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신도가 판치는데, 경찰과 언론은 왜 그 모양이었을까 [왓칭]

손호영 기자 2021. 11. 25.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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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불행은 신의 선물일까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
드라마 속 논리적 허점, 의도였나?
드라마 '지옥'에서 인간을 불태워 죽이는 지옥의 사자들./넷플릭스

불행이 어느날 갑자기 찾아오는 건 인간에 대한 신의 배려일 것이다. 최소한 불행하기 직전까지는 행복할 기회를 주는 것이니까. 자신을 향한 신의 처벌을 미리 아는 순간, 그에게 남은 삶은 지옥이나 다름 없다.

‘오징어 게임’에 이어 한국 작품으로는 두 번째 넷플릭스 전세계 1위를 차지했다는 드라마 ‘지옥’. 여기선 죽음 이후의 진짜 지옥은 그리지 않는다. 지옥과 고통에 대한 공포로 ‘현실의 지옥’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마 사후세계가 없는 설정일지도 모르겠다.

"박정자. 너는 5일 후 15시에 죽는다. 그리고 지옥에 간다". 드라마 '지옥'에서 인간의 죽음을 미리 고지하는 천사의 모습./넷플릭스

드라마 줄거리는 이렇다.

어느 날 갑자기 천사가 나타나 “너는 O일 O시에 지옥으로 간다” 일러준다. 그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 가족과 만인이 보는 앞에서 나를 잔인하게 고문하고 불태워 죽인다. 혼란한 시기, “오직 죄인만이 지옥행을 고지(告知) 받는다. 공포만이 인간을 참회하게 해 옳은 길로 인도한다”는 종교단체 ‘새진리회’가 부흥한다. 의장 정진수가 그 단체를 이끈다. 그에겐 남 모를 비밀이 있다.

드라마 지옥에서 사이비 종교단체 '새진리회'의 초대 의장 역을 맡은 배우 유아인./넷플릭스

유아인이 ‘새진리회’의 초대 의장 역을 맡았다.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선 대체로 호평이 나온다. 배우 유아인의 연기는 평소 시상식과 인터뷰 등에서 보여준 그의 평소 말투와 호흡을 그대로 빼다 박았지만, 희번덕거리는 그의 눈과 표정에서 사이비종교 교주 역에 완전히 몰입했음이 느껴졌다.

1호 죄인 박정자 역을 맡은 배우 김신록의 연기는 인상적이다. 김신록 덕분에 초반의 비현실적 서사를 현실로 느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반부에선 박정민이 돋보이는데, 짜증 내는 연기를 하기 위해 태어난 듯 모든 대사가 자연스럽고 일상적이다. 현실감 있는 김현주의 연기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자신의 시연(試演) 과정을 전국으로 생중계하게 된 1호 죄인 박정자가 두려움에 떨고 있다./넷플릭스

지옥행이 고지된 남성의 어린 딸이 방송에 나와 “우리 아빠는 회사 카드를 아무데나 마음대로 쓰고, 컴퓨터에 나쁜 영상들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아빠는 지옥에 가야 마땅한 죄인입니다”라고 흐느낀다. 이 죄가 ‘고지’를 받을만한 죄인가? 그렇다면 인간은 원래 죄인의 자손이 아닌가.

그리고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대부분 새진리회 교주 정진수(유아인) 등 등장인물의 입을 통한 ‘설명’으로 처리된다.

'새진리회' 홍보 영상에 나와 지옥 고지를 받은 아버지의 죄를 고백하며 울먹이는 딸(가운데)./넷플릭스

새진리회 의장 정진수“지금 신께서는 너무나 직설적으로 여러분들에게 지옥의 모습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신의 의도가 무엇일까요? ‘너희는 더 정의로워야 한다!’”

형사 진경훈 “뜯겨죽을까봐 선하게 산다. 그걸 정의라고 할 수 있나요?”

정진수 “공포가 아니면 뭐가 인간을 참회하게 할까요?”

진경훈 “말씀대로라면 그 신은 인간의 자율성을 믿지 않는가보네요”

정진수 “인간의 자율성이 만든 법 체계가 정말 정의롭다고 생각하세요?”

PD 배영재 “사람들을 겁주고 벌줘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드시겠다? 그런 데가 하나 더 있죠. 지옥이라고.”

드라마 '지옥'의 공개 시연 장면./넷플릭스

이 세계가 작동하는 시스템은 중반부쯤 나오는 사회학과 공형준 교수의 대사를 옮기면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


"(새진리회의 교리에선) 인간의 노력으로 막을 수 있는 구체적 행위만이 죄가 돼요. ‘마음의 죄’는 없어요. 만약 그 선을 넘게 되면 포기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생기거든요."

"사소한 악행이나 과실도 존재하지 않는 표백된 세상. ‘불가능하지만 가능해보이는’ 목표를 제시해서, 만인이 만인을 감시하고 정죄하는 구조로 만드는 거예요. 시연이 제공하는 공포와 카타르시스가 추동하는 시스템.”
극중 방송사 NTBC의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배영재(왼쪽)와 그의 아내. 설명할 수 없는 불행이 가족에게 닥치며 새진리회와 정면으로 맞서게 된다./넷플릭스

드라마엔 논리적 허점과 답이 제시되지 않는 궁금증이 여럿 보인다. 지옥의 사자들은 대체 어떤 이들에게 등장하고, 이들은 왜 하필 고릴라의 형상을 했나. 아버지가 다른 아이를 둘 낳아 키우면 지옥에 갈 죄인인가? 정진수는 왜 형사 진경훈(양익준)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는가.

4년 만에 전 세계의 절반이 새진리회 신도가 되는데,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뭘 하고 있는가? 대한민국엔 정부도 언론도 군대도 없나? ‘해리 포터’를 연상케 하는 마지막 화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나.

드라마 '지옥'에서 새진리회에 맞서 정의를 찾으려는 변호사 민혜진(김현주)./넷플릭스

어쩌면 이런 질문은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처럼 보인다. 연상호 감독의 전작 ‘부산행’에서 좀비가 어디서 왜 왔는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그보다는 극한 상황 속 인간의 행동 패턴을 드러내 보이는 데 집중한다. ‘선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이들의 린치와 악행, 재난을 이용해 힘을 얻으려는 세력, 이런 개개인을 묘사하는데 힘을 쏟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릴라에겐 개연성이 없어도 되지만 인간의 행동들엔 개연성이 있어야 한다. 2시간짜리 영화라면 좀 생략돼도 괜찮지만, 6시간짜리 드라마에선 더 정교한 개연성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드라마는 다음 시즌을 암시하며 끝난다.

'새진리회'를 추종하는 과격 단체 '화살촉'의 일원인 BJ가 인터넷 방송을 하고 있다./넷플릭스
“1~3부에서 4~6부로 넘어갈 때 중심 인물과 공간이 완전히 달라지며 몰입감을 높인다. 6시간 분량도 정주 행하기에 딱 적당했다. 시즌 1에서 못다 푼 이야기들을 다음 시즌에선 더 정교하게 풀어주기를 기대한다”

지옥(2021)

감독·각본 : 연상호

출연 : 유아인, 김현주, 박정민, 원진아, 양익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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