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여경 무용론'이 가린 것들

최효정 기자 2021. 11. 25.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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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여경을 잔뜩 뽑아서 사달이 났다."

지난 19일 발생한 '인천 층간소음 살인미수' 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부실 대응이 화를 키운 사실이 알려지자 세간의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분노에는 "여경은 제복 입고 SNS에 사진 올리는 것이 일", '경찰 기쁨조'라는 등의 여성혐오적 조롱이 추가됐다.

지속되는 경찰의 부실 대응으로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한 길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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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여경을 잔뜩 뽑아서 사달이 났다.”

지난 19일 발생한 ‘인천 층간소음 살인미수’ 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부실 대응이 화를 키운 사실이 알려지자 세간의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칼에 찔린 피해자를 내버려두고 현장에서 줄행랑친 경찰이 여성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여경은 치안 업무에 쓸모가 없다는 ‘여경 무용론’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폭주하기 시작한 여론은 사건의 발단·경위와는 상관없이 “결국 여경이 문제다”라는 결론을 향해 내달렸다. 해당 경찰관이 1년도 안된 시보였고, 여경과 동시에 출동한 남성 경찰도 현장을 이탈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았았다. 시보는 공무원으로 정식으로 임명되기 전, 공무원에 종사하면서 일정 기간동안 적격성을 판정 받는 제도를 말한다. 분노에는 “여경은 제복 입고 SNS에 사진 올리는 것이 일”, ‘경찰 기쁨조’라는 등의 여성혐오적 조롱이 추가됐다.

‘여경 무용론’이 용광로처럼 펄펄 끓자 경찰의 부실 대응 문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경찰의 무능과 무책임, 그리고 그것을 용인하고 조장한 경찰 조직의 무사안일과 보신주의적 문화를 성찰할 기회도 없어졌다.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문제의 본질은 경찰 조직의 무사안일주의와 훈련 미흡이다. 1년도 안된 시보가 훈련도 제대로 받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런 정보 없이 현장에 내몰리고, 총을 가지고 있어도 징계 때문에 피의자를 적극적으로 제압할 수 없는 것이 문제다. 경찰 내부에서도 “나였어도 현장을 이탈했을 것”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적극적인 대응보다 ‘사고를 치지 않는 것’이 진급에 더 도움이 된다는 인식, 현장 업무보다 승진시험이 진급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현실을 반영한다.

“미국 경찰이 피의자를 과잉 진압해 공권력을 남용하는 것이 문제라면, 한국 경찰은 대척점에 서 있다. 세상에서 가장 소극적인 경찰이다.” 한 경찰행정학 전문가가 이번 사건에 대해 내놓은 진단이다. 그는 현장 업무를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할 경찰위원회가 정치권이 내려보낸 ‘낙하산’으로 가득 차 있는 상황이 현장과 유리된 탁상행정으로 현장 대응에 실패하는 소극적인 경찰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지금 우리가 논의해야 할 것은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한 대안이다. 지속되는 경찰의 부실 대응으로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한 길은 무엇인가. 피의자 인권 보호와 범죄 진압이라는 상충하는 두 의무 속에서 경찰은 어떻게 균형점을 찾아 나갈 것인가. 적극적인 대응에 어떻게 면죄부를 부여할지 따져봐야 할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여자를 뽑은 게 문제”라고 분노하는 것은 조금 통쾌할 수는 있어도 문제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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