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희 칼럼] 그는 공과를 따질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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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이후 생략)은 일 년에 한두 번씩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시대는 일절 이견이 허용되지 않은 공포정치의 암흑기였고, 집권기 내내 거리와 대학은 시위와 진압으로 날이 지고 새던 전쟁터였다.
전두환 군사정권이란 거악에 맞서 자신들만을 지선(至善)화한 당시의 운동권은 그 외피 안에서 과도한 이념성, 집단적 선민주의, 배타성을 키웠다.
그러므로 이 모든 그늘을 함께 걷어내지 못한다면 전두환시대는 여전히 끝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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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와 달리 그는 재평가의 여지가 없다
아직도 곳곳에 남은 그 시대의 어두운 그늘
낡은 정치문화까지 청산해야 진정한 극복
전두환 전 대통령(이후 생략)은 일 년에 한두 번씩은 모습을 드러냈다. 잊을 만하면 재판정이나 집 앞에서, 혹은 식당이나 골프장 등지에서 카메라에 잡혔다. 여유롭든, 초췌해 보이든 매번 불편했다. 분노나 연민보다 여전히 이별하지 못한 그 시대와의 질긴 연(緣)이 지겹고 징그러워서였다.
이제 그럴 일은 없겠다 싶었는데 도처에서 벌어지는 공과 논쟁에 아연했다. ’박정희 사후 위기상황을 신속히 수습하고 이후 정치·사회를 안정시켜 경제를 크게 발전시킨 인물‘ 따위의 요설이 횡행하고 지인들과의 모임 글, 페북, 무수한 댓글 등에서 다툼이 벌어진다. 대체 이게 논쟁할 일인가. 역사적 인물의 공과를 엄정하게 따져야 하는 건 맞다. 그러나 착각할 건 아니다. 공과를 함께 논한다는 것이 같은 크기로 보자는 건 아니다. 그는 애당초 공과를 저울질할 논쟁적 인물이 아니다.
그러고 보면 예전 견습기자나 언론지망생들을 가르칠 때 그런 얘기를 자주 했던 기억이 있다. “전두환조차도 100% 흑백, 선악론으로만 보지 말라”고. 공정한 시각을 당부하는 비유였으나 방점은 당연히 ‘조차도’에 있었다. 그의 시대는 일절 이견이 허용되지 않은 공포정치의 암흑기였고, 집권기 내내 거리와 대학은 시위와 진압으로 날이 지고 새던 전쟁터였다. 그런데도 “정치는 잘했다”라니.
혹 경제적 평가는 일견 수긍할 부분이 있다 해도 그가 당초부터 박정희식 국가 개발의 철학을 갖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다만 권력 찬탈과 유지, 향유가 목적이었던 철저한 정치군인이었다. 도리어 시대적 역할이 끝나가던 개발독재체제를 억지로 연장함으로써 그 부정적 측면을 극단적으로 키웠다. 대놓고 수천억 원을 받아 챙긴 정경유착, 권력형 비리는 한국경제의 암세포로 착근해 여전히 번식 중이다. 자랑하는 부실기업 구조조정에도 정치자금의 ‘성의’ 정도가 개입했을 정도다. 그러니 경제적 성과란 것도 과장할 것은 아니다.
‘후세의 평가’는 과(過)를 덮기 위한 말장난이다. 역사적 평가는 생각보다 긴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대단한 비사(祕史)가 발굴되지 않고서야 당대의 판단이 크게 달라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 정권 성향과 시대 상황에 따라 등위가 부침하는 다른 이들과 달리 그는 일반 대중이나 학자들 대상의 역대 대통령 평가에서 수십 년간 부동의 최하위다. 그는 차고 넘치는 과에, 공은 말미에 한 줄 부기(附記)만으로 충분한 인물이다. 무엇보다 인륜적 기준에서 자국민 일반을 대량 살상한 만행은 어떤 이유로도 덮어질 수 있는 죄과가 아니다.
구체적 공과를 또 반복할 여유는 없되 역사무대에서 그의 퇴장이 갖는 의미는 작지 않다. 그건 낡은 이념시대의 완전한 종언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의 극단적인 이념 진영 간 대립, 산업화와 민주화 세대의 갈등도 본질적으로는 그 시대가 드리운 짙은 암영이다.
전두환 군사정권이란 거악에 맞서 자신들만을 지선(至善)화한 당시의 운동권은 그 외피 안에서 과도한 이념성, 집단적 선민주의, 배타성을 키웠다. 그건 또 다른 불행이었다. 온 국민이 같이 이룬 민주화의 성취를 독점한 그들이 수십 년간 똑같은 방식의 독선과 오만으로 치달아온 결과가 진영과 선악, 흑백논리로 접점 없이 찢긴 현재 우리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그늘을 함께 걷어내지 못한다면 전두환시대는 여전히 끝난 것이 아니다. 뻔한 얘기지만 낡은 이념적 정파적 사고를 걷어낸 공정·실용·통합의 보편가치 확보야말로 진정한 그 시대의 청산일 것이다. 때가 때이니만큼 이번 대선이 제대로 구시대를 정리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준희 고문 jun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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