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발] "나도 종부세 폭탄 맞고 싶다!"

박현 2021. 11. 25.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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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올해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부과금액이 집값 급등과 세율 인상 등의 여파로 지난해보다 크게 늘었다. 특히, 다주택자와 법인의 부담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사진은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용산구과 서초구 일대 아파트의 모습. 연합뉴스

박현 | 논설위원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부과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보수 야당과 보수 언론에선 집 한 채 가진 중산층에게까지 종부세 ‘세금 폭탄’이 터졌다는 식으로 곡해하며 공격하고 있다.

이들이 애용하는 수법이 ‘평균의 함정’이다. 종부세 부과 대상자들이 1인당 평균 602만원을 부담한다고 강조한다. 주택분 종부세 전체 세액 5조7천억원을 납부자 94만7천명으로 단순히 나눈 숫자다. 어떻게든 부담액이 많은 것처럼 포장하려는 의도다.

그러나 부과 내역을 잠시만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종부세 증가분의 대부분은 다주택자와 법인에 부담이 돌아갔다. 올해 늘어난 세액 3조9천억원 중 다주택자·법인이 92%(3조6천억원)를 부담한다. 1세대 1주택자(13만2천명)의 부담액은 3.5%인 2천억원에 그치고, 1인당 평균으로 계산하면 152만원꼴이다. 보수 언론이 강조한 602만원의 4분의 1 수준이다. 게다가 1세대 1주택자 중 73%는 시가 25억원 이하 집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의 평균 세금은 50만원 수준으로 낮아진다.

상황을 호도하는 또 다른 사례는 부과 대상자가 서울에서 전국으로 확산됐고, 이에 따라 세금 성격이 ‘부유세’에서 ‘보통세’로 변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종부세 대상자 중 서울 이외 지역 거주자가 크게 늘어난 것은 맞다. 하지만 지난해 집값이 서울보다 오히려 경기도와 부산·세종 등 지방이 더 많이 올랐다는 점은 애써 외면한다. 또 종부세는 납세자의 거주지를 기준으로 부과된다. 지방에 사는 사람이 서울의 고가 주택을 매입한 사례도 적지 않은데, 이런 경우 지방에서 내는 종부세로 집계된다. 요컨대, 올해 종부세 부담은 대부분 다주택자·법인에 돌아가고, 보통의 시민이 내는 ‘보통세’가 아니라 ‘부유세’ 성격을 유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종부세에 대한 과도한 공격은 집값 폭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무주택 서민들을 더 허탈하게 만든다. 오죽하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나도 종부세 폭탄 맞고 싶다!”는 글까지 올라올까. 이런 푸념에는 고가 주택에 살고 싶다는 욕망과 함께 기득권층에 대한 신랄한 풍자가 담겨 있다. 종부세를 공격하는 이들은 주로 서울 강남 등 요지에 ‘똘똘한’ 아파트 한 채를 갖고 있거나 다주택자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사회 여론 주도층이기도 한 이들은 여론을 교묘하게 왜곡해 종부세를 사실상 무력화시키려는 것이다.

종부세는 지금 우리 사회에 상당히 중요한 순기능을 갖고 있다. 첫째는 부의 재분배 기능이다. 계층 간 불평등이 가뜩이나 심한 상황에서 집값 폭등으로 부의 불평등이 극단적으로 악화하고 있다. 누군가는 집을 소유해 ‘횡재’를 하고, 누군가는 집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벼락거지’가 됐다. 이렇게 불로소득이 사람들을 갈라놓는 사회는 좋은 공동체가 되기 어렵다. 땀 흘려 일하려는 동기는 줄어들고, 너도나도 부동산 투기에 몰두할 유인이 커진다. 이를 풀 수 있는 유력한 해법이 종부세와 같은 부동산 보유세를 강화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세계적 석학 토마 피케티는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현대 자본주의에서 부의 불평등이 심화하는 구조가 고착화하고 있다며 이를 타개할 방안으로 모든 자산에 대한 누진적 세금 부과를 제안했다. 종부세는 부동산 자산에 국한되기는 하지만 피케티가 제안하는 그런 종류의 세금이다.

두번째는 집값 안정 효과다. 세제는 사람들의 행위를 바꾸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종부세가 부담스러운 수준이 되면 다주택자들이 매물을 내놓을 유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일부에선 종부세가 무섭다 무섭다 했지만 지금까지는 사실 ‘종이호랑이’에 불과했다. 세금 부담이 그렇게 크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나 이번엔 다를 것으로 보인다. 서울 요지에 똘똘한 아파트 2채를 가진 사람은 올해 재산세와 종부세를 합한 보유세가 1억원을 넘는 사례도 속출한다. 웬만한 부자 아니고서는 이런 금액을 매년 부담하기는 쉽지 않다. 비로소 종부세가 가시적인 집값 안정 효과를 낼 만한 수준이 된 것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최근 종부세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으며 ‘종부세 공격’에 가세했다. 중장기적으로 아예 종부세를 재산세에 통합하거나 1주택자는 면제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공약은 정확히 집 부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푸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다주택자들이 또다시 ‘버티기’에 들어가도록 부추길 수 있다. 종부세를 더 이상 흔들지 말길 바란다.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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