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문어와 게도 아프다

김태훈 논설위원 2021. 11. 25.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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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성’ 관점에서만 보면 가축은 성공한 동물이다. 오늘날 호랑이 늑대는 멸종 위기에 몰려 있지만 인간과 함께 사는 개와 고양이는 온 세상에 널렸다. 대형 동물 90%가 가축이란 통계도 있다. 다만 공짜가 아니다. 많은 가축이 번성하는 대가로 인간 식탁에 오른다. 저술가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에서 사육에 의한 번성이 인권 아닌 동물권을 극도로 억압한다고 한다. 암퇘지는 가로 2m, 세로 60㎝ 좁은 우리에 평생 갇혀 10번 정도 새끼를 낳고 도축장에 끌려간다. 하필 지능이 높고 감성도 풍부해 갇혀 사는 내내 좌절과 분노를 수시로 드러낸다. 하라리는 “그렇게 사느니 지구 상 마지막 개체로 태어나 마음껏 뛰어놀다가 멸종하는 편이 짐승 입장에선 더 낫다”고 말한다.

/일러스트

▶허영만 만화 ‘식객’의 ‘쇠고기 전쟁’ 편엔 가축의 감정이 육질에 영향을 주는 에피소드가 실려 있다. 쇠고기 요리 대회에 가지고 나갈 소를 고르러 온 요리사에게 소 주인은 “우리 안에 있는 나머지 소도 다 사라”고 요구한다. 한 마리만 사면 죽으러 가는 걸 눈치 챈 나머지 소들이 충격에 빠져 육질이 나빠진다는 게 그 이유다.

▶영국 정부가 문어 같은 두족류와 바닷가재·게 등 수산 갑각류에도 동물복지법을 적용하기로 했다고 외신들이 엊그제 보도했다. 소·돼지 등 척추동물뿐 아니라 수산물도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이 런던정경대 연구에서 밝혀진 데 따른 조치다. 런던정경대는 해산물을 산 채로 삶지 말라고 했다.

▶이런 연구가 아니어도 수산 시장 상인들은 경험으로 생선과 문어·오징어 등이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을 안다. 잔인한 방식으로 죽은 수산물은 맛이 나쁘다고 한다. 갓 잡은 생선을 공기 중에 방치해 질식시키거나 냉각 수조에 담그면 고통받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래서 권하는 방법이 뇌를 한 번에 찌르는 피싱(pithing)이나 전기 충격을 줘서 통각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생선회의 나라 일본에선 ‘이케지메’라는 방법을 쓴다. 생선의 눈과 눈 사이를 겨냥해 뇌를 단숨에 찌른 뒤 척수와 분리해야 하는데, 숙련된 솜씨가 필요하다.

▶동물의 감정을 살피고 고통을 줄여 주는 게 좋은 고기를 얻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몽골 유목민들은 도축할 양의 목에 작은 상처를 낸 뒤 손을 천천히 집어넣어 심장을 쥔다. TV로 그 장면을 본 적 있는데 양이 마치 잠자듯 눈을 감았다. 인간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짐승을 죽여야 한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연민과 감사의 마음을 갖지 않는다면 인간성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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