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춰라, 인지도가 올라갈지니.. '자기 비하 마케팅'의 비밀

신수지 기자 2021. 11. 25. 18:3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WEEKLY BIZ]

“에이..소..에이서..에이수스 노트북 스벅 출입 가능한가?”

최근 국내·외 커뮤니티에선 인기 유튜브 크리에이터 장삐쭈가 만든 ‘노트북’이라는 애니메이션 영상이 화제다. 주인공은 대만 노트북 제조사 에이수스(ASUS) 노트북을 사용한다는 이유로 스타벅스에서 입장을 거부당한다. 스타벅스에 가려면 고급스럽고 세련된 이미지의 애플 맥북을 들고 가야 한다는 인터넷 밈(meme·유행 요소)을 과장해서 만든 영상이다. 주인공이 아무리 에이수스 노트북의 뛰어난 성능을 강조해도, 다른 사람들은 브랜드 이름조차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다. 주인공은 스타벅스에서 쫓겨나고, 이를 몰래 지켜보던 ‘샤이(shy) 에이수스’ 사용자들은 집단 반발한다. 결국 평일 낮 네 시간에 한해 입장을 허가받는 다소 씁쓸한 승리를 쟁취하며 영상은 마무리된다.

얼핏 보면 에이수스 안티가 만든 영상인가 싶지만, 사실은 에이수스가 직접 장삐쭈에게 의뢰해 만든 유료 광고 영상이다. 영상 설명에는 ‘에이수스 사서 당당히 스벅 가자’라는 문구와 함께 노트북 구매 링크가 달려 있다. 6분 20초 길이의 이 영상은 업로드된 지 일주일 만에 조회 수 146만을 기록했고, 6500여 댓글이 달렸다. ‘살면서 본 광고 중에서 가장 뛰어났다’ ‘에이수스 유저로서 이 시리즈 너무 감동스럽다’ ‘진짜 크리에이티브성 대박이다’ 등 대부분 우호적인 반응이다. 미국 최대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에서도 ‘에이수스가 유튜버에게 얼마를 지불했든 가치가 있다’ ‘농담이 아니라 에이수스를 사고 싶게 만든다’ ‘내가 6분짜리 광고를 6번이나 보다니’ 등 800개 넘는 댓글이 달렸다.

◇떠오르는 ‘자기 비하 마케팅’

에이수스는 영상 업로드 이후 네이버 검색량이 세 배 이상 늘었고, 소셜미디어에서 ‘장삐쭈 노트북’으로 널리 알려지며 광고 효과를 체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삐쭈와의 협업은 이번이 처음으로, 장삐쭈가 제안한 스토리라인에 에이수스가 표현하고자 하는 제품 특장점을 녹이는 방식으로 광고를 제작했다. 에이수스 관계자는 “IT 제품에 관심이 있는 소비자들에겐 높은 사양과 내구성, 합리적 가격 등의 이유로 ‘갓(God)수스’라고 불리지만,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아직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편”이라며 “낮은 인지도라는 약점을 재밌게 풀어내면서 다양한 소비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자 했다”고 했다.

