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차별금지법 필요성 '첫 언급'..제정은 언제?

이완 2021. 11. 25.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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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 설립 20주년 기념식
회의장서 "법 즉각 제정하라" 항의도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서울 명동성당 문화관 꼬스트홀에서 열린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20주년 기념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국회가 논의를 미룬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우리가 인권선진국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서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명동성당에서 열린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20주년 기념식’에서 “20년 전 우리는 인권이나 차별금지에 관한 기본법을 만들지 못하고 국가인권위원회법이라는 기구법 안에 인권 규범을 담는 한계가 있었다”면서 “우리가 인권선진국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서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아울러 “시대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인권 규범을 만들어 나가는 일도 함께 역량을 모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시대의 변화에 따른 인권 현안으로 차별과 배제, 코로나19, 디지털 격차를 들었다. 문 대통령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서로 부딪히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면서 “전 세계는 차별과 배제, 혐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게 되었다”고 했다. 또 코로나와 기후 위기, 디지털 전환 속에서 발생하는 격차 문제를 시급한 인권 현안으로 꼽았다.

문 대통령은 이같은 상황에서 “앞으로 인권위의 존재와 역할이 더 중요해질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때로는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대안을 요구하는 것도 인권위가 해야할 몫”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임기 중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에 관해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차별금지법은 합리적 이유가 없는 모든 형태의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법으로 지난 2007년 노무현 정부 당시 법무부가 처음으로 발의했다가 보수기독교계 등에 의해 좌초된 바 있다. 이후 14년 동안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가 진척되지 못했다. 올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국민동의청원이 10만명의 동의를 얻어 국회에 제출되었지만, 이번 국회에서도 여야는 국민동의청원의 심사기한을 21대 국회 임기 마지막날로 연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고 한 ‘세계인권선언 제1조’를 언급하며 “모두의 인권을 폭넓게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인권을 보장받는 길”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는 항상 인권을 위해 눈 뜨고 있어야 한다. 자유와 평등, 존엄과 권리를 위해 생생하게 깨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한편 문 대통령의 연설이 끝나자 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가 “대통령님 차별금지법 제정 즉각 추진하십시오”라고 소리쳤다. 이종걸 공동대표는 “저는 동성애자이자 인권활동가 입니다. 저의 존재에 누가 찬반을 이야기 할 수 있습니까. 당신의 ‘나중에’와 사회적 합의로 인해 차별의 현실은 더 심각해졌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 즉각 추진하고 성소수자에게 직접 사과하십시오”라고 말했다.

이종걸 공동대표는 ‘문 대통령에게 항의한 이유’에 대해 “차별금지법에 대해 ‘나중에’ ‘사회적 합의’라고 이야기한 것으로 인해 법 제정이 이뤄지지 않고 14년째 평등이 유예되었다. 바로 그에 대한 책임이 문 대통령 등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이라고 <한겨레>에 밝혔다.

이날 인권위 20주년 행사에는 함세웅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고문,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 김미연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부의장, 이미경 전 한국국제협력단 이사장, 한상희 서울시 인권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은 “국가인권위원회가 국제기준에 따라 독립적 인권기구로 탄생할 수 있도록 한겨울 단식농성도 마다하지 않았던 인권활동가들의 수년에 걸친 헌신과 희생을 기억한다”면서 “끊임없이 인권위원회의 문을 두드리고 역할을 채근하여 주신 분들과, 지난 20년간 숱한 난관 속에서도 인권위원회가 제자리를 지켜낼 수 있도록 격려와 지지를 아끼지 않았던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고 말했다.

이완 김윤주 기자 wani@hani.co.kr

<문 대통령 인권위 20주년 연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20주년을 맞았습니다. 지금은 국가에 독립적인 인권위원회가 있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로 여겨지지만, 많은 인권단체와 인권운동가들의 치열한 노력 위에서 김대중 대통령님의 결단으로 이룬 소중한 결실이었습니다. 저도 당시 국가인권위원회 설립을 위한 노력에 참여했던 한 사람으로서 감회가 깊습니다.

우리는 코로나를 겪으면서 서로의 삶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는지 경험했습니다. 이웃의 안전이 나의 안전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인권도 그러합니다. 다른 사람의 인권이 보장될 때 나의 인권도 보장됩니다.

