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호 칼럼] 대통령, 되는 것보다 되고 나서가 문제다

2021. 11. 25.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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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호 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前무역협회장
김인호 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前무역협회장

1998년 4월 어느 날 필자가 김영삼 전 대통령을 상도동 사저로 예방하여 외환위기와 관련 김대중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 김 대통령은 불쑥 필자에게 말했다. "김 수석은 정치를 안 해봐서 모르는데 선거 때가 되면 정치인 눈에는 표밖에 안 보인다."지금도 필자의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는 말이다.

한참 뒤 2011년 9월 어느 날 시장경제연구원을 운영하고 있던 필자는 대통령 출마를 염두에 두고 준비하고 있는 박근혜 당시 여당대표에게 경제관련 조언을 할 기회가 있었다. 필자가 직접 작성한 '새로운 경제정책방향의 모색'이란 제목의 자료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하던 중 당시 박 대표에게 이런 말을 한 기억이 있다. "저는 대표께서 다음 대선에서 당선될 것을 믿습니다. 문제는 대통령이 되는 것이 아니고 대통령이 되고 난 뒤가 정말 문젭니다." 당시 필자는 천지개벽 수준의 변화된 국내외 경제여건 하에서 일관된 철학을 바탕으로 한국경제를 이끌어 진정 경쟁력 있는 경제를 만들 자신과 방안을 정말 가지고 있느냐는 것을 묻는 말이었다.

그분이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에게 성공을 가져다 준 한국경제의 3대 신화, 즉 '경제제일주의의 신화' '고도성장의 신화' '한국주식회사의 신화'에 매몰되어 거기서 헤어 나오지 못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었는데 당시 박 대표가 필자가 진정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필자는 요즘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의 계절에 불나방처럼 표만 보고 덤벼들면서 당선만 되면 만사를 다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이 말하는 여야 대선 후보들을 보면서 새삼 김영삼 대통령이 한 말이 실감나고 있고 ,퇴임 후 거의 예외 없이 불행하게 되는 역대 대통령을 염두에 두면서 만약 기회가 있다면 이들 후보들에게 10여 년 전 박근혜 대표에게 한 똑같은 말을 해주고 싶은 충동을 금하지 못하고 있다.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재선 고지를 향한 현직 대통령 아버지 부시에 대해 크게 열세였던 촌뜨기 클린턴이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Economy, Stupid!)"라는 촌철살인의 구호로 '경제 살리기' 승부수를 던지고 저소득층을 파고들어 승리했다. 미국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정치지도자들 중 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한국적 '경제제일주의' 철학의 창시자 박정희 대통령을 시작으로 소위 우파정권의 대통령은 말 할 것 없고 심지어 정치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인정하는 데 인색한 언필칭 진보(사실은 좌파)정권의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현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예외가 없다. 그런데 왜 경제가 잘 안될까? 그 배경과 원인에 대해 10월 27일 자 본란에 기고한 '국가주의 경제사상의 종언'을 통해 필자의 생각을 밝힌 바 있다.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경험과학이다. 지금 지구상에 시장경제를 하지 않는 나라치고 경제가 제대로 되는 나라가 없다. 지난날 공산주의, 사회주의로 일관한 나라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이미 역사적 사실로 우리 국민 모두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무너져 버린 소련, 동구권의 수많은 나라들이 그들이다. 오늘은 북한, 쿠바, 베네수엘라 등의 참담한 경제적 상황을 보고 있다. 심지어 사회주의의 종주국이라고 하는 중국조차도 경제에 관한 한 시장경제를 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혹시 어떤 나라가 '중국, 너희가 무슨 시장경제국가냐?'고 시비를 걸면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거부반응을 한다. 베트남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오랜 전쟁 끝에 승리하고 통일 베트남에 공산정권을 세웠지만 나라를 이끌어 가려니 미국의 도움을 받고 일정부분 시장경제 원리를 도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런 원칙하에 국가운영을 하고 있다. 같은 공산정권인 중국보다 훨씬 더 미국에 가까이 다가가는 정책을 쓰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정치의 수요자인 국민들이 진정 시장경제의 본질에 대한 충분한 인식을 가지고 현명하게 후보자들에 대한 정치적 선택을 한다면 필자가 앞에서 이야기 한 그런 우려는 기우에 그칠 것이다. 남는 문제는 최종 단계인 국민들의 선택과정, 즉 투표의 공정성, 투명성의 보장뿐이다. 이렇게 '선거'라는 정치의 핵심 요소의 전 과정에 시장경제의 핵심 이론 중 하나인 '소비자 선택이론'이 유추 적용된다면 정치와 관련된 경제문제의 대부분이 해소될 것이며 그러한 선거에 의해 당선된 정치인과 소속 정당이 갖는 경제에 관한 생각과 정책이 국민 일반의 생각과 크게 괴리되는 현상은 원천적으로 없어질 것이다. 한국경제의 앞날을 위해 한국정치가 풀어야 할 최대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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