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한닢을 배상받다

한겨레 2021. 11. 25.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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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잖은 평론가가 욕설에 가까운 글로 화가와 작품을 헐뜯었다.

화가는 이 비평이 마음에 안 든다고 평론가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

"이 작품을 그리는 데 며칠 걸렸나요?" "하루, 아니, 이틀?" "고작 이틀을 일해놓고 그림값을 200기니(영국의 옛 금화)씩이나 부르는 건가요?" "아니, 나는 평생을 쌓은 예술 지식으로 이 작품을 그렸습니다. 200기니는 그에 대한 값이죠."

화가와 평론가 모두 상처를 입은 이 재판의 판결이 나온 날이 1878년 11월26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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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다][나는 역사다] 제임스 맥닐 휘슬러(1834~1903)
제임스 맥닐 휘슬러(1834~1903)

점잖은 평론가가 욕설에 가까운 글로 화가와 작품을 헐뜯었다. 화가는 이 비평이 마음에 안 든다고 평론가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 1878년 영국에서 열린 재판이다. 이 황당한 사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평론가 존 러스킨은 왜 문제의 글을 썼을까. 그는 꽉 막힌 사람이 아니었다. 마하트마 간디도 이 사람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정도로 당시 존경받는 작가이자 사상가였다. 예술을 모르는 사람도 아니었다. 수많은 화가들이 그의 친구였고, 러스킨 스스로도 솜씨가 뛰어난 아마추어 화가였다. 다만 러스킨이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예술을 위한 예술’이었다.

화가 제임스 맥닐 휘슬러의 속내도 이해하기 어렵다. 비평가의 입을 틀어막으려던 셈이니 표현의 자유를 위한 법정다툼으로 볼 수 없다. 이 재판으로 눈길을 끌어 자기 ‘브랜드’를 띄우고 싶었을 수는 있다. “19세기부터 예술가는 창작뿐 아니라 경영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다.”(마리 자야츠) 어쩌면 휘슬러는 돈이 궁했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 비싼 집을 샀기 때문이다. 휘슬러는 러스킨에게 1천파운드의 배상을 청구했다.

재판이 열렸다. 그림의 제목은 <검은색과 금색의 야상곡: 추락하는 폭죽>. 러스킨은 건강이 안 좋다며 법정에 나오지 않았고, 대신 당대의 지식인과 화가들이 러스킨 쪽 증인으로 출석해 휘슬러와 입씨름을 벌였다. “이 작품을 그리는 데 며칠 걸렸나요?” “하루, 아니, 이틀?” “고작 이틀을 일해놓고 그림값을 200기니(영국의 옛 금화)씩이나 부르는 건가요?” “아니, 나는 평생을 쌓은 예술 지식으로 이 작품을 그렸습니다. 200기니는 그에 대한 값이죠.”

결과는 복잡하다. 명예훼손에 대한 판결은? 법정은 휘슬러의 편을 들어 러스킨이 잘못했다고 봤다. 러스킨은 재판 결과에 상심하고 교수직을 그만두었다. 그렇다면 배상은? 러스킨이 1천파운드 대신 동전 한닢만 배상하면 된다고 판결했다. 재판 비용은 휘슬러와 러스킨 양쪽이 물어야 했다. 휘슬러는 파산했다. 새 집과 작품이 남의 손에 넘어갔다. 화가와 평론가 모두 상처를 입은 이 재판의 판결이 나온 날이 1878년 11월26일이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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