인권위가 설립되었던 20년 전, 평화적 정권교체로 정치적 자유가 크게 신장되었지만 인권 국가라고 말하기에는 갈 길이 멀었습니다. 특히 사회·경제적 인권의 보장에는 더욱 부족함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자기 삶의 민주주의를 위해 모두의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일상 속 민주주의가 확장되며 비로소 사회적, 경제적 약자들을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실질적 자유와 평등을 누려야만 민주주의를 완성할 수 있다는 다짐에서 출발한 인권위는 지난 20년간 소수자의 권리를 대변하며 인권 존중 실현의 최전방에서 많은 일을 해 왔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1조에 명시된 대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민주적 기본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소명을 다해 왔습니다.

오늘 설립 20주년을 맞아 김창국 초대 위원장님부터 송두환 9대 위원장님까지 역대 위원장님, 또 위원님들, 관계자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인권위의 활동을 지지하고 응원해 오신 국민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국민 여러분, 2001년 11월 26일, 인권위가 접수한 첫 번째 진정은 신체장애를 이유로 보건소장에 임명되지 못한 분의 사연이었습니다. 이미 다른 보건소장이 임명된 상황이어서 진정인의 소망이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불합리한 차별을 시정하라는 인권위의 권고에 의해 부당한 처분을 한 지자체로부터 손해배상을 받는 것으로 인권을 보호받을 수 있었습니다. 인권위는 더 나아가 장애인 인권을 위한 제도 개선에 힘을 쏟았습니다.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은 인권위의 노력이 맺은 값진 결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멈추지 않고 긴 호흡으로 꾸준히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온 인권위의 모습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인권의 발전 과정이었습니다. 인권위는 이중 처벌 논란이 컸던 보호감호 처분 폐지와 정당한 영장 절차나 재판 절차가 없는 군 영창 제도 폐지를 이끌어냈고, 인권위의 권고로 삼청교육대와 한센인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과 보상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었습니다. 인권위의 노력이 밑거름이 되어 학교 체벌이 사라졌습니다. 채용과 승진에 있어서 나이를 이유로 한 차별이 금지되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이 심각한 인권 문제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오늘 대한민국 인권상을 수상하게 되었지만 가사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된 데도 인권위의 노력이 컸습니다. 치매 어르신들의 권리와 기초생활 보장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인권위의 권고는 치매 국가책임제와 부양의무자 폐지로 이어졌습니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관행에 의문을 제기해 인권의 지평을 넓힌 것은 인권위가 이루어낸 특별한 성과입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던 ‘살색’이라는 표현이 인종차별이 될 수 있음을 알렸고, 남학생부터 출석 번호 1번을 부여하던 관행에도 제동을 걸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이 바뀌어야만 우리 모두의 인권이 넓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소중한 사례들입니다.

국민 여러분, 인권 존중 사회를 향한 여정에는 끝이 없습니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인권의 개념이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서로 부딪히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전 세계는 차별과 배제, 혐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와 기후 위기, 디지털 전환 속에서 발생하는 격차 문제도 시급한 인권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앞으로 인권위의 존재와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화와 타협, 공감을 이끌고 모두의 인권을 조화롭게 높여나가기 위해 특별히 애써 주기 바랍니다. 때로는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대안을 요구하는 것도 인권위가 해야 할 몫입니다.

정부는 인권위의 독립된 활동을 철저히 보장하겠습니다. 취약계층 지원을 늘리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며 국민의 기본권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가겠습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인권 규범을 만들어 나가는 일도 함께 역량을 모아야 합니다. 20년 전 우리는 인권이나 차별금지에 관한 기본법을 만들지 못하고 국가인권위원회법이라는 기구법 안에 인권 규범을 담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인권선진국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서야 할 과제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세계인권선언 제1조는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와 평등, 존엄과 권리는 언제나 확고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등은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이 일궈낸 소중한 성과이며, 우리의 존엄과 권리는 우리가 소홀하게 여기는 순간 빼앗길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함께하고 있는 명동성당은 독재에 맞서 자유와 인권의 회복을 외쳤던 곳입니다. 인권위의 출범을 위해 인권운동가들이 뜻을 모았던 장소이자 인권위의 독립성이 위협받던 시절에 저항의 목소리를 냈던 곳이기도 합니다.

모두의 인권을 폭넓게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인권을 보장받는 길입니다. 우리는 항상 인권을 위해 눈 뜨고 있어야 합니다. 자유와 평등, 존엄과 권리를 위해 생생하게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민주주의와 인권의 전진을 이끈 분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며, 인권 존중 사회를 향해 더욱 힘차게 나아갈 것을 다짐합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함께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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