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AS] '살인 전조' 스토킹, 법은 무력하고 경찰은 무능하다

최윤아 2021. 11. 25.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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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AS]'행위'가 '범죄' 되기까지 사실상 '과태료' 뿐
5번 신고에도 입건 안 한 경찰의 소극 대처
'피해자보호명령제도'는 입법 과정에서 사라져
게티이미지뱅크

30대 여성이 스토킹에 시달리다 끝내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한 지 오늘(25일)로 일주일째다. 22년 만에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되고 한 달 만에 발생한 이번 사건은 집요한 살해 의지를 지닌 가해자에 비해 이 법이 얼마나 무력한지 고스란히 보여줬다. ‘살릴 수 있었던’ 피해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책임은 스토킹 처벌법 안에도, 현장에서 이 법을 적용하는 경찰에도 있었다. <한겨레>는 스토킹 처벌법의 태생적 한계와 그마저도 제대로 활용 못 한 경찰 대응 문제를 짚어봤다.

3월24일 - 허약하게 태어난 법, 소극적 대응을 부르다

스토킹 처벌법은 스토킹이 살인·강간 등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제정됐다. 그러나 법을 찬찬히 뜯어보면 이 법에 가해자의 범행을 막을 ‘억지력’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스토킹 처벌법은 법안에서 스토킹 ‘행위’와 ‘범죄’를 구분한다.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등의 5가지 가지 행위를 ‘스토킹 행위’로 규정하고, 이 행위가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이어져야만 ‘스토킹 범죄’로 본다.

법은 ‘스토킹 행위’가 ‘스토킹 범죄’로 비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도록 ‘스토킹 행위’ 단계 경찰이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을 부여했다. 그게 바로 ‘긴급응급조치’다. 경찰은 △100m 이내의 접근 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를 명령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명령을 어겼을 경우 쓸 수 있는 제재는 과태료 300만원(반복하면 1000만원까지 늘어남) 뿐이다. 이번 사태가 보여줬듯, 이 정도의 행정처분으로는 가해자의 집요한 범행 의지를 꺾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스토킹 행위가 반복돼 스토킹 범죄가 되면 그제야 경찰은 △유치장 또는 구치소에 최장 1개월 동안 유치할 수 있는데, 이번 사건에서 가해자에게 잠정조치 중 인신구속을 취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행위’와 ‘범죄’로 구분된 단계적이고 분절적인 스토킹 처벌법이 경찰의 소극대응을 야기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스토킹 행위와 범죄를 구분하는 방식은 현장 대응력을 높이기보다 까다롭고 어렵게 만드는 방식”이라며 “긴급응급조치의 내용과 기간도 매우 미약하다”고 꼬집었다.

11월7일 - 경찰, 범죄를 ‘사건화’하지 않다

스토킹 처벌법 자체도 미진한데, 현장에서 경찰은 그마저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 일단 경찰은 가해자를 ‘입건’조차 하지 않았다. 입건은 정식 사건으로 접수하는 절차다. 스토킹 처벌법은 ‘경찰이 진행 중인 스토킹 행위에 대해 신고받은 경우 즉시 현장 나가서 다음 각호의 조치를 해야 한다’며 그중 하나로 ‘범죄수사’를 명시하고 있다. 이미 알려졌듯 피해자는 사건 발생 당일 포함 총 5차례(6월26일, 11월7일, 11월8일, 11월9일, 11월19일) 경찰에 신고했고, 이 가운데 6월26일과 11월7일 두 차례 경찰이 현장에서 가해자를 마주쳤다. ‘스토킹 범죄’의 조건인 지속성과 반복성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경찰은 입건조차 하지 않았고, 후에 입건 여부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피의자가 임의동행을 거부해 신병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신고를 수차례 했는데도 입건조차 안 됐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며 “예컨대 절도로 112 신고해도 피의자가 없는 것인데 그건 수사를 하지 않느냐”고 했다.

수차례 신고해도 제대로 사건 접수조차 이뤄지지 않는 일은 비단 이번 사태에서만 이례적으로 발생한 게 아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10월21일 스토킹 처벌법 시행된 이후 한 달 만에 총 3314건의 신고가 접수됐고, 이 가운데 277건(8.3%)만 입건됐다. 100건 중 8건만 정식 사건으로 접수됐다는 의미다. 각 지역경찰청이 집계한 가정폭력의 통상 입건율이 16∼20% 수준인데, 이에 비해서도 낮은 수치다. 스토킹도 범죄라는 인식을 명확히 하고 제대로 처벌하기 위해 이 법을 만들었는데, 정작 경찰은 신고 상당수를 ‘사건화’하지 않고 있었던 셈이다.

오늘 - 피해자 보호책은 절반도 채워지지 않았다

스토킹 처벌법은 피해자 보호 측면에서도 허점이 많다. 대표적으로 ‘피해자 보호명령제도’나 ‘신변안전조치’가 없다. 피해자 보호명령제도를 이용하면 피해자가 경찰·검찰 수사단계를 거치지 않고도 바로 법원에 가해자 퇴거, 접근금지 등을 신청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신속하고, 수사 노출로 인한 가해자의 보복 위험으로부터 안전하다. 신변안전조치의 경우, 경찰이 피해자 주거지를 주기적으로 순찰하고 폐회로티브이(CCTV)설치, 법원 동행 등을 지원한다. 이런 조항은 성격이 유사한 가정폭력 처벌법에는 있지만 스토킹 처벌법에는 없다. 현행 스토킹 처벌법은 법무부가 의원 10명의 발의안을 합쳐 정부안으로 만들었는데, 각각의 발의안을 합치는 과정에서 사라진 것이다. 애초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이 지난해 6월 발의한 안 등에는 이런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김정혜 부연구위원은 “이번 사태는 피의자를 인신 구속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함을 여실히 보여준다”며 “피해자 보호명령제도 안에 인신구속을 할 수 있게 하는 조항까지 추가해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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