리가 앞장서서 반대했다. 반면 후진타오 전 주석은 시진핑을 지지했다. 후진타오는 죽을 때까지 권력을 쥐려는 장쩌민에게 넌덜머리가 난 사람이다. 명색이 국가 최고지도자였지만 군권을 장악하지 못한채 상하이파의 끊임없는 견제를 받았었다. 이번에 후진타오가 시진핑을 지지한 이유다.

이미 시 주석은 '부패와의 전쟁'을 통해 장쩌민의 측근들을 쳐냈다. 장쩌민의 '왼팔'로 불리던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와 '오른팔'로 불리던 저우융캉을 제거하는 등 집권 기간 내내 상하이방을 숙청했다. 이번에 또 다시 장쩌민계에 타격을 주는 '성추문'이 터졌다.

이를 보면 이번 폭로는 권력투쟁의 일환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미투를 시진핑 정부의 '관제 고발'이라고 보는 것이다. 상하이방, 퇀파이, 태자당 출신으로 분권된 권력 구도가 시진핑계 태자당으로 한층 집중되는 신호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상하이방이 가만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창과 방패의 싸움이 계속될 것이다. 절정은 내년 하반기 열리는 20차 당 대회일 것이다. 20차 당대회 전에 장쩌민을 공개 비판할지를 놓고 치열한 정치투쟁이 전개될 확률이 높다. 20년 전의 부적절한 관계를 드러내 우회 공격한 것을 보면 시진핑의 권력 공고화 과정이 얼마나 상상을 초월해 진행될 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박영서 논설위원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