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추심 그만" 올해 '채무자대리인' 이용자 5배 급증.. 예산 동나

박소정 기자 2021. 11. 25.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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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추심 차단 위해 무료 변호사 지원 사업
지난해 3월 도입 이후 올해 이용 실적 급증
"제도 알려진데다 최고금리 인하 여파"
반년만 금융위 예산 소진.. 내년도 2배 편성
무직자인 40대 김모씨는 생활비를 위해 불법사금융에 손을 벌렸다가 더 큰 위기에 빠졌다. 연체가 이어지면서 채권추심업자가 불쑥불쑥 집 앞을 찾아오는 것은 물론, 자녀의 입학식에까지 따라와 빚 독촉을 한 것이다. 김씨는 “하루종일 추심업자의 전화와 방문에 시달리니, 매일매일을 공포감 속에서 살아간다”고 토로했다.

대학생인 20대 정모씨는 급전이 필요해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미등록 대부업체를 찾았다. 대출 때 부모·배우자·친인척·지인 등 연락처와 직장명을 적도록 하더니, 가족관계증명서까지 요구했다. 돈을 제때 갚지 못하자 정씨에게는 물론, 가족들에게도 협박이나 욕설 전화가 빗발쳤다.

불법 채권추심 사례

불법 추심 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무료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금융당국의 채무자대리인 제도 이용자가 올해 들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시행 초기보다 제도 내용이 널리 알려진 데다가, 지난 7월 최고금리 인하가 예고되면서 불법사금융으로 밀려난 이들의 추심 피해 사례도 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결국 올해 채무자대리인 제도 운영에 배정된 관련 예산을 6개월 만에 모두 소진하는 일이 벌어졌다.

25일 금융위원회·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지난 10월까지 올해 월별 채무자대리인 선임 지원 결정 실적은 총 4173건에 달했다. 지난해 한 해 총 실적이 893건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약 5배 뛴 것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한 장면. 주인공인 '성기훈'(오른쪽)은 실직 후 불법사금융에서 돈을 빌려 경마에 매진하다 빚을 갚지 못하는 처지에 놓인다. 이자조차 갚지 못하자 추심업자들이 찾아와 폭력을 행사하고, 신체포기각서를 작성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는 불법 채권추심 행위에 해당한다. /넷플릭스 제공

지난해 9월까지만 해도 한자리~두자릿수에 불과했던 이용 실적은 지난해 10월을 기점으로 급증하기 시작해, 12월의 경우 344건을 기록했다. 올해 들어서 급증세는 더욱더 가팔랐는데 ▲1월 221건 ▲2월 298건 ▲3월 309건 ▲4월 462건 ▲5월 558건 ▲6월 591건 ▲7월 492건 ▲8월 480건 ▲9월 439건 ▲10월 323건 등 모두 세자릿수를 기록했다.

지난해 3월 처음 시작된 이 제도는 불법 추심과 관련한 피해나 우려가 있는 경우, 채무자에게 무료로 추심 관련 변호사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채무 사실을 제3자에게 고지하거나, 사전 예고 없이 거주지 등을 찾아와 추심을 하는 행위가 금지돼 있다. 고성이나 욕설·폭력 등으로 공포나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도 불법 채권 추심에 해당한다. 개인 채무자에게 채권 추심 연락을 할 수 있는 총 횟수는 일주일에 7회 이내로 제한돼 있다.

이런 불법 추심 피해·우려가 있는 채무자가 변호사를 선임하면, 그 이후부턴 추심업자가 변호사를 통해서만 추심 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기존에 채무자는 추심 과정을 대리할 변호사를 선임하기 위해서 30만원에 이르는 가격을 지급해야 했고, 소송의 경우 150만~200만원의 비용이 들었다. 이 때문에 빚 상환에 허덕이는 서민은 이런 제도를 이용하기 어렵다는 맹점이 있었다.

그래픽=이은현

올해 이용 실적이 급증한 데는 채무자가 이런 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최근 들어서야 제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점이 큰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지난 7월 법정 최고금리가 연 24%에서 연 20%로 인하된 영향도 다소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과거에도 최고금리 인하가 예고되면 주요 대부업체들이 신규 대출을 보수적으로 일으키는 대신 적극적으로 추심 행위에 나서는 경향이 있었다. 같은 이유로 미등록 대부업체 등 불법사금융 시장으로 밀려난 서민들이 불법 추심 환경에 노출되기 쉬워져 수요가 증가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올해 6억원에 불과했던 관련 예산은 불과 6개월 만에 조기 소진됐다. 하반기부터는 법률지원공단의 지원으로 먼저 충당하고, 내년 금융위 예산으로 이를 메우는 방식으로 지원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금융위는 내년도 채무자대리인 제도 관련 예산으로 올해보다 2배 증가한 11억5000만원을 편성해, 제도 활성화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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