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대유행은 전세계 불의의 단층 드러낸 사회적 질병이죠"

최재봉 2021. 11. 25.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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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은 아마도 인류에게 가장 힘든 2년이었을 것입니다. 코로나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우리가 오늘 이렇듯 같은 공간에 모일 수 있다는 건 기적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이 비극의 윤곽도, 적절한 모양도, 의미도 알지 못합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엑스레이이기도 했습니다. 경제적, 인종적, 민족적, 종교적, 국가적으로 심각한 불의의 단층을 드러낸 사회적 질병으로, 우리 모두가 거주하고 있는 행성을 위협하는 인간 종의 문제를 보여준 계기가 되기도 했죠."

1997년 부커상 수상작인 소설 <작은 것들의 신> 의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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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
'지복의 성자', 치열한 내부자 시선으로 역사 문제 정면승부
제4회 및 제5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자 기자간담회가 25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려 제4회 수상자인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가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지난 2년은 아마도 인류에게 가장 힘든 2년이었을 것입니다. 코로나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우리가 오늘 이렇듯 같은 공간에 모일 수 있다는 건 기적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이 비극의 윤곽도, 적절한 모양도, 의미도 알지 못합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엑스레이이기도 했습니다. 경제적, 인종적, 민족적, 종교적, 국가적으로 심각한 불의의 단층을 드러낸 사회적 질병으로, 우리 모두가 거주하고 있는 행성을 위협하는 인간 종의 문제를 보여준 계기가 되기도 했죠.”

1997년 부커상 수상작인 소설 <작은 것들의 신>의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서울 은평구가 주관하는 제4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방한한 로이는 25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자신의 문학 세계와 인도의 현실 등에 관한 생각을 밝혔다.

“많은 종교에서 아주 작은 것들이 아주 큰 것과 연결돼 있습니다. 작은 거미 한 마리가 물결에 일으킨 파문이 커다란 바람을 불러오는 것처럼 말이지요. 어찌 보면 큰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큰 것은 아주 작은 것들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죠. 소설을 쓸 때 저는 커다란 개념으로 바라보지 않고 작은 세부들을 통해서 봅니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요. 신과 작은 것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 소설 제목이 말해 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로이는 <작은 것들의 신>으로부터 20년 만인 2017년에 내놓은 두 번째 소설 <지복의 성자>에서는 인도 내의 무슬림 탄압과 카스트 제도, 성소수자 문제 등을 비판적으로 다루었다. 이날 기자회견에 동석한 이명호 심사위원장은 “<지복의 성자>는 2002년 극우 힌두교도들이 수천 명의 무슬림을 학살한 구자라트 폭동을 직접 다루면서 종교 갈등과 역사적 분열, 빈부 격차와 카스트 제도 등 인도 역사의 핵심적 문제들을 정면으로 다룬다”며 “당대 인도 현실을 치열한 내부자의 시선으로 그려내면서 이를 역사의 거시적 흐름 속에 놓을 수 있는 안목이 세계 문학이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기에 모자람이 없다”고 평가했다.

로이는 소설 말고도 <9월이여, 오라> <자본주의: 유령 이야기> <아자디: 자유, 독재, 허구> 같은 논픽션과 에세이 역시 활발하게 쓰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그는 “내가 존경하는 작가 존 버거는 언젠가 소설과 논픽션이 자신의 두 다리라고 말한 적이 있다”라며 “흔히 정치적 논픽션과 예술성을 지닌 소설을 구분하고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이분법에 의문을 지닌다. 내게는 픽션(소설)과 논픽션의 경계나 차이가 따로 없다”고 말했다.

“내가 믿기에는 문장과 이미지와 인물과 관련해 끊임없이 선택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아이들이 읽는 요정 이야기조차도 정치적인 것입니다. <작은 것들의 신>이 한 가족을 바탕으로 삼은 소설이라면 <지복의 성자>에서는 가족과 젠더, 국가, 민족 등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문학이 꼭 위로를 전해야 할 필요는 없어요. 문학은 그런 단순한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기 위해서도 존재합니다.”

지난해 코로나 때문에 열리지 못한 제4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시상식은 올해 제5회 시상식(수상자 예니 에르펜베크)과 함께 이날 오후 3시 서울 은평구 진관사 한문화체험관에서 열렸다. 26일 오후 3시에는 은평문화예술회관 대회의실에서 아룬다티 로이가 한국 독자들과 만나는 ‘작가와의 만남’ 행사가 열린다.

글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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