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속 음표가 살아 숨쉬는 음악으로..'오케스트라 리딩' 현장

임석규 2021. 11. 25. 18:3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코리안심포니 '작곡가 아틀리에'
신예 작곡가 5명 창작곡 첫 연주
지휘자·연주자들과 의견 교환
작곡 오디션 겸 공동창작 과정
지난 22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동편 언덕배기에 자리 잡은 국립예술단체 공연 연습장 엔(N)스튜디오에서 ‘작곡 오디션’을 겸한 ‘오케스트라 리딩’이 진행되고 있다. 코리안심포니 제공

현대에 창작되는 고전음악은 가혹한 운명을 안고 태어난다. ‘현대음악’으로 불리는 고전음악만큼 동시대인들에게 냉대받는 예술 장르는 드물다. 젊은 음악인들이 당대인들의 무심한 눈길 속에서도 고전음악 창작에 열정을 불태우는 현장은 놀랍고 신기했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동편 언덕배기에 자리 잡은 국립예술단체 공연 연습장 엔(N)스튜디오. ‘작곡 오디션’을 겸한 ‘오케스트라 리딩’이 진행되고 있었다.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처음 보는 창작곡 악보를 놓고 노부스 콰르텟 비올라 주자 출신의 신예 지휘자 이승원(31)의 주문에 맞춰 연습하는 현장이었다. 방역 차단막이 설치된 조붓한 연습실에서 젊은 작곡가 5명과 심사위원을 겸한 작곡 멘토 3명, 그리고 작곡·지휘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청중이 되어 이 낯선 과정을 지켜봤다.

오케스트라 리딩이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창작곡 악보 초본을 놓고 실제 연주를 해보면서 작품에 대한 의견을 내고, 작곡가가 이를 반영해 작품을 수정하는 과정이다. 작곡자와 연주자의 공동창작 과정인 셈인데, 작곡가의 상상력을 표현한 악보 속 음표가 오케스트라에 의해 처음으로 생명력을 부여받는 순간이기도 하다.

지휘자가 작곡가와 의견을 주고받으며 악보에 갖가지 표시를 한 흔적. 코리안심포니 제공

지휘자와 단원들이 악보를 넘기며 마디마디 연습을 이어갔다. 트럼펫이 새된 음을 길게 이어가자 콘트라베이스와 튜바, 트롬본이 둔중한 저음으로 받았고, 팀파니, 비브라폰 등 타악기들이 특유의 둔탁하거나 찰랑거리는 음색을 울려댔다. 작곡가 임영진(39)의 작품 ‘상한 갈대, 꺼져가는 등불’이었다. 지휘자는 고개를 돌려 수시로 작곡가의 의견을 물었다. 살짝 이견도 표출됐다. 지휘자가 조금 템포를 올리라고 주문하자 작곡자가 나와 “지금도 빠른 것 같다”고 가볍게 이의를 제기했다. 다섯 작품이 모두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작곡자와 지휘자의 악보엔 갖가지 숫자와 부호가 빼곡히 들어찼다.

리허설이 끝난 뒤엔 다시 작곡가와 지휘자, 심사위원, 관악·현악·타악 파트별 연주자들이 머리를 맞댔다. 코리안심포니 악장인 바이올리니스트 김민균은 연주자로서 수정했으면 하는 부분을 조목조목 짚었다. 그가 가장 많은 의견을 제시했다. 선배 작곡가인 심사위원들도 템포, 음색 등을 조언했다. 작곡가 위정윤(31)은 “들어보니 대체로 맞는 의견이었다. 연주자, 지휘자의 의견을 대부분 수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코리안심포니가 ‘작곡가 아틀리에’란 이름으로 마련한 이 행사는 일종의 ‘작곡가 오디션’ 형식도 띠고 있다. 응모한 작곡가 24명 가운데 심사를 거쳐 뽑힌 5명에게 코리안심포니가 창작곡을 위촉했다. 이들이 지난 8개월 동안 작업한 5개 작품이 이번 경연 대상이다. 임영진, 위정윤 외에 전민재(34), 전예은(36), 정현식(28) 등 모두 20·30대 신예 작곡가들이다.

위정윤 작곡가가 자신의 창작곡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고 있다. 코리안심포니 제공

심사 결과는 다음달에 발표하는데, 최우수 작품은 2022년 코리안심포니 정기·기획 공연을 통해 청중과 만나게 된다. 뉴욕 필하모닉과 엘에이(LA) 필하모닉이 작품을 연주할 정도로 미국에서 인정받은 김택수와 로마상 수상자 니나 영, 앨퍼트 예술상 수상자 데릭 버멜 등 저명한 작곡가 3명이 멘토 겸 심사위원을 맡았다. 지휘자 이승원은 “기성곡을 연주할 땐 음반 등 참고할 자료가 많아 음악 해석에 많은 도움을 받지만 창작곡 초연은 첫 길을 여는 거라 부담감이 컸다”며 “신진 지휘자에게도 흔치 않은 기회여서 새벽 6시까지 곡 분석에 매달렸다”고 했다.

미국에서 작곡을 공부하며 ‘번짐 수채화’란 창작곡을 응모한 위정윤 작곡가는 “더 많은 사람이 현대음악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뭔지가 숙제 같은 고민”이라며 “클래식 음악도 시대상을 반영하는 음악일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시대의 모습을 담아내려는 젊은 작곡자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지휘를 공부하며 청중으로 현장을 지켜본 정찬이씨는 “많은 공부가 됐다. 현대음악도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려 위로와 공감을 주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갈 것”이라고 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