자기 비하 마케팅을 활용한 빙그레 요플레 ‘토핑’ 광고 /빙그레

최근 에이수스처럼 굳이 드러내지도 않아도 되는 자사 제품의 약점을 먼저 노출하는 ‘자기 비하(self-deprecating) 마케팅’을 시도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빙그레가 지난 4월 공개한 요플레 ‘토핑’ 광고 역시 자기 비하 마케팅으로 대박이 났다. 가수 KCM과 배우 조동혁이 촌스러운 옷을 입고 요플레에 들어가는 재료를 부수며 “비싼 재료 넣어놓곤 껍데기가 별로야, 토핑은 5성급인데 껍데기가 별로야, 그냥 흔한 제품 같아”라는 CM송을 부른다. 토핑에 들어가는 좋은 재료에 비해 제품 패키지가 너무 평범하다고 반복해서 자조하는 내용의 광고다. ‘와 이게 컨펌이 나네 껍데기가 별로야’라는 제목의 광고 영상은 현재 조회수 780만에 이른다. 네티즌들은 ‘제품의 모자란 점을 솔직하게 공개해 토핑은 진짜라는 진실성을 느끼게 한다’ ‘껍데기는 평범하지만 엄청 맛있다는 내용이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앞으로 편의점 가면 이거 찾아볼 것 같다’며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현대카드도 올해 초 신상품인 ‘MX 부스트’를 출시하며 자기 비하 마케팅을 활용했다. 광고 영상에는 ‘혜택에 쓸 돈 디자인에 쓴 듯’ ‘혜택도 신경 좀 써라’ ‘잘 쓸게요, 카드 대신 책갈피로’ 등 현대카드를 비난하는 댓글들이 등장한다. 이어 ‘악플에 강경 대응 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노출된 뒤 새로워진 카드 혜택이 소개된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고객의 의견을 잘 청취하고 있다는 의미와 함께 그만큼 이번엔 혜택에 자신감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악플을 활용했다”며 “단점을 인정하는 쿨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젊은 고객들에게 반응이 좋았다”고 했다.

◇솔직함으로 MZ세대에게 어필

일본에서는 ‘자사 제품을 자학해봤다’는 트위터 해시태그가 유행할 정도로 자기 비하 마케팅이 활발하다. 일본 제약 회사 금관당은 지난 6~7월 주력 제품인 모기약 ‘킨칸’ 광고를 젊은 층 집결지인 도쿄 시부야역에 내걸면서 카피를 ‘젊은이에게 팔고 싶다’로 정했다. 광고에는 ‘젊은이 여러분, 사지 않아도 좋으니 오늘은 어떻게 생겼는지 라벨만이라도 기억해 주세요’라는 읍소도 적혀 있다. 광고를 기획한 도큐에이전시의 쓰키아시 하야토 디렉터는 “요즘 젊은 세대는 세련된 문구나 디자인으로 만든 완벽한 광고는 너무 광고라는 느낌이 강해 거부감을 느낀다”며 “친근감 있게 본심을 털어놓는 느낌으로 기획했다”고 했다.

일본 도쿄 시부야역에 걸린 제약사 금관당의 모기약 ‘킨칸’ 광고. /금관당

이처럼 자기 비하 마케팅이 늘어나는 이유는 기업이나 상품의 진정성을 부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셜마케팅 업체 스태클라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의 90%는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진정성’을 꼽았다. 이런 경향은 소비의 중심으로 떠오른 MZ세대(1980~2000년대 태어난 세대)에서 더 두드러진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EY는 올해 내놓은 Z세대 보고서에서 기업이 이해해야 할 Z세대의 특징 중 하나로 ‘진정성’을 꼽았다. Z세대는 다른 세대보다 진정성을 쉽게 감지하고, ‘가짜’로 보이거나 느끼는 모든 것을 혐오한다는 뜻이다.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MZ세대는 완벽하고 잘 포장된 것보다 투명성을 우선시한다”며 “자신의 약점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자기 비하 마케팅은 소비할 때 진정성과 심리적 만족감을 중시하는 MZ세대에게 효과적일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자기 비하 마케팅이 역효과를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활용해야 한다. 유 교수는 “자동차의 안전성이나 음식의 맛처럼 소비자들이 상품 구매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에는 자기 비하 마케팅을 해선 안 된다”며 “상품을 구매할 때 고려하는 요소 중의 하나이지만, 우선순위가 높지 않은 요소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한 광고 대행사 임원은 “자기 비하 광고가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는 있지만, 광고만 기억에 남고 정작 상품은 잊히거나 부정적 이미지만 오래 남을 수 있어 자주 활용하진 않는다”고 했다.

WEEKLY BIZ를 이메일로 보내드립니다.

Newsletter 구독하기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77676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