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과학자가 책을 써야하는 이유
우리나라에서는 자기계발서나 에세이 등의 출간은 비교적 활발하다. 하지만 과학책은 그렇지 못하다. 과학자가 책쓰기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학사의 시각에서 볼 때 우리나라는 그동안'과학의 변방'에 머물렀지만 서서히 '과학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 현상이 발생하자 국민들의 과학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이처럼 과학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지만 국민들의 지적 호기심을 채울 수 있는 과학책은 대부분 번역서다. 국내 과학자가 쓴 과학책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어떤 독자들은 번역된 과학서를 읽는 것이 어렵다고 호소한다. 그도 그럴 것이 번역서를 읽다보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함이 느껴지고, 마치 남의 옷을 빌려입은 기분마저 든다. 이유는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 때문이다. 과학적 사실에 대한 원리나 개념, 실험을 설명한다고 할 때 번역서에서 느끼는 이질감은 어쩔 수 없다.
물론 모든 번역서에서 이질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물 흐르듯 잘 번역된 번역서도 있지만 책의 서술방식, 문화적 차이, 가치관 등으로 국내 과학자가 저술한 책보다 친근하지 않다. 번역서를 읽으면서 '과학 콘서트'의 정재승 교수나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개미제국의 발견'의 최재천 교수로부터 받는 이웃집 과학자의 자상함은 느낄 수 없다.
서점의 과학 코너에 가보면 대부분의 책들은 번역서가 차지하고 있다. 과학 베스트셀러도 번역서가 대부분이다. 국내 과학자가 책을 쓸 경우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독자들의 정서에도 부합할 수 있다. 어떤 독자는 번역서를 읽으면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기분이라고 얘기한다. 가독성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현대인들은 잘 포장된 도로를 달리는데 익숙하다. 과학책도 마찬가지다.
국내 과학자는 자기 연구에 대해 논문을 써서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하는 것은 선호하지만 일반인을 위한 과학책을 쓰는 것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과학 책쓰기는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과학자들은 글쓰기는 물론 책쓰기를 외면한다. 아직 논문만큼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글을 못쓰고 자신의 의사를 상황에 맞게 표현하지 못해도 부끄러워하거나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과학자는 글을 못쓴다'는 말을 당연하듯 받아들인다.
과학 글쓰기는 물론 책쓰기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된다. 적절한 교육과 충분한 연습을 통해 글쓰기 능력을 키워 수십년 간 연구한 분야를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행히 현재 과학자의 글쓰기, 책쓰기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KIRD)과 같은 교육기관에서 다양한 책쓰기 프로그램이 펼쳐지고 있다. 예년과는 교육 여건이 많이 좋아졌다. 본인이 원하면 얼마든지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과학자가 수년 간 연구해온 결과물을 일반 국민들이 알 수 있도록 책으로 펴낼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고 있다.
어떤 과학자는 책을 쓰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퇴직 후 책을 쓸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퇴직 후는 늦다. 지금 당장 책을 써야 한다. 현직에 있을 때도 책쓰기가 어려운데 퇴직 후에는 쓸 수 있을까? 현직 때 쓰지 못하면 퇴직 후에도 쓸 수 없다.
더구나 현직에 있을 때 과학책을 써야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 퇴직 후에는 독자들의 관심이 떨어진다. "지금 바쁘다"는 핑계는 접어두고 지금까지의 연구를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출판계에 따르면 최근 과학책을 쓰는 과학자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예전에는 과학책을 쓰면 주변의 과학자 선배로부터 핀잔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격려한다. 과학책 저술 여건은 예년에 비해 좋아졌다. 국내 과학자가 더 많은 과학책을 쓰고, 독자들은 취향 저격하는 과학책을 골라 읽고, 그것도 부족하면 과학 저자를 초청해 과학 강연을 듣고, 질문하고, 토론하기를 기대한다. 국내에서 과학 저술가가 많이 나오고, 멋진 과학책이 쏟아지는 과학 문화가 형